대기업, ‘패션한류’ 팔걷어 붙였다
2018-06-01강경주 기자 kkj@fi.co.kr
삼성, LF, 코오롱, TBH…가능성 높은 콘텐츠에 과감한 투자

# 해외 유력 바이어, 미디어들은 정욱준 디자이너의 ‘준지’를 한국의 대표적인 패션 브랜드로 언급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준지’는 현재 전세계 30개국 12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는 파리 컬렉션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영국 패션 전문지 BoF(The Business of Fashion)는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남성복 브랜드로 ‘준지’를 꼽기도 했다.

# 스트리트 캐주얼 ‘디스이즈네버댓’은 지난 3월 2018 F/W 헤라 서울패션위크에서 가장 주목받은 브랜드 중 하나였다. 스트리트 패션에 기반을 둔 브랜드가 런웨이에 서는 국내 최초 사례가 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디스이즈네버댓’은 그들의 스트리트 패션 오리진과 ‘나이키’ ‘고어텍스’ 등 글로벌 브랜드와의 콜래보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고, 브랜드의 새로운 변곡점을 마련했다.

‘준지’ ‘디스이즈네버댓’. 이들의 성공 사례 뒤에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준지’는 2011년 삼성에 인수돼 명실공히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했다. ‘디스이즈네버댓’은 2017년 삼성의 패션 지원 사업 sfdf(스몰 SFDF)의 1위를 차지하면서 상금과 함께 패션위크 런웨이 지원을 부상으로 수상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다양한 방면으로 브랜드 매니지먼트에 나서고 있다. 편집숍 ‘비이커’(왼쪽)와 YG와 합작해 론칭한 ‘노나곤’


패션 대기업이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통한 글로벌 홀세일 비즈니스를 새로운 성장모델로 삼고 있다. 콘텐츠로서 매력 있는 브랜드에 대기업의 강점인 ‘자본력’ ‘글로벌 네트워크’ ‘매니지먼트 노하우’를 더해 글로벌 시장에서 한류와 비즈니스가 더해진 ‘패션 한류’를 펼치겠다는 것이다.

패션 대기업의 이 같은 변화는 상품기획에서부터 유통망 구축, 판매 및 재고관리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고비용구조 일변도였던 현재 비즈니스 모델로는 더 이상 성장은 물론 수익을 낼 수 없다는 절실함에서 비롯되고 있다. 특히 국내외 소비자들과 공감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컬쳐코드를 공유하고 있는 가능성 있는 콘텐츠에 투자함으로써 초기 투자 리스크도 줄이고, 그에 따른 고정 비용도 줄이겠다는 시대정신도 반영돼 있다.


삼성의 비밀 병기 ‘준지’ ‘구호’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언급한 삼성물산 패션부문이다.

삼성은 ‘준지’를 인수해 고착화된 국내 패션 기업의 사업 방식에서 벗어나 글로벌 브랜드의 방식으로 브랜드를 전개했다. 삼성은 여느 국내 브랜드처럼 국내에 수십개의 백화점, 로드숍을 오픈하는 방식을 떨치고 유럽 컬렉션과 트레이드쇼를 참가하면서 디자이너 브랜드인 ‘준지’의 DNA를 지켰다. ‘글로벌 브랜드 육성’이라는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진 삼성은 ‘준지’가 단순한 의류 브랜드가 아닌 콘텐츠로 발전 가능한 브랜드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여성복 ‘구호’는 국내에서 1000억원의 외형을 자랑하는 브랜드로 입지를 굳힌데 이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 맞춘 브랜드 구조 변화가 눈에 띈다. 기획 일정은 국내보다 6개월 가량 앞당기고 각 컬렉션 별 컬러, 소재, 스타일을 나눠 바이어의 입맛에 맞는 상품 제안에 집중했다. 미국 현지에서 꾸준히 프레젠테이션도 진행해 바이어의 인정을 받고자 노력했다. 이는 곧 세일즈, 홀세일을 사업의 핵심으로 뒀다는 방증이다. 이를 통해 ‘구호’는 미국 버그도프굿맨 백화점, 홍콩 레인크로포드, 컨템포러리 온라인 편집숍 쎈스에 입점해 글로벌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sfdf 수상으로 서울 패션위크 런웨이에 오른 ‘디스이즈네버댓’


문화와 결합한 패션 DNA 글로벌 스트리트 웨어로
앞선 두 브랜드가 디자이너 브랜드의 DNA와 대기업의 자본, 시스템을 결합한 구조였다면 ‘노나곤’은 패션을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바라봤다.

‘노나곤’은 한류라는 강력한 콘텐츠에 삼성이 가진 패션 비즈니스를 결합했다. 음악, 드라마, 영화 같은 문화 콘텐츠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은 한류처럼 패션도 이 같은 콘텐츠로 육성하겠다는 것. 이에 삼성은 YG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조인트벤처 네추럴나인을 설립해 ‘노나곤’을 론칭, YG 스타들의 음악과 잘 매치되는 스트리트 웨어를 선보인다.

브랜드 전개 방식도 국내외 스트리트 브랜드처럼 온오프라인 편집숍 입점 등 홀세일 비즈니스다. 현재 ‘비이커’와 ‘꼬르소꼬모’ ‘I.T’ 등 국내외 유명 숍과 거래 중이며, 특히 ‘I.T’의 경우 홍콩 6개점, 중국 내 7개점에서 ‘노나곤’을 사입하는 등 핵심 브랜드로 전개하고 있다.


이제는 B2B2C 시대
이 같은 삼성의 브랜드 사업은 국내 패션 대기업에게 새로운 B2B2C 모델의 가능성도 내비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B2C로 검증을 마친 브랜드를 해외 시장 B2B를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육성하는 것이다.

삼성의 경우에는 SFDF, sfdf(스몰 SFDF) 등의 지원 사업과 ‘비이커’ ‘어나더샵’ 등의 온오프라인 편집숍으로 브랜드를 직접 해외 시장에 소개하고 홀세일 비즈니스를 대행하는 세일즈 랩의 역할까지 확장이 가능하다.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하는 OSMU(원 소스 멀티 유즈)인 것. 실제로도 ‘비이커’에 대한 해외 바이어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이 같은 사업 형태에 기대감이 쏠리는 이유다.

김기환 ‘스테레오바이널즈’ 대표는 “컬렉션 출시 팝업, 행사는 대부분 ‘비이커’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행사 뒤에는 해외 바이어의 바잉 연락도 더 많아지는 편”이라고 말했다.

강민주 ‘비이커’ CD는 “해외 바이어들에게 한국 시장은 일본, 중국의 윈도우(창문)와 같은 곳이다. ‘비이커’에 대한 해외 바이어의 관심이 날이 다르게 늘어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접촉하는 해외 바이어들도 국내 브랜드 소개를 요청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LF, 코오롱도 브랜드 인수와 편집숍 사업을 운영하는 만큼 이에 대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코오롱은 ‘쿠론’ ‘슈콤마보니’를 인수해 운영 중이고, 해외 편집으로 시작해 어엿한 편집 브랜드로 인큐베이팅에 성공한 ‘시리즈’를 보유하고 있다. ‘시리즈’는 해외 브랜드를 사입 판매하면서 PB를 개발, 고유의 스타일을 보유한 브랜드로 육성했다. 더 나아가 국내외 브랜드를 함께 제안하는 ‘시리즈 코너’를 론칭, 콘텐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시리즈’는 해외 바잉 노하우, 브랜드 인큐베이팅 경험을 살려 2013년에는 ‘커스텀멜로우’와 함께 이탈리아 ‘피티워모’에 참가하며 2만 달러 가까운 바잉을 체결하는 등 해외 시장의 인정도 받았다. 또한 ‘쿠론’은 프랑스의 ‘방돔 프랑스’를 시작으로 올 4월 일본 ‘패션월드도쿄’에 참가하며 해외 시장을 노크 중이다.


코오롱FnC의 ‘시리즈 코너’


TBH글로벌은 이 같은 비즈니스에 직접 나서 사업을 구체화했다. 2014년 이윤호 대표(현 TBH글로벌 이사)의 수제화 브랜드 ‘스펠로’를 인수한 이 회사는 ‘TBH쇼룸’을 출범, 쇼룸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사업 총괄은 ‘스펠로’를 전개하며 쇼룸, 홀세일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윤호 이사가 맡았다.


‘TBH쇼룸’은 ‘비욘드클로젯’의 애견 상품, 모자 ‘화이트샌즈’, 소녀시대 출신 제시카의 브랜드를 한자리에 구성해 지난 10월 상하이 CHIC-영블러드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 회사는 ‘베이직하우스’를 전개하며 구축한 노하우를 적극 활용 중이다. 특히 생산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 국내 브랜드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 현지 생산 라인을 지원한다. 입점 브랜드의 샘플을 받아 TBH글로벌이 직접 생산하는 테스트 과정을 거쳐 바이어의 입맛에 맞는 홀세일 가격을 맞춘다.


상하이 CHIC-영블러드에 참가한 TBH글로벌의 ‘TBH쇼룸’


한국의 ‘꼼데가르송’ 가능할까
일본 ‘꼼데가르송’은 ‘도버 스트리트 마켓’과 ‘10꼬르소꼬모’와 같은 편집숍 사업을 함께 운영한다. ‘꼼데가르송’의 편집숍 사업은 단순히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꼼데가르송’은 실력있는 젊은 브랜드에게 얼마든지 매장 공간을 내어줄 뿐만 아니라 브랜드 전개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이어왔다.

일본의 ‘언더커버’ ‘사카이’, 러시아 ‘고샤 루브친스키’는 대표적으로 레이 가와쿠보의 눈에 띄어 실력을 인정 받은 브랜드다. ‘고샤 루브친스키’가 ‘꼼데가르송’의 생산 시스템을 지원받아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레이 가와쿠보는 디자이너이자 기업가로서 후진 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이 같은 활동을 이어오고 있지만 그녀는 거대한 패션 기업과 편집 매장(유통)이 패션 매니지먼트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 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국내 대표적인 패션 지원 사업이라면 삼성의 SFDF와 sfdf(스몰 SFDF)를 들 수 있다. SFDF는 수상자에게 10만 달러(약 1억원)의 후원금과 국내외 홍보를 비롯한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2005년 시작 후 현재까지 20명(팀)의 브랜드가 SFDF의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앞서 언급한 ‘준지’의 정욱준 디자이너는 이례적으로 2009~2011년 까지 세 차례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SFDF가 종전까지 ‘글로벌 브랜드’를 키우는데 포커스를 맞췄다면 sfdf는 국내에서 전개되는 브랜드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어워드다. 지난해 첫 발을 뗀 sfdf의 1위는 스트리트 캐주얼 ‘디스이즈네버댓’이 차지했으며, 상금과 함께 2018 F/W 헤라 서울패션위크 런웨이 무대를 지원받았다.

삼성 패션과의 협업 기회도 제공한다. 자사 편집숍 ‘비이커’ 입점은 물론 ‘에잇세컨즈’는 지난 3월 sfdf 수상자 김성은 디자이너의 ‘텔더트루스’와 콜래보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홍석우 패션 에세이스트는 “SFDF는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패션 지원 사업 중에서 가장 실질적인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이 주는 상이라는 상징성과 10년이 넘는 시간이 더해지면서 해외 바이어들도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꼼데가르송'의 편집숍 '도버스트리트마켓'에서 판매 중인 '고샤 루브친스키'

관련기사
‘진짜’ 리테일러로 진화 중인 대기업 편집숍
변화된 시장에 올라 탈 새로운 채널과 플랫폼
<홍석우의 보이후드> 글로벌 시대, 한국 홀세일 브랜드의 경쟁력과 과제
리테일 시대 핵심 콘텐츠? ‘성공하는 홀세일 브랜드’
강민주 삼성물산 패션부문 ‘비이커’ CD
노정호 소후드 대표
안정우 에비나 대표 & 고영지 실장
파워 홀세일 브랜드, 시장의 판도를 바꾸다
슈즈 마켓 변화 주도하는 ‘파워 홀세일 브랜드’
차별화 콘텐츠로 승부하는 ‘슈즈 편집숍’
‘노나곤’ 해외 리테일러가 먼저 인정
글로벌 130여 편집숍이 ‘준지’의 바이어
B2C로 쌓은 아이덴티티, 글로벌 비즈 성공 열쇠로
'난닝구', 中 직구몰 선두, 공급경쟁력 제고로 홀세일 성장 기대
배럴즈, 히트 콘텐츠 제조기로 우뚝
‘첨스’ 일본 찍고 국내 시장에서 상승세
오리지널 워크웨어 ‘칼하트’가 왔다
국내 대표 아메카지? ‘유니폼브릿지’
‘씨루틴’ 모자, 중국 홀세일 마켓서 通했다
블레스앤코, 매장별 커스터마이징으로 효과 뿜뿜
‘길단’ 무지 티셔츠로 국내 소비자 사로잡아
‘닥터마틴’에 불황은 없다
리테일로 브랜딩, 홀세일로 지속성장 인프라 구축
‘아바몰리’, 최고 소재와 최신 트렌드, 홀세일 Biz 기대주
‘스테레오바이널즈’, 리테일러 선정 ‘킬러 콘텐츠’로
키즈까지 사로잡은 ‘블루마운틴’ 열풍…‘블마랑키즈’로
‘랭앤루’,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B2B2C 순항
‘샐러드볼’, 해외 홀세일 2배 키운다
중국 홀세일 시장 개척하는 CYB
로얄, ‘마이크로 매니지먼트’가 성공의 힘
이재수 동광인터내셔날 대표
최선미 지티에스글로벌 대표
신찬호 레이어 대표
최정희 스튜어트 상무
동대문 인프라, 글로벌 브랜드로 꽃 피운다
이옥선 투데이브랜드 대표
김현정 토핏 디렉터
곽영주 리쥬네브 대표
이혜연 르이엘 대표
최충훈 두칸 대표
곽창훈 앨리스마샤 대표
리테일 Biz 핵심은 ‘관계성’과 ‘지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