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소비세력 세대교체, 영 소비 파워가 움직인다

2009-10-12 김정명 기자 kjm@fi.co.kr



젊은 소비층의 변화는 패션 비즈니스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소비층에 맞춰져 있는 기존의 상품 개발, 마케팅, 영업 전략으로는 새로운 소비세력의 취향을 맞춘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브랜드에서 제안하는 상품과 마케팅은 더 이상 이들에게 화제거리가 되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무시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아이템을 찾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동대문을 누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 쇼핑몰에서 직접 구매해 페덱스를 통해 배송받기도 한다. 백화점, 가두매장 등 전통적인 패션 유통 채널이 갖는 파워는 점차 줄어들고 대신 젊은이들이 몰리는 몰(mall)형 유통업체와 인터넷 쇼핑몰 시장은 날이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소비 시장의 세대교체가 시작됐다.



힙합 룩, 스키니 룩, 민석 룩?

얼마 전 모 휴대전화 제조 회사는 ‘민석 룩’이라는 이름의 광고 한 편으로 이슈를 일으켰다. 이 광고는 “민석 룩이 뭔데?”라는 디자이너 정욱준의 질문에 심드렁하게 “내 이름”이라고 답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표현했다. 힙합 룩이건 스키니 룩이건 애스닉 룩이건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자신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요즘 젊은층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

사실 원래 각본에는 ‘이거 할아버지가 물려준 옷, 그랜드파더 룩이야’라고 되어 있었는데 촬영 현장에서 모델인 곽민석의 실제 이름을 따서 ‘민석 룩’으로 수정되었다고 한다. 이 광고가 주목 받은 이유는 실제 젊은층의 의식을 가감없이 반영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기 원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누군가 자신을 어떠한 유형으로 규정짓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그래서 이들은 외모, 연령, 출신학교, 성적 등에 따라 관계가 형성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다.

이전 세대에게 패션이 자신의 모습을 더 과장해서 표현하는 과시욕에 편승한 경향이 강하다면 이들에게 패션은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활용된다. 때문에 브랜드에서 제안하는 룩이나 코디네이션은 이들에게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것이다. 오히려 브랜드에서 제안하는 것보다 더 감각적이고 세련된 스타일을 표현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또 인터넷, 휴대전화 등 다양한 IT 기기들을 통해 정보 습득 능력이 매우 빠르고 관심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문가를 뺨치는 수준이다. 결국 기업에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수준이 높다는 결론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발행한 ‘글로벌 D세대의 소비 트렌드’ 보고서에서 이들 세대의 특성을 ‘싫증을 잘 내고 변화를 앞서감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길 원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유행을 추구하는 패션 노마드’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D세대는 인터넷의 일상화, 대중 미디어의 글로벌화, 글로벌 브랜드의 확산, 거대 유통기업의 성장 등에 힘입어 비슷한 소비 패턴을 보이는 젊은이 세대가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등장하고 있다는데 근거해서 동질화되고 있는 전 세계의 10대를 뜻한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기를 다루며 성장하고 인터넷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7~2008년 국내외에서 선정된 히트상품을 모집단으로 총 88개의 글로벌 D세대를 대상 히트 상품을 분석한 결과 △익면(匿面)의 관계 형성 △대표 아이콘 추종 △패션 노마드 지향 △반항심 표출 등이 이들 세대의 핵심 소비 트렌드로 나타났다. 글로벌 D세대의 구매력은 2002년 이후 크게 상승해 2005년 현재 1.9조 달러(세계 경상 GDP의 4.3%)를 상회하고 있다. 이들의 구매력 증가율은 6.8%로 점차 감소하고 있는 다른 세대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링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 도시가구의 경우 소비의 44%를 소황제로 불리는 13~18세 자녀의 뜻에 따라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글로벌 D세대의 효과적인 공략을 위해서는 우선 이들 세대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해 선호하는 디자인, 기능뿐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 및 가치관의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상품의 감성적 가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을 감안해 찰나의 순간에 상품의 매력이 발산될 수 있도록 상품을 기획해야 하며, 이들의 공통 화법인 글로벌 펀 코드와 주된 놀이 공간인 인터넷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들이 신상품을 접하고 익히는 체험 매장 등을 설치해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젊은 소비층
새로운 패션 문화를 이끌며 세대교체
패션 소비 중심 세력으로 떠올라



10~20대는 구매력이 떨어진다?

국내 패션 기업이 이들 세대 공략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소득의 대부분을 용돈에 의존하는 특성상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쉽게 말해 돈 안 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이런 전통적인 논리에도 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이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연령별 소비 비율을 분석한 결과 명동 본점에서 20대 미만이 차지하는 비율이 34%로 나타났다. 30대가 32%, 40대가 14% 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또 10대 고객의 매출 증가율도 2007년 8.6%에서 2009년 1~6월 10.2%로 눈에 띄게 증가했다.

더구나 연도별 고객 구성비를 따져보면 20대에게는 불황도 없다. 2005년 전 점포에서 제품을 구매한 전체 고객 가운데 20대 미만이 20%를 차지했지만 2008년에는 27%를 차지했다. 백화점 제품의 4분의 1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롯데백화점 회원 카드를 소지한 고객을 대상으로 한 분석인 만큼 경우에 따라서 실제 비중은 더 높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롯데백화점은 이러한 통계를 바탕으로 최근 캐주얼 존의 매장 구성을 세분화해 15~20세 고객을 타깃으로 한 ‘쿨 캐주얼’이라는 특화 매장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 20대의 소비 영향력이 가장 큰 유통 부분은 온라인 쇼핑몰이다. 인터넷 사용에 능한 세대적 특성으로 온라인 쇼핑에서 20대의 파워는 큰 입김을 발휘하고 있다. G마켓 전체 회원수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을 약 40% 가량이다. 이들을 놓친다면 매출은 물론 향후 전망 또한 불투명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를 위해 온라인 쇼핑몰들은 다각적인 접근으로 이들을 공략하고 있다. G마켓은 20대 소비자들이 유행에 민감하고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데 착안해 ‘지마켓 스타숍’을 운영하고 있다. 연예인이 신거나 입으면 좀더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후광 효과로 제품이 돋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겉치장에 관심이 많은 점에서 패션 의류와 잡화 등을 화보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또 G-트렌드라는 무가지를 발행해 연예인을 표지 모델로 내세워 ‘지마켓=패션 쇼핑몰’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

지마켓 관계자는 "20대 소비자는 통념적으로 구매력이 약한 대학생, 사회 초년생 정도로 인식되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막강한 구매 파워를 발휘하는 ‘수퍼 소비계층’으로 떠올랐다”면서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예전에는 전체적으로 유행하면 너도나도 따라서 구입하는 성향이 강했다면 지금은 주체적인 소비자로서 분명한 가치가 있어야 지갑을 여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걸 그룹 득세, 한국판 ‘갸루(ギャル;girl) 혁명의 시작?

일본에서는 이들 젊은 여성이 침체된 산업 전반을 일으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뜻에서 ‘갸루 산업 혁명’이라고까지 부른다. 갸루란 ‘소녀’를 뜻하는 영어 ‘걸(girl)’의 일본식 표현이다. 원래 금발 염색에 성형수술, 짙은 눈 화장 등으로 애니메이션 만화에나 나올법한 공주풍 이미지를 풍기던 젊은 일본 여성을 가리키던 속어였지만 최근에는 자신을 꾸미는 데 적극적이며 돈을 쓰는 데도 아낌이 없는 소비자를 지칭하는 의미로 발전했다. 이들이 활성화하면서 관련 업계도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금융위기 여파로 일본 전체적으로는 불황을 겪고 있지만 유독 갸루 관련 산업은 불황조차 피해갔다고 할 정도다. KOTRA는 최근 한 일본 시장 보고서에서 “감수성이 강한 이들 세대는 다양한 상품을 스스로 주도적으로 편집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만큼 브랜드에 집착하기보다는 스타일을 고려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소개했다.

일본 시장에서 젊은 여성들의 영향력이 커진 것을 가장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도쿄 걸즈 컬렉션이다. 2005년 시작해 올 3월까지 8차례 행사를 치렀다. 올 3월에는 「빔스」 「킷슨」 「질스튜어트」 「세실맥비」 「립서비스」 「유니클로」 등 일본 뿐만 아니라 전세계 유명 브랜드 26개가 참여했다. 이틀 동안 4만명이 넘는 관객이 모여 젊은 소비층의 관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최근 국내 대중 음악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걸 그룹의 득세도 젊은 소비층의 의식 변화와 맞물린다. 소비자들이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아이콘으로 걸 그룹을 선택하면서 이들에 대한 젊은층의 열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감수성 강한 글로벌 D세대는
다양한 상품을 스스로 편집하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개성을 표현



소비자는 광속(光速), 브랜드는 거북이

젊은 소비층의 의식 변화를 취재하기 위해 또래에서 패션 피플로 통하는 23세 김유진씨를 만났다. 김 씨는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귀국하여 대학에서는 패션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평소 옷과 사진에 관심이 많아 장래 패션에디터를 꿈꾸고 있다.

김유진씨는 평소 국내 브랜드에 관심이 많냐는 기자의 질문에 “백화점에서 파는 국내 브랜드들은 젊은층의 취향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트렌디한 아이템을 살 때는 동대문이나 인터넷, 베이직한 아이템을 살 때는 「아메리칸어패럴」이나 「유니클로」를 주로 이용한다”고 말했다.

그의 취미는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는 것이다. 인터넷 브라우저 즐겨찾기에는 콘셉트별로 분류한 쇼핑몰만 20개가 넘는다. 백화점은 사람도 많고 비슷비슷한 브랜드가 너무 많아 명품관을 둘러보는 것 외에는 잘 가지 않는다. 김 씨는 해외 패션 정보에도 빠삭하다. 올 여름에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알렉산더 맥퀸 티셔츠를 영국에 있는 친구를 통해 구입했다.

김 씨는 “티셔츠 한 장에 40만원을 지불했지만 전혀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여름에는 티셔츠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옷을 다 그렇게 사지는 않는다. 5000원짜리 구제 티셔츠도 예쁘기만 하면 그만이고, 빈티지 숍에서 ‘숨겨진 보물’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국내 브랜드 매장에 가면 옷도 특별하지 않고, 매장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나 감동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젊은 소비층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기존의 논리로는 변화의 관찰이 어려울 정도로 바뀌어 있다. 어쩌면 그들은 계속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는 데 우리 패션 브랜드들이 당장의 외형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채 그들의 변화를 간과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브랜드들이 변화하지 않으면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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