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눈 앞에서 펼쳐진 ‘Fashion Revolution’
2019-01-24박진아 IT 칼럼니스트 jina@jinapark.net
스타트업과 기성 패션 기업간 각축전 예상… 통찰력이 관건


패션 산업은 지금 혁명의 문턱에 서 있다. 우리 눈 앞에서는 패션업계의 지형 변화가 매일 숨가쁘게 벌어지고 있다. '구찌'와 '루이비통' 같은 럭셔리 브랜드에서 'ZARA', 'H&M', '유니클로'에 이르는 글로벌 패션 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을 잠식해 들어오는 신흥 스타트업들의 위협받고 있다. 드디어 지난 몇 년 사이 글로벌 브랜드와 소매업계 최고경영자들은 테크가 비즈니스의 추동력임을 인식하고 테크를 제품기획과 디자인-생산공정-마케팅-유통-소매에 이르는 비즈니스 전과정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 인구통계 변수 이해하면 시장이 보인다


2018년을 기점으로 미국에서는 드디어 밀레니얼 세대(1980~2004년 출생)가 베이비부머 세대를 앞질렀다. 미국의 경제예측 전문가 해리 덴트의 책 <인구 절벽>에 따르면, 한국은 2010년부터 약 10년 동안 소비가 최고조를 달한 후 하강국면에 접어들지만 아직 희망은 있다.


미국 외에 중국, 인도, 아프리카 주도로 글로벌 인구는 계속 증가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 하에 약 10년 후인 오는 2030년 즈음이 되면 패션업계는 미래 인구 약 85억 명(2017년 기준 세계 총인구는 75억, 자료: UN)중 80%가 중산층 수준의 소비성향을 누리게 될 전망이다. 현재 선진국을 맞먹는 왕성한 자기표현 욕구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면 의류 소비는 지금의 두 배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 패션스타트업들의 핵심 전략 무기는 소비자와 밀착된 감성 포착력과 인터넷 소셜미디어에 기반한 기동적 마케팅이다. 소비의 주체와 트렌드도 세대 교체되고 있다. 그같은 세계 인구구성 변화는 향후 패션 트렌드와 소매 비즈니스 환경에 급격한 격변을 가격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세계 주소비자층이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중심으로 축이 기울어 가는 사이, 앞으로 패션업계가 느낄 대전환의 긴장세는 더 가속화되고 첨예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통계 변수의 급변화에 테크까지 가세한다면 대중 패션시장을 선도할 취향과 구매행태 또한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롭고 경이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패션아이덴티티 예측가 클라라 에스칼레라(Clara Escalera)의 ‘하이퍼스티션(Hyperstition)’ 프로젝트. 증강현실(AR)을 패션으로 포용하여 디지털과 현실의 융합을 실험한다

◇ 테크, 불확실성 최소화하는 솔루션인가?


'4차 산업혁명이 온다!' - 제4차 산업(Industry 4.0)이 실현된 미래에는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이 뒷받침된 테크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며 패션업계도 예외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소비자가 주도돼 구축되는 빅데이터, 데이터 애널리틱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이 기반된 로보틱스, 사물인터넷(IoT), AR과 VR(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이 통합ㆍ응용된 정보통신기술은 우리 주변의 물리적 세상과 디지털 세상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여러 기술이 다중으로 융합(fusion)된 '디지털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미래 비전이다. 그리고 글로벌 패션업계의 거물급 플레이어들과 신흥 스타트업들은 이미 이 '멋진 신세계'를 향한 기술혁신 실험을 본격화했다.


오늘날 패션산업은 총 1조 3천 억 달러의 규모의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산업분야다. 특히 1980년대 등장한 이후로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은 메가산업으로 성장했다.


유행에 민첩히 반응해 생산된 저렴하고 실용적인 대중적 의류가 글로벌 규모로 유통되면서 오늘날 전세계 소비자들은 30년 전에 비해 의류를 5배 더 많이 구입한다. 그런 추세로 미루어 추정해 보건대, 이미 연간 약 8백 억 개의 의류를 생산하며 전세계 3억 5천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는 패션산업은 앞으로도 성장잠재력은 무궁구진하다. (자료: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EIU)


션은 그 어떤 다른 업계 보다 급속히 변화하는 소비자의 취향과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분야다. 패션의 디지털화는 이제까지 업계가 해오던 저가 대량생산ㆍ대량매출 패션산업 체제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신제품 기획과 디자인 과정 또한 점점 일취월장 중인 AI와 머신러닝 기술을 응용해 소비자의 욕구와 취향을 이해하려 시도한다. 과거 의류 디자인 과정은 디자이너 개인의 감성과 직관에 의거한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라면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기반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최소화시켜줄 것이라 기약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의류산업은 트렌드 예측 업체들에 크게 의존해왔다. 가까운 미래, 인공지능이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라 디자인을 제안하게 된다면 현재 업계서 활동 중인 트렌드 포캐스팅 기업들 중 50%가 폐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이미 세계 최대 트렌드 예측 연구소인 WGSN를 비롯한 글로벌 규모의 트렌드 예측 업체들은 방대한 분량의 정치 설문조사와 소셜미디어 데이터에 기초한 트렌드 분석 결과를 예측에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효율적인 데이터 애널리틱스가 보다 광범위하게 응용될 수 있다면 패션업계에서도 '트렌드는 당신의 친구'라는 기존 금융업계의 잠언은 진리가 될 것이다.


◇ 다윗의 기습에 테크로 대항하는 골리앗들


구글, 핀터레스트, 엘르, 보그, 바이두 같은 거물급 인터넷 기업들은 막강하고 방대한 데이터 수집력을 무기 삼아 패션산업 진입을 노린다. 정기적으로 소비자 쇼핑 트렌드 결과를 분석하여 스타일, 원단, 색상을 디자이너에 제안해준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런가하면 미국 온라인 상거래 기업 아마존(Amazon)은 패션 트렌드 예측과 인공지능 기술과 접목시켜 패션디자인의 오토메이션을 조용히 실현 중인 기업이다. 이미 미국 내 최대 의류소매상 위치를 점유한 아마존은 AWS(아마존웹서비스, Amazon Web Service)의 막강한 데이터 수집력을 활용, 인공지능의 알고리듬이 1) 쇼설미디어 기반 트렌딩 이미지를 분석하고 2) 온라인 구매 고객 상대 패션 어드바이스를 제공하면서 3) 디자인, 생산 및 유통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AI 패션디자인'과 '패션 오토메이션'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두 의류업체 '자라'와 'H&M'은 특히 지난 한 두 해 사이 매출 하락을 경험했다. 위기감을 느낀 '자라'는 SNS 기반 빅데이터 분석과 신상품의 기획부터 매장 진열까지 7~25일 안에 실현할 수 있는 유연한 생산시스템을 구축했다. 일각에서는 이들 거물급 패스트패션 브랜드는 오프라인 패션 리테일 업계가 전자소매업계에 항복을 선언했듯 신흥 온라인 리테일러들에게 몰락의 운명을 맞을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급변하는 리테일 현실을 반영하듯, 의류 소매업체들중 75%는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두 글로벌 공룡들이 매출 하락을 겪고 있는 사이, 'ASOS'나 '부후(Boohoo)' 등 신흥 스타트업 업체들이 밀레니얼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최신 스타일과 이커머스 마케팅 전략으로 레거시 브랜드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패션 구매를 하는 소비자들은 소매매장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갔다. 최근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빅데이터 분석용 소프트웨어의 보급,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력 향상, 데이터 저장 비용의 저렴화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성 어패럴 생산 및 유통체제의 업체들이 테크 기반 체제로 이행하려면 사업 재편성과 비용 면에서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Amazon Web Services 웹페이지

발렌시아가의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패턴디자인. 최근 밀레니얼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환경친화성과 경영투명성, 브랜드 평판 좌우


여태까지 패스트패션이 누려오던 대중적 인기 뒤엔 불편한 진실이 감춰져 있다. 석유 산업 다음으로 공해와 쓰레기의 원인이 되는 가장 반환경적 산업이라는 오명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H&M'은 2017년 총 생산 의류 중 43억 원 어치를 팔아 보지도 못하고 쓰레기 매립장에 폐기시킨다고 시인했다.


환경연구 결과에 따르면 직물 및 의류생산 공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공해 요소는 모든 국제 항공기와 항해선박 배출량을 도합한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패션업계의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또 두려워하는 것은 신흥 스타트업 기업들의 도전 말고 또 있다. 패스트패션의 대중화 이후 패션 산업이 환경에 가장 유해한 산업 분야로 지목되면서 브랜드 가치와 명성에 대한 손상을 입는 것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 등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기업의 윤리적 경영은 소비를 위해 브랜드를 선택하는 하나의 기준이 됐다.


예를 들어, 미국 서부권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에버레인(Everlane)'은 디자인-원단공급-생산-유통에 이르는 전과정을 투명하고 공개하는 정책을 활용하고, 2015년 창립한 도시지향 스타일의 패션 스타트업인 '어데이(Aday)'는 폐기될 천연원단과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미래주의 '하이테크 어패럴'을 지향하는 전략이 소비자들 사이서 주효했다.


◇ 비전 제시와 독창적 디자인, 여전히 인간의 몫


테크는 '디스럽트(disrupt)'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 관습을 뒤흔들고 있다. 패션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신흥 스타트업 패션 및 뷰티 업체들은 젊은 소비자들이 중시하는 가치관을 부각시키고 소비자 공감대를 사로잡는 현대적 미관으로 호소하여 소비자들을 온라인 쇼핑 플랫폼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이에 위협받고 있는 기성 대형 패션 브랜드는 자구책으로써 보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테크 - 빅데이터, 인공지능, 스마트화와 자동화 등 - 를 동원한 실험에 투자한다. 문제는 여전히 실용 가능한 단계까지 완성된 기술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다.


테크와 감각으로 트랜드를 선도하는 다수의 창의적인 신흥 스타트업 기업들과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패션 테크를 실험하는 기성 패션 브랜드 사이의 각축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먼 미래 알고리듬이 미래 트렌드를 예측해 낼 수 있는 날은 분명 온다. 그러나 그 때까지 창조적 비전 제시, 통찰력있는 아트 디렉션, 독창적인 디자인 창조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H&M’은 2017년 총 생산 의류 중 32억원 어치를 팔아 보지도 못하고 쓰레기 매립장에 폐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