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우의 보이후드> 서울패션위크로 미리보는 올 가을 여성복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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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우 패션 에세이스트

2018-08-13 오전 9:35:44

폭염의 나날이다. 하지만 곧 새로운 계절이 온다. 이미 도시 곳곳 패션 매장과 편집매장은 돌아오는 가을 채비를 서두른다.

지금 ‘서울’의 여성복 트렌드를 들여다보기 위하여 가장 먼저 눈길을 보낼 곳은 지난 3월, 계절을 앞질러 막을 내린 ‘2018년도 가을/겨울 헤라서울패션위크’이다. ‘키옥’과 ‘로우클래식’, ‘더 센토르’와 ‘카이’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각기 서울의 다양한 매력을 대표하는 베테랑 브랜드가 된 패션 디자이너들이 그들 각자의 유행과 미학을 선보인다.


Kiok by Crayon Lee & Coco J. Lee


◇ 키옥 Kiok by Crayon Lee & Coco J. Lee

‘키옥’의 정체성이자 시작과 끝인 데님 소재는 항상 컬렉션을 기다리며 궁금해지는 요소다.

트러커 재킷 허리선을 살려 데님 코르셋 디자인으로 완성한 상의를 짓고, 단아하고 귀여운 후드 리본 장식을 단 버튼다운 셔츠에는 바지 주머니를 밖으로 내고 펄럭이는 실루엣이 복고적인 청바지를 스타일링한다. 체크 무늬 재킷과 데님 재킷을 위아래로 결합하거나, 한껏 추어올린 청바지 허리춤에 가느다란 실루엣의 회색 바지를 덧대는 식으로 완급을 조절한다. 성격이 뚜렷한 소재를 브랜드 일부로 삼으면서도, 결과물이 구태의연하지 않고 바로 거리에서 입고 다니기 좋은 일상복의 범주에 든다.

지난 컬렉션을 복기하면, 펼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상업적인 요소를 덜어낸 듯한 시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컬렉션은 둘의 균형을 탁월하게 유지하며 쇼를 보는 관객이자 옷을 입는 소비자 관점 모두 만족할 스타일이 많았다. 가장자리를 고스란히 드러낸 플레어 데님 청바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꾸준히 사랑받을 아이템이다. 데님과 울을 반씩 섞은 재킷과 치마 또한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여성들, 특히 ‘키옥’의 컬렉션을 꾸준히 본 이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넉넉한 치수에 후드 모자 지퍼가 얼굴 전체를 감싸도록 디자인한 올리브색 패딩 재킷은 남성복으로도 나와주었으면 한다. 곧이어 찰랑대는 분홍색 바늘땀 stitch 재봉선을 납작한 인형 옷처럼 재단한 회색 수트와 검정 코트 위에 넣은 컬렉션 마지막 두 벌이 쇼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 로우클래식 Low Classic by Lee Myoung sin

‘I feel at home here ? I feel quite ? my skin feels close to the earth when I walk out into the red hills as I did last night ? my cat following along like a dog.’

‘로우클래식’의 디자이너 이명신이 보낸 초대장에는 오랜 시간 말린 꽃의 줄기가 편안한 주말 오후 같은 문장 아래 담겼다. 몽환적이고 나른한 꽃을 그린 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어록이다.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바꾸는 데 도움을 주는 옷과 장신구가 컬렉션에 있었다. 살며시 드러난 검고 작은 가죽 가방을 들고, 판초처럼 몸을 감싸는 우아한 울 코트를 걸친 모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대장과 궤를 같이하는 PVC 비닐 소재 가방은 성별에 무관하게 들고 싶었다. 봉제선을 하얗게 드러낸 검정 원피스, 그리고 실크 새틴 바지 위 거친 표면의 스웨터는 이국 어느 도시 여행자가 떠오르는 작고 귀여운 웨이스트 백과 어울렸다.

이명신이 생각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란 그의 고객들이 친애하는 취향처럼 다양하다. 앙고라 울 소재의 체크 무늬 수트와 셔츠를 조합하고, 래글런 어깨와 풍성한 소매로 지은 차분한 코트 시리즈는 로우클래식이 제안하는 새로 올 계절의 전령이었다. 컬렉션 안에서 본 몇몇 이미지를 스치듯 어딘가에서 보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컬렉션 무대 위에서 우아한 소재를 파악하여 디자인으로 살려내고 - 양가죽 재킷 위에 네모나고 정직한 셔츠 주머니와 단추를 단 느낌처럼 - 다시 재킷 앞섬에 부드러운 조직감을 넣어 과장한 실루엣이 전위적으로 보이지 않는 디자인을 능숙하게 뽑아내는 디자이너는 드물다.

이명신은 동시대 패션 디자이너 중 ‘엘레강스’, 즉 우아한 여성복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디자이너다. 커다란 트렌치코트와 레인코트 시리즈는 큰 치수가 있다면 남자인 필자도 입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각각이 모두 다르면서도 통일감을 띠며, 고루하지 않고, 젊은이부터 나이 든 숙녀까지 함께 입을 수 있다. 로우 클래식이라는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점점 나이를 먹는 동안,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간과 조금씩 성숙하는 정서를 고스란히 느꼈다.


Low Classic


◇ 더 센토르 The Centaur by Yeranji

2008년 브랜드를 선보인 이래, 예란지 디자이너의 또 다른 자아와 같은 ‘더 센토르’는 언제나 그의 심상을 반영한 옷을 선보였다.

‘사적인 음모론의 글래머’라는 주제로 선보인 2018년도 가을/겨울 컬렉션은 이 확고한 세계관의 브랜드에 마력을 느낀 관객이라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디자이너는 ‘음모론’이라는 키워드가 지닌 혼란과 한계를 매혹적인 화려함, 그리고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을 관능미의 하나로 풀어냈다.

복고를 하나의 유행으로 접근하는 브랜드와 달리, 과거 색감과 소재, 실루엣과 정서를 탁월하게 지금의 옷으로 만드는 능력이 ‘더 센토르’에게 있다. 에메랄드빛 스타킹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둥근 실루엣의 검정 울코트 사이로 드러난 레이스 장식 셔츠는 누군가 모방한다고 해서 따라잡을 수 있는 종류의 스타일이 아니다. 하이웨이스트 스톤워싱 청바지와 함께 입은 연푸른 꽃무늬 코트, 인조 모피 재킷과 PVC 비닐 소재의 긴 치마, 몸에 꼭 맞는 자줏빛 바지 정장은 남들의 시선과 관계없는 무언가였다. 자신의 취향과 신념처럼 사람 내면의 이야기를 확실하게 인지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친애하는 컬렉션. 더 센토르의 ‘글래머러스’란 세상이 정의한 그것과는 애초에 다른 방향이다. 그 선명한 색채는 뚜렷하게 빛이 난다.


◇ 카이 Kye by Kathleen Kye

2011년 설립 이래 ‘카이’는 서울을 대표하는 독특한 패션 하우스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음악과 패션을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하던 동년배 한국 디자이너 중 발 빠르게 힙합에 기반을 둔 스타일을 제시하며 하이엔드 스트리트웨어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2018년도 가을/겨울 시즌은 이러한 면모를 좀 더 다양하게 변주했다. 부드러운 실루엣이 드러나도록 사선으로 입체 재단한 연분홍 벨벳 드레스와 원피스, 무릎 위로 과감하게 절개한 부츠컷 바지와 ‘KYE’ 모노그램을 덧입힌 황토색 반소매 상의와 바지는 면과 실크 새틴, 활동적인 저지 소재 등으로 이어졌다.

올리브색부터 강렬한 붉은색까지 색채 스펙트럼이 넓은 데 비해 컬렉션이 정돈된 이유는 분명했다. 남성복과 여성복 디자인을 각기 다르게 변주하면서도, 옷마다 통일성을 주며 절제했기 때문이다. 하운드투스 체크패턴의 코르셋 재킷과 카이 특유의 하트 로고 장식 못 스터드를 단 후드 파카, 가장자리를 해체한 버킷 모자로 이어지는 울 소재 시리즈는 유독 흥미로웠다.

지난해 울마크 프라이즈 아시아 여성복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2017-2018년도 인터네셔널 울마크 프라이즈 결승에 진출하면서 기존에 쓰지 않은 소재를 ‘카이’의 색과 디자인으로 담아냈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실루엣을 유지하면서, 기존 팬덤과 새로운 고객의 중간 지대를 찾는 과정에 카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격한 변화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조금 심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하고, 그 평균을 높게 끌어올리며 꾸준히 유지한다는 데 이 매혹적인 패션 브랜드의 저력이 있다.


◇ 복고와 오버사이즈 안에서 살아 숨쉬는 그들만의 스타일

앞서 자세히 들여다본 네 개의 디자이너 브랜드에는 교차하는 지점과 전혀 다른 지점이 공존한다. ‘복고’ 분위기와 풍염(glamorous)한 여성의 매력, 넉넉한 오버사이즈 실루엣은 여전히 존재하는 교집합이자 시즌의 주요 트렌드이다.

반대로 ‘키옥’의 ‘스트리트 테일러링’과 로우클래식의 서정적인 최소주의(minim alism), 그리고 사적인 취향을 듬뿍 담은 장식 요소가 강한 ‘더 센토르’와 ‘카이’의 주요 모티브가 된 스포츠웨어 룩은 하나로 묶기 어려운 지향점들이다. 그래도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선보인 컬렉션과 향후 출시할 기성복 및 액세서리들은 이번 시즌의 ‘키 룩’과 ‘키 아이템’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거리에 돌아다니는 관광객들의 옷차림에서 이제는 서울 여성들과 별반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는 점 역시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모바일 시대의 다양한 취향을 서울에서 받아들이고, 다시 내보내는 ‘유행’이란 생각보다 더 광범위하게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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