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 브레드&버터(이하 B&B)의 서울 행사에 대한 루머가 연일 난무하고 있다. 당사자인 서울시는 “내년 서울에서 행사를 개최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은 맞지만 아직 시기와 장소 등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정해진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대미술관이나 DDP 등 구체적인 장소가 거론되고 있으며, 서울시가 행사를 욕심내서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했다는 기사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서 서울시는 “현금 지원은 일절 없으며 장소에 대해서는 지원을 검토 중이다. B&B와 관련된 소식은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자들이나 외부 인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흘러나왔으며, 실무진들과는 구체적인 협의가 없었다. 마이스(MICE) 산업 육성에 애착을 가진 박 시장이 패션을 연계시키는 과정에서 국제적 이슈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B&B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의 이같은 정책 추진에 대해 패션업계에선 찬반 양론이 나뉘고 있다.
먼저 국내 패션산업이 리테일 시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유력 국제 전시회를 유치함으로써 얻어지는 부수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전시회를 통해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가 일시에 국내시장에 소개됨으로써 리테일러들은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패션산업에 대한 위상 상승도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패션을 서울의 대표 산업으로 인식하고 육성하겠다는 의지인 만큼 관련된 투자도 확대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또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중국 내 리테일러의 서울 방문으로 쇼핑, 숙박 등 관련 산업도 동시에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산업흐름 무시한 ‘전시 행정’의 폐해 우려
그러나 산업 흐름과 현실에 대한 고민없이 정치적인 목적을 앞세운 전시 행정이란 측면에서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더욱이 B&B 도입 배경이 10여년간 지원하고도, 매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산업 흐름과 겉돌고 있는 ‘서울패션위크’를 보완하기 위한 차원이라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패션업계 한 전문가는 “전시 산업은 하드웨어만 갖추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흐름에 맞춰 전시회를 기획하고, 적절한 콘텐츠를 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해당 산업의 소프트웨어에 전문성 있는 PCO(Professional Con vention Organizers)를 중심으로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먼저 짜야 한다. 패션산업이 컬렉션이 아닌 컨벤션 중심으로 성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국내 산업과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선행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최근 문화부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시장을 제대로 채우지도 못하고 공짜 부스만 남발한 ‘패션코드’를 보더라도 보여주기 위한 전시 행정의 폐해를 실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사치품-저가(SPA) 이어 ‘미들 마켓’의 붕괴 우려
이들은 국내 패션산업의 붕괴도 우려했다. B&B를 통해 국내 시장에 무혈입성 하게될 브랜드로 인해 국내 리테일러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겠지만, 이제 막 싹을 틔우며 성장하고 있는 도메스틱 홀세일 브랜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란 지적이다.
한 홀세일 브랜드 경영자는 “지금도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와 홀세일 브랜드는 ‘위탁 판매’를 강요받고 있다. 판매수수료도 30~40%에 이르고 있어 어려움이 적지않다. 거창한 전시회를 가져오기 이전에 브랜드 양성과 판매 대행을 할 수 있는 쇼룸, 세일즈랩 등 리테일산업의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선행되야 한다”고 요구했다.
더욱이 최근 ‘유니클로’ ‘자라’ ‘H&M’ 등 저가 SPA 브랜드들이 국내 대형 유통업체의 호의 덕분에 무혈입성 이후 국내 패션산업이 큰 타격을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미들 마켓’도 무너진다는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 정책 입안자들은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패션업계 중론이다. 정책 수립에 앞서 전문가들과 함께 공청회를 열어 패션산업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인기 편집국장
ingi@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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