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초 도쿄 출장 길에 잠 안 오는 시간을 달래려고 호텔방에서 미국 LA의 비벌리힐스에서 열린 골든 글러브상 시상식 중계를 보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됐다.
각본상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여배우 에마 톰슨이 한 손에 굽이 15㎝쯤 되는 ‘크리스티앙 루부탱Christian Louboutin’의 킬힐과 다른 한 손엔 마티니 한 잔을 들고서 여성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는 듯이, 검은색 힐 바닥의 선명한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붉은 밑창 부분을 여성의 속박에 비유하며 힐을 내 팽개치는 연출과 함께 수상자를 발표하는 장면이었다.
지적인 이미지와 함께 말보다 실천으로 영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연기파 배우 엠마 톰슨의 이날 해프닝을 보면서 패션계에 일하는 사람으로서 한때는 국내의 연예인들 뿐 아니라 강남의 잘 나가는 유흥가 여성들의 유니폼 슈즈로 여겨지던 ‘크리스티앙 루부탱’과 유럽 패션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가 궁금해졌다. 그 이유는 50여년 전 있었던 사건 때문인데 1959년 9월 뉴욕의 유엔 총회에 처음으로 참석한 당시 구 소련의 수상 후루시쵸프가 철의 장막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서방 세계의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유명한 연설을 시작한다.
“나 보고 어떻게 이곳에 왔냐고 묻는데 이 구두를 신고 이 양복을 입고 왔다.” 하면서 신고 있던 이탈리아 로마의 작은 테일러인 ‘안젤로 리트리코Angelo Litrico’의 구두를 벗어 연설대에 올려 놓는 사건이 있었다. 이 이후 유럽의 2류 패션 국가인, 프랑스의 아류로 치부되던 이탈리아 패션은 단숨에 시실리 출신 촌뜨기 안젤로 리트리코와 더불어 패션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고 바야흐로 세계는 패션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패션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는 범용 상품 제조업으로 추락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이유를 단순한 경기 침체의 탓으로 돌리거나 ‘때가 되면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한 낙관론으로 버텨 내기에는 심각한 상태에 놓인 것이 현재의 패션산업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적어도 국내 패션산업만 놓고 보면…….
필자가 여러 번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 패션산업이 당면한 문제는 마땅한 대체나 보완 계획이 없는 상태로 특정 채널에 의존하면서 성장한 패션업이 특정 채널의 노후화에 따른 소비자의 관심 이반이라는 것이다. 90년대 비약적 성장으로 국내 패션업계를 주도했던 여성복 업계가 트렌드 종속이라는 쉬운 길을 따라 가다 보니 잃어버리고 만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인해 스스로 시장에서 생명력이라 할 수 있는 차별화 경쟁력의 상실에다가 설상가상 경제성장에 따른 시장 규모의 확대와 더불어 글로벌 시장의 편입에 따른 대형 글로벌 브랜드들과의 로컬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이라는 세 가지 악재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월 22일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되는 2014 World Economic Forum의 올해 주제는 ‘세계의 재편The Reshaping of the World: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에 대한 영향Consequences for Politics, Business and Society’으로 기술과 통신의 발달, 높아지는 지정학적 불안, 국가·지역별로 달라진 경제 상황 등이 빚어내는 '변화'가 불러온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길을 모색하기 위해 세계의 석학들과 리더들이 모여 토론을 벌인다. 세계의 리더들은 이번 포럼에서 너무 과도하게 위기관리 모드에 머물러 있는 세계 경제를 더 건설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드리운 불황의 그늘을 거두기 위한 세계 경제의 ‘리셋 버튼을 누르자’라는 주장들을 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경제의 거시적 흐름을 엿볼 중요한 네비게이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번 다보스 포럼이 불황의 늪에서 헤매는 국내 패션업계에도 많은 영향력을 미칠 것 이라고 생각한다. 다보스 포럼의 리더들이 불황 체계에 머무르지 말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된다는 주장은 비단 글로벌 기업들만의 과제가 아니라 국내 패션업계에 딱 들어맞는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거시 경제 관점에서 포럼이 2014 GLOBAL RISK 라는 테마로 발표한 구조적 실업이나 자연재해, 기후변화 대응, 소득 불균형과 같은 10가지 사항들에 대해서 적합성 혹은 신뢰성을 거론하기 이전에, 이미 이러한 사항들이 국내 패션업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문제들이라는 점은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만을 위한 일방적인 가진 자들의 대변 성격을 벗어나 모든 세계인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 패션산업 전반도 과거의 프로토 타입을 벗어나는 Reshaping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 구축에 나서야 할 것이고 이 질서 구축은 글로벌 스탠다드의 기준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Reset and reshaping the fashion future !!!
김묘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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