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업계, 수요 느는데 공급은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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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빠진 럭셔리 업계

2011-07-08 오후 3:25:36


이머징 마켓의 수요 증가로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럭셔리 업계, 하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생산 시설 및 인력 부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샤넬과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은 수준 높은 장인을 키워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인력 양성에 나섰고, 프라다는 생산 단가를 낮추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프라다 컬렉션의 20%를 중국에서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그런가 하면 장인 정신과 ‘정통성’의 상징, ‘메이드 인 이탈리아’와 ‘메이드 인 프랑스’의 전통을 내세웠던 업체들이 속속 국외 하청 생산에 시선을 돌리면서 럭셔리 브랜드의 본질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성장이 크면 그 후유증도 크다고 했나? 현재 럭셔리 업계는 폭증하는 수요와 정체된 공급 사이에서 정통성과 실리의 간극을 뚫고 나갈 타협점을 찾지 못한 딜레마 상태에 빠져 있다.


‘럭셔리=장인의 역사’ 균열 조짐
가장 큰 문제는 럭셔리 브랜드 특유의 정교한 테일러링과 수작업, 복잡다단한 디테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젊은 장인을 찾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사실과 다른 과장 광고로 영국광고협회의 주의를 받았던 루이비통의 광고에서 보듯 ‘한 땀 한 땀, 한 조각 한 조각 잘라내어 잇고, 가죽을 단련시켜 탄생된 인고와 노력의 산물=럭셔리 핸드백’이란 공식을 만들어낸 장인의 존재는 럭셔리의 정통성 그 자체와 같다.
그런데 중국과 아시아, 이머징 마켓의 매출이 급증하는 지금 정작 복잡한 공정과 까다로운 디테일을 다룰 수 있는 숙련된 장인이 부족하고, 오랜 노력이 필요한 장인의 과정에 기꺼이 몸을 던지려는 지원자를 찾기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루이비통과 구찌의 지속적인 장인 구인 노력, ‘샤넬 공방’의 장인을 되새기는 순회 전시회를 열면서 ‘샤넬의 역사=장인의 역사’라는 사실을 새삼 강조한 샤넬, 복잡다단한 시계 부품 조립과 제조 과정을 감당해낼 숙련공의 부족으로 한숨을 쉬고 있는 까르띠에의 경우에서 보듯 많은 시간과 열정, 인내심이 필요한 장인, 혹은 ‘제조공’의 부족은 장기적으로 럭셔리 업계의 성장을 제한하는 암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럭셔리 업계가 장인 구인란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높다. 럭셔리 브랜드의 거만한 가격과 고고한 이미지와 달리, 정작 제품을 생산하는 장인들의 임금은 한없이 부실해 생산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것. 그간 럭셔리 업계가 브랜드의 정통성이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크리에이티비티를 강조하면서도 이를 ‘실제화’ 시키는 장인들은 낮은 임금과 낮은 사회적 인식에 노출되도록 방관해 온 것을 감안하면, ‘저임금에 일만 힘든’ 럭셔리 제조 인력 부족은 당연한 결과인 듯 도 싶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프랑스’ 사수는 엣말
상황이 이렇다 보니 럭셔리 업계는 럭셔리의 본고장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벗어나 루마니아, 터키. 베트남, 헝가리 등 생산비 절감과 생산량 확충을 한 번에 해결 할 수 있는 국외 하청을 늘리고 있다. 최근 “프라다 컬렉션의 20%를 중국에서 생산하겠다”고 천명한 프라다 관계자의 발언은 심화되는 수요와 공급의 갈등을 ‘해외 하청, 대규모 생산 라인’으로 해결하려는 럭셔리 업계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실제로 ‘메이드 인 이탈리아’ 혹은 ‘메이드 인 프랑스’ 개개 고객의 취향과 스타일을 만족시키는 개별화(Personalized) 혹은 맞춤(Customized) 제품 생산은 더 이상 ’공급 부족‘이라는 시장 경제 논리 아래 힘을 잃고, 실리가 정통성을 앞서는 상황이 되었다.


어떤 면에서 프라다는 럭셔리 업계가 공론화할 주제를 노골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럭셔리 브랜드의 생산지를 표시, 정통성을 보장하자는 법안을 제출하며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정통성을 유지하려는 베르사체의 목소리는 글로벌 불황 후 다가온 수요 증가와 매출 훈풍 앞에 상대적으로 작은 목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해외 하청 생산에 반기를 들고,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정통성을 고집해온 패션하우스 베르사체는 2011년 소비자들의 럭셔리 제품의 생산지를 추적할 수 있도록 텍스타일/레더/풋웨어에 제품 원산지를 의무적으로 부착하자는 ‘레구쪼니-베르사체(Reguzzoni-Versace)’ 법안을 제출, EU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밝지 않다. (이번 법안의 명칭은 이 법안을 발의한 이탈리아 국회위원 레구쪼니와 산토베르사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법안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는 라벨을 달기 위해서 제조 과정 중 최소 두 가지 제조 공정이 이탈리아 내에서 이뤄져야 하며, 이외의 제조 공정을 담당한 국가는 모두 추적할 수 있게 라벨링을 하도록 요구한다.


럭셔리의 진화 혹은 변질
브랜드 탄생지뿐 아니라 생산지까지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서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의 정통성과 이탈리아 장인 및 제조 공방을 살리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지나치게 ‘보호주의’를 담고 있어 EU 법안과 충돌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수정 없이 EU 의회를 쉽게 통과하긴 힘들다는 의견이 대세다.


일각에서는 럭셔리가 더 이상 ‘특정한 일부의 것’이 아닌 ‘메인 스트림 패션’으로 진화된 만큼 대중성 또는 대량 생산과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더 이상 장인 정신과 제한된 수요(생산)에 갇히기에는 시장 상황이 변화된 것. 그런 만큼 더 이상 개별화, 소수화, 혹은 생산의 순혈주의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세기 말 LVMH로 대변되는 ‘수익 중심의 경영 시스템’이 ‘패밀리 비즈니스 형태’의 럭셔리 업계에 ‘전문 경영’이라는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면, 공격적 광고와 언론 노출로 이미 트렌드화 되고 대중화된 ’럭셔리 브랜드‘의 수요 폭등은 럭셔리 업계의 ’생산 방식 변화‘를 자극하는 제2의 지각 변동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생산 방식은 일종의 ‘변절’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피하기 힘든 ‘진화 과정’이라는 시각도 대두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개별 맞춤’이 아닌 ‘대량 맞춤(Mass Customization)'이라는 오묘한 용어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즉 특정 디테일을 다양화해, 선택폭을 넓힌 뒤 이를 소비자에게 ’맞춤 주문 형식‘으로 제공,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에 변화를 주어 ’나만의 것‘을 제공, ’럭셔리 특유의 개별화된 제품 서비스‘를 중시하는 소비자를 배려한 방식이다. 과거 루이비통이 몬모노그램 커스텀 서비스를 론칭하거나 선글라스에 레터링을 추가할 수 있게 한 프라다 커스터마이즈 등을 진행했지만 정보 부족으로 인한 제한적 주문과 높은 생산 단가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다양한 쇼핑 플랫폼을 통해 럭셔리 브랜드에 접근이 가능해진 지금 럭셔리 업계가 보다 차별화된 ’맞춤' 방안을 개발해 수요와 생산, 정통성과 실리의 딜레마에 빠져있는 현 상황을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다.



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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