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가을 신상품 출고로 바쁜 23일 자정 무렵, 동대문 청평화 2층엔 대박 상품을 찾는 상인들로 북적였다. 지방 상인들과 온라인 리테일 브랜드 운영자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지만, 브랜드에 종사하고 있는 디자이너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APM, 뉴존, 디자이너클럽은 안정된 품질과 차별화된 디자인을 찾는 브랜드 관계자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밤 12시부터 오전 12시까지 영업하는 청평화와 디오트에는 오전 시간을 이용하는 디자이너들이 많았다.
#2. 요즘 세간에 잘 나간다고 알려진 여성복 S 브랜드는 전년대비 10% 매출 신장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 불황에 신장한다며 부럼움을 받고 있지만, 실상을 알고보면 ‘앞으로 남고 뒤로 까지는’ 형국이다. 전년대비 정상 매출은 20% 가량 빠진 반면 행사 매출이 80%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방 특정 점포에선 정상 매출이 10%, 나머진 모두 행사 매출로 떼우는 최악의 구조였다.
◇ 백화점 입점 브랜드가 동대문 단골
패션 기업 디자인들이 ‘동대문’ 단골이 되고 있다.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업체들이 매출잡기에 혈안이 돼 입점업체들에게 보다 싼 상품을 강요하자 패션업체들이 앞다퉈 동대문으로 달려가고 있다. 중국 소싱이 무너진 상황에서 유행에 맞는 저가 상품을 조달하려면 동대문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백화점들이 하락하는 오프라인 매출을 만회하기 위해 온라인 매출을 강요함에 따라 동대문은 더욱 중요한 소싱처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여성복 가운데 밸류 존(Value zone)에 소속된 대다수 브랜드들이 전체 상품의 상당 비율을 동대문에서 사입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더욱이 몇몇 브랜드는 닷컴 매출의 70~80%를 동대문에서 사입해 ‘라벨갈이’한 상품으로 매출을 메우고 있다.
동종업계 온라인사업 책임자 K씨는 “흔히 ‘닷컴 매출’로 브랜드를 평가하기 때문에 적정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는 저가 행사 상품비중을 높여야 한다. 기획생산으로는 가격은 물론 유행을 맞출 수 없기 때문에 동대문을 활용하고 있다. 더욱이 온라인에서는 속칭 ‘123존’으로 부르는 1~3만원대 저가 기획상품 위주로 팔리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심정을 하소연했다.
◇ 백화점 입점 브랜드는 온라인도 ‘족쇄 수수료’
온라인 전용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통상 2~2.5배수에 맞춰야 하는데, 현재 유통 구조에선 도저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백화점의 닷컴 매출(인터넷 쇼핑몰 연계 매출)도 백화점 입점 브랜드는 오프라인 기준인 35% 안팎의 높은 판매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최근 백화점이 젊은 고객을 유입한다는 이유로 동대문서 성장한 브랜드에 대해 20% 이하의 낮은 판매수수료를 적용하는 것과 달리, 기존 브랜드에 대해서는 ‘족쇄를 채우 듯’ 높은 수수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행사 수수료와 지방 점포 수수료를 추가로 올려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동대문 사입 제품은 단지 백화점서 제시하는 매출 마지노선을 맞추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하소연 했다.
백화점 입점 브랜드의 ‘동대문 사입’은 앞으로도 점점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일부 기업들은 아예 동대문 사입 제품을 뜻하는‘DDM’ 라인을 만들어 이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백화점서 동대문 출신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입점시키고, 온라인 역시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만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외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패션업계의 우려는 매우 심각하다.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팔아 당장은 매출을 맞출 수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브랜드와 백화점 모두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는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복수의 업계 전문가들은 “웬만한 소비자들은 더 이상 백화점서 정상가에 옷을 구매하지 않는다. 또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백화점의 행사 매출 의존도는 점차 늘어날 것이며, 이는 소비자들의 신뢰 저하와 외면으로 이어질 것”으로 입을 모았다.
또 올 가을 MD 개편에서 롯데백화점은 「스파이시칼라」 「원더플레이스」 「스마일마켓」 등 노면상권에서 성장한 브랜드를 대거 입점시키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동대문서 사입한 상품을 비중있게 구성해 ‘백화점의 동대문화’는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본지 4~5면

정인기 기자
ingi@fi.co.kr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