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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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Great Heritage 76 - 발렌티노 (Valentino)

2015-03-05 오후 10:03:41




‘이탈리아’하면 흔히 장화 모양의 반도 정도만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러한 현대적인 국경선이 정해진 것은 불과 15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서유럽 근간의 뿌리가 되는 로마 제국의 나라로 동로마, 서로마로 나뉘기 전까지만 해도 천 년을 지속한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제국이었다. 그 오랜 시간 끊임없이 변화했던 로마의 범위는 현재의 프랑스와 포르투갈, 스페인 등 주위 국가를 넘어 바다 건너 영국과 북아프리카 일대, 그리고 유럽과 맞닿아 있는 중동의 끝자락 터키 등지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지도를 살펴보면 이탈리아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이슬람 세계와 비잔틴 세계가 서유럽 문명과 섞일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제국부터 가톨릭의 유산, 바로크와 네오 리얼리즘까지 다양한 시대와 문화의 지층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이탈리아의 문화와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돌체앤가바나’ ‘프라다’ ‘조르지오아르마니’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서 이러한 이탈리아의 문화 유산을 드러내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발렌티노’의 제 2의 전성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듀오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지아 키우리와 피엘파올로 피춀리도 ‘발렌티노’의 뿌리가 이탈리아임을 명백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발렌티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고 처음부터 그러한 방향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초기에는 ‘발렌티노’ 브랜드의 고유한 디자인적 유산인 여성스러운 리본과 러플, 섬세한 자수, 우아한 실루엣 등에 중점을 둔 디자인을 답습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유산은 생각보다 넓은 문화권을 아우르고 있으며,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임을 깨달은 후에는 점차 변화해 왔다. 그 이전에도 조금씩 가톨릭 수도원의 단정한 복식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에서 나올 법한 의상들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였지만, 최근 들어 더욱 이탈리아의 다양한 역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는 주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2015 S/S 컬렉션에서는 그랜드 투어를, 2014 F/W 컬렉션은 60~70년대 이탈리아의 여성 예술가를, 2014 SS 컬렉션은 이탈리아의 오페라를 선보였다.

2015 S/S 컬렉션은 특히 내용과 형식이 잘 어우러져 극찬을 받은 컬렉션이었다. ‘그랜드 투어’란 유럽 여행의 기원이 되는 행위이다. 나폴리의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한 순간에 잿더미에 뒤덮인 폼페이를 천여 년 만에 발굴하게 되면서 17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유럽에는 이탈리아로의 여행은 귀족과 상류층 사이에 붐이 일었다. 책과 수업을 통해서 배우던 고전 문학과 음악, 미술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고 험한 여정이었으나, 견문을 넓히고 그들만의 사교계에 끼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향락을 즐기기 위한 필수코스로 자리잡는다. 말 그대로 지금의 해외 여행의 모습의 전신이다. 이 그랜드 투어는 신고전주의의 유행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2014 F/W 컬렉션은 이탈리아의 현대 예술계에 처음 등장했던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보내는 헌사였다. 죠세타 피오로니, 카롤 라마, 카를라 아카르디 등의 이탈리아의 6,70년대 활동했던 여성 아티스트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발표했다. 당시에는 누구도 여성이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으며 그들은 틀을 깨는 예술가였다고 듀오 디자이너는 밝혔다. 그래서 그들의 컬렉션은 이전까지 ‘발렌티노’가 선보이지 않았던 기하학적인 무늬로 시작되었다. 동시에 발렌티노 레드를 사용하여 새로움과 오리지널리티를 연결시켰다.



2014 S/S 컬렉션은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주인공이었다. 이탈리아는 오페라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16세기 후반 연극 대사에 음악을 붙인 종합 예술인 오페라가 탄생된 곳이 이탈리아이며, 이미 4세기경부터 종교 음악이 발전하면서 유럽의 클래식계를 이끌었다. 특히 19세기에는 로시니, 베르디, 푸치니 등 세 명의 오페라 작곡가의 등장으로 전성기를 열게 된다. 현재까지도 이탈리아 인들의 오페라 사랑은 이어져 한 여름 밤에는 도심 곳곳에서 무료 오페라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이 컬렉션은 마리아 칼라스가 등장했던 영화 ‘메데이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 졌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데이아에 새로운 의상을 만들어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한 것인데, 아프리카나 이집트, 그리스 등 어느 곳의 민속 의상인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장식성으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냈다.

무엇보다 이탈리아는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신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다. 로마 가톨릭 교황과 교황청이 있는 동시에 인본주의를 표방하는 르네상스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가톨릭교가 98%인 이탈리아에서 그만큼 종교의 영향력은 거대하다.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그들의 삶에 큰 줄기는 종교 행사나 교회 건축물과 함께 한다. 이러한 시각적 경험은 디자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신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어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한편으로는 검박해야 하는 종교적인 복식을 현대 패션에 적용시키는 일은 그리 특별하고 어려운 것은 아니다.

도심 곳곳이 로마 시대의 유물이 남아있어 역사의 한복판에서 사는 그들에게 역사의 영향을 받지 않은 디자인을 하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힘든 것일 게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진부하지 않게 문화를, 역사를 담아낼 지가 고민일 것이다. 그러한 깊은 고민의 결과가 세계적인 브랜드의 컬렉션에 등장한다. 전통을 담은 디자인은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을 때, 자주 접할 때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수 있다. 조금만 바꿔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충분히 그러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일상에서의 제사나 명절은 전통 문화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 행사이다. 도심 곳곳의 고궁과 성곽, 또는 근대의 건축물들 또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재해석하느냐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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