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치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긴 여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는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평소보다 더 많은 관심을 쏟게 한다.
경기를 보다 보면 나도 해보고 싶어지고, 선수들이 입었던 옷도 왠지 멋있어 보여 입고 싶어진다. 이렇게 스포츠에 관련된 수요를 생기게 하는 것도 올림픽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개최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화려한 경기 장면과 감동적인 문구, 브랜드 로고, 무엇보다 뛰어난 기능성을 강조한 광고는 대중들이 스포츠 웨어에 폭발적인 관심을 가지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1970-80년대는 스포츠 브랜드의 대규모 마케팅으로 스포츠웨어가 실제적으로 대중 문화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시대였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스포츠웨어 브랜드의 경영 시스템과 마케팅 전략으로 패션계를 흔들어 놓았다.
1957년 육상 코치와 선수로 만난 나이키의 창립자 빌 바워만과 필립 나이트는 기록 단축을 위해 러닝 슈즈를 개발하게 되고, ‘블루 리본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1971년 나이키의 트레이드 마크인 로고 ‘스우시(Swoosh)’ 탄생된 이후, 이 스포츠 브랜드는 10년 만에 전 세계 40여 개국으로 퍼져나가며 그 위력을 과시하였다.
아디다스의 역사는 192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슬러 형제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신발 공장을 만들어 사업을 운영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육상의 유력한 메달 후보 제시 오웬스에게 자신들이 만든 육상 스파이크를 들고 올림픽에 참가 중인 스파이크를 신고 경기에 참여해달라고 설득하고, 이 신발을 신은 오웬스는 100m를 비롯해 무려 4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이 후원으로 그의 스포츠화는 날개 돋친 듯 팔리며 브랜드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과 함께 다슬러 형제는 갈등을 겪게 되고, 1947년 둘은 각자의 길을 간다. 형인 루디 다슬러는 자신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루다(Ruda)’라는 이름의 스포츠 브랜드를 만들고, 이것은 나중에 ‘퓨마’가 되었다.
동생인 아디 다슬러는 1949년 역시 자신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아디다스(Adidas)’를 설립한다. 1960년대 스포츠 재킷과 테니스화로 착장된 스트리트 패션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어낸 아디다스는 1970년대부터 세계인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심벌인 삼선(three stripe)를 아디다스의 운동화와 운동복에 새겼고, 아디다스와 관계없는 무수히 많은 스포츠 상품들이 이 띠를 무단으로 이용할 정도로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아디다스는 2000년대 들어 하이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를 영입해 끊임없이 혁신을 했다. 스텔라 맥카트니는 세련된 운동복으로 도시 여성들의 운동 의지를 확대시켰고, 제레미 스캇을 통해 기능적인 운동복이라기보다는 편하면서도 디자이너의 독특한 감성이 녹아있는 캐주얼웨어로 대중가수와 10대들이 열광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
특히 2002년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만난 요지 야마모토와 아디다스는 ‘Y-3’라는 상위 브랜드를 따로 론칭할 만큼 스포츠웨어의 고급 시장을 만들어 냈다. 정통 스포츠 브랜드로써 뛰어난 기능성을 앞세우기 보다는 브랜드 가치와 역사, 디자인을 앞세워 고가의 가격을 합리화시키는 명품 브랜드 전략을 내세운 것이다.
고학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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