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젊은 시절은 변덕스럽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옷을 입을 때도 완전하게 자신의 스타일을 정립하지 못하고 트렌드에 따라 매년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기도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스타일도 성숙해진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도 누구보다 변덕스러운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녀가 말콤 맥라렌과 함께 만들던 옷 가게는 71년 ‘Let it Rock’, 72년 ‘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 74년 ‘SEX’, 77년 ‘Seditionaries-clothes for heroes (선동가들-영웅을 위한 옷)’, 79년 ‘World’s End’까지 평균 2년에 한번씩은 매장 인테리어와 간판이 바뀌었다.
가게 이름과 함께 스타일도 계속해서 변했다. 에드워디안 스타일의 테디 보이 룩부터, 오토바이족을 위한 가죽 의상들, 포르노 비디오에 등장할 법한 성적인 스타일, 그리고 섹스 피스톨즈의 매니저를 하면서 만들었던 펑크 스타일까지 그녀는 다양한, 그러나 체제에 반항적인 여러 스타일을 두루 섭렵했다. 이 스타일들은 후에 그녀의 컬렉션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사진 1)
그러던 그녀의 스타일이 80년대를 들어서 확 바뀌어 버렸다. 그녀의 나이 40대에 들어서였다. 젊은 시절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그녀 자체로 그 시대의 흐름에 속해 있었다면, 불혹에 접어 들면서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자의식에 눈을 떴고, 좀 더 큰 시각으로 사회적인 현상들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두 키워드가 있다. 바로 ‘펑크’와 ‘전통’이다. 그녀의2-30대가 ‘펑크’라는 새로운 문화 현상을 이끌어 가는데 전력을 다했다면, 1980년대가 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이라도 한 것처럼 작품 세계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바로 ‘전통 문화’에 눈을 뜬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그녀는 문화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특히 섹스 피스톨즈와 그들의 매니저였던 말콤 맥라렌, 앨범의 그래픽 디자인을 맡은 제이미 리드, 그리고 스타일을 만들었던 비비안 웨스트우드까지 다방면으로 만들어진 ‘펑크’의 이미지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젊은이들을 뒤흔든 파괴력을 보여줬다.
그 중심에 있던 그녀가 영감의 원천을 ‘전통 문화’로 정했다는 것은 분명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전통의 힘은 막강하다. 지금 이 시대와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 같으면서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 인터뷰를 통해 “어떤 옷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은 완전히 처음 본 부분에서 오는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사람들은 전에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데서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당신에게 있어 옛날의 기억을 더 잘 회상하게 해 주는 ‘아는 향기’가 나는 향수와 같다.”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했다.

그녀가 펑크와 결별하고 처음 선보인 ‘해적’ 패션쇼에서는 영국의 18세기 옛 남성복 재단법을 모방하여 현대의 바지와는 전혀 다른 비정형적인 패턴을 만들어 냈다. 빅토리아 & 알버트 미술관에서는 해적 컬렉션의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의상을 구입하여 보관하고 있다. 이후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박물관, 미술관과의 긴밀한 관계는 지속된다. 그녀를 설명하는 글들에는 박물관을 방문하여 유물들을 공부하고 디자인에 도움을 받았다는 말이 항상 있다.
80-90년대 그녀는 역사주의를 바탕으로 작품 세계를 펼쳐갔다. 그녀는 역사가가 된 것처럼 박물관과 미술관의 소장자료를 면밀히 연구했고, 이를 창작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녀는 드레스의 치마부분을 커다랗게 불리던 구조물인 크리놀린을 작게 축소하여 현대 미니스커트에 적용 시킨 ‘미니 크리니(mini crini)’ 컬렉션과 과거의 초상화들을 프린트하거나 인물들이 입고 있는 옷을 현대화 시킨 ‘포트레이트(Portrait)’ 컬렉션, 17세기 유행했던 슬래쉬 기법에서 영감 받은 ‘컷 앤 슬래쉬(Cut & Slash)’등 수없이 많은 컬렉션에서 전통 기법을 차용했다. (사진 2)
이렇게 그녀의 컬렉션들은 패션인이라면 복식사를 공부하면서 접했던 유물들이 어떻게 세련되게 현대화 될 수 있는지 명확히 살펴볼 수 있으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서양 미술이나 문화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일반인들도 쉽게 영감의 원천을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다.

그녀의 컬렉션이 특히 흥미로운 것은 직접적으로 성적인 기호를 통해 권위적인 사회를 조롱하는 코드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체제 반항적인 다양한 스타일을 섭렵하고 시도한 그녀답게, 특히 성에 대한 현대의 금기 시 되는 것들을 드러내고 타파하는데 두려움이 없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로 그녀가 전통 복식에서 가져온 재단법이나 패턴을 적용할 때도 지금의 시각으로 보기에 불편한 구조와 실루엣들도 거침없이 시도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사실 과거의 복식이나 전통의 유물들은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보기 민망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도 많다. 특히 서양의 현대식 재단법이 나오기 전에는 바지의 샅이나 소매의 겨드랑이처럼 벌어진 부분을 해결하는 기발한 방법들이 동원되었다.
르네상스까지 소매는 몸판과 따로 입고 끈으로 맸으며, 바지의 가랑이를 가리기 위해 상의를 길게 입거나, 아예 성기를 강조하는 코드피스라는 것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니 말이다.
한편 그녀가 선택한 전통 문화란 꼭 그녀 고국의 전통만은 아니었다. 영국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는 한·일 감정만큼이나 안 좋은 프랑스의 로코코 복식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으며, 멀리는 아프리카, 페루, 미국 인디언들까지 다양한 문화권의 전통 복식 문화를 참고하여 현대화 했다. 전통을 현대화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의 견고한 고정관념을 깨트려주는 부분 중 하나이며,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알릴 지도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다. (사진 3)

고학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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