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유산 4 - 시칠리아의 한여름 밤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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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ce&Gabbana

2013-08-20 오전 9:15:16



「돌체 앤 가바나」의 패션쇼는 직관적이다. 낯선 철학 개념도 모자라 작가에 따라 제각기 재해석되는 현대 예술처럼 마냥 어렵지 않다. 한눈에 보면 딱 알 수 있다. 그래서 대중적이다. 「돌체 앤 가바나」의 2012 S/S 컬렉션은 이탈리아 남부의 여름 축제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컬렉션이었다.


아직까지도 뇌리에 남아 있는 과감한 패턴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달콤한 과일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주키니, 가지, 적양파, 토마토, 통마늘, 붉은 고추, 피망, 게다가 다양한 모양의 파스타까지 이탈리아 음식의 주 재료들이 그대로 옷으로,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로 치환된 것이었다. 패션에서 사용되었던 패턴 중에 꽃도, 그렇다고 과일도 아닌 채소가 이렇게 전면에, 이토록 매력적으로 프린팅된 적이 있던가 싶었다.


이렇게 당연히 꽃이겠거니 하고 프린트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은 꽃이 연상될 정도로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 때문이었다. 또한 찬찬히 살펴보면 무늬가 단독의 채소 하나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짙은 초록의 주키니와 노오란 호박꽃, 적양파와 노란 꽃, 붉게 잘 익은 토마토와 하얀 꽃 등 대지의 여신에게 절로 감사의 말이 나올 법하게 잘 익은 야채들 사이로 꽃들이 이질감 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사진 : 프린트-야채와 꽃 ①,③)



사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다양한 음식을 자랑한다. 북아프리카, 유럽, 동부 지중해 사이에 고립된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과 여러 외부 침략 세력들의 영향 때문이다. 시칠리아의 비옥한 토지는 그리스의 식민지 개척자들을 끌어들였고 그들은 본국으로 기름, 밀, 꿀, 치즈, 과일, 야채를 수출했으며, 아랍인들은 오렌지, 레몬, 가지, 사탕수수 등을 소개했다. 이탈리아의 주요 농작물로는 사탕무, 옥수수, 밀, 올리브, 포도가 있으며 다채로운 부활절 축하 행사를 열어 대지의 은혜에 경의를 표한다.


수많은 이민족들로부터 침략을 받은 시칠리아는 기독교와 그 외의 종교들이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기도 했는데,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모습으로 묘사된 성모 마리아가 대표적인 예이다.


「돌체 앤 가바나」의 장점은 디테일에 강하다는 것이다. 프린트뿐 아니라 귀고리, 팔찌, 가방 체인 등 액세서리에도 이탈리아산 먹을거리가 풍부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은 작은 야채 모형의 액세서리가 더 화려해 보일 수 있도록 색상 대비나 명도 대비를 노리고 디자인했다는 점이다.


노란 피망과 보라색 가지가 달린 팔찌, 하얀 마늘과 붉은 색의 토마토, 고추, 파프리카가 달린 참 장식은 하늘색 가방과 매치되었다. 검정 가방에는 옅은 노란빛의 숏 파스타가 주렁주렁 달렸다. (사진: 디테일-액세서리②,④)
채소 프린트의 옷이 더 화사하게 보일 수 있도록 옷에 달린 보석 단추나 아세테이트 벨트로 투명한 광택감을 주어 프린트에 반짝임을 더했다. (사진: 디테일-단추⑤)



사실 이렇게 채소 모형의 액세서리를 보니 또 생각나는 이탈리아의 음식이 있다. 시칠리아의 디저트 프루타 디 마르토라나(Frutta di martorana)이다. 마르토라나라고도 불리는 이 가짜 과일은 장식용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 달콤한 디저트이다.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디저트로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의 마르토라나 교회의 수녀님들이 장식한 과일을 대체하기 위해 손수 만들던 것에서부터 발달되어 오늘날 시칠리아뿐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에서 볼 수 있다.


시칠리아의 더운 날씨에 과일이 쉽게 상하는 단점을 보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아몬드 가루로 만든 마찌판(Marzipan, 설탕과 아몬드를 갈아 만든 페이스트)이 주재료로서 먹기 아까울 정도로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귀와 손목에서 찰랑거리는 채소 액세서리와 꼭 닮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컬렉션은 완전히 두 디자이너가 이토록 황홀한 이탈리아의 음식을 전 세계에 홍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단편적인 사진으로만 보면 이 컬렉션의 진짜 분위기를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지만 눈을 조금만 돌려서 배경을 살펴보면 무엇인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에 종종 세워지는 루미나리에(luminarie 전구를 이용한 조명건축물 축제)를 컬렉션 무대로 가져온 것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장식물이 이탈리아의 전통이라는 것이다. 조명으로 건축물을 만들거나 치장하는 축제인 루미나리에는 르네상스 시대 말기인 16세기에 이탈리아 나폴리왕국에서 왕가의 행차를 기념하기 위한 장식으로부터 시작되어 성인을 기리고 빛이 가진 정신 가치를 나타내기 위한 종교의식으로 발전하였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달하여 유럽 등 으로 퍼져나갔으며, 현재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한국 등이 개최하고 있다. 알록달록 화려한 조명 구조물을 세워 환상적인 분위기로 사람들을 압도하는 루미나리에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들도 이 컬렉션의 큰 주축이었다. (사진: 루미나리에⑥,⑦)


루미나리에를 연상시키는 대칭적인 곡선의 선을 따라 조명을 받아 알알이 박힌 모조 보석들이 화려하게 빛을 냈다.


「돌체 앤 가바나」의 진가는 이러한 채소 프린트나 루미나리에 장식을 옷으로 그대로 재현 한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 컬렉션에서도 「돌체 앤 가바나」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레이스(사진: 레이스⑧,⑨)나 시칠리아의 여인을 연상시키는 검은색 의상(사진: 시칠리아의 여인⑩)들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는데, 이렇게 다양한 소재와 각기 다른 주제를 어떻게 한 컬렉션으로 녹여내는지 살펴봐야 한다.


키워드는 바로 대비를 이용해 두 가지 소재의 이질감을 부각시키는 믹스 앤 매치다. (사진: 믹스 앤 매치⑪) 보색 대비, 명도 대비, 소재 대비, 패턴 대비 등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보색 대비처럼 대비감이 클수록 더 조화로워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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