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의 미학, 시칠리안 바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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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ce & Gabbana

2013-06-24 오전 9:42:07



돌체 앤 가바나의 2012 F/W 컬렉션은 ‘바로크’적인 컬렉션으로 분류되었다. 수많은 패션 기사마다 이 컬렉션을 ‘바로크’적인 요소를 잘 실현한 컬렉션이라고 극찬했다. 과연 이 ‘바로크’적이란 게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에게 바로크는 ‘유물론’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정확한 뜻이 잘 와 닿지 않는 단어들이다. 사람마다, 분야마다 조금씩 달리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단어들은 그 역사적 문맥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 그렇다면 우선 바로크 양식이 생겨난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자.


연대기적으로 바로크 앞 시대는 르네상스이다.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의 암흑기가 끝나고 종교 개혁과 함께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따라서 중세보다 실용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양식을 선호했다. 바꿔 말하면, 중세에는 고딕스타일의 높고 거대한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현란한 빛의 아름다움으로 종교의 권위를 공고히 했다면,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은 크기가 축소되고, 장식성을 줄이고 기하학적 도형인 원, 삼각형, 사각형으로 균형과 비례를 맞추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기준으로 보았다.


그러나 16세기 중반 이후 다시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자체적인 개혁운동, 즉 반종교개혁이 진행되면서 일반 민중들에게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다시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필요해졌다. 바로크 건축물의 파사드(정면)에 등장하는 ‘곡선’은 보는 이에게 운동감과 장식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바로크는 명료하고 조화로운 르네상스의 형식을 거부하고 불명료하고 현란한 장식미와 역동성 및 풍요로움을 추구했다.


이를 두고 미술사학자 뵐플린은 1888년 발표한 그의 저서 『르네상스와 바로크』에서 바로크 양식을 특징짓는 네 가지 주요 효과가 바로 생동감, 풍요로움, 웅장함 그리고 움직임이라고 했다. 여기서 행간에 ‘르네상스에 비해’ 라는 말을 넣어서 읽어보자. 훨씬 ‘바로크’의 의미가 명확해 진다. 


이러한 문화 유산에 영향을 받은 돌체 앤 가바나의 2012 F/W 컬렉션은 ‘시칠리안 바로크’라고 불릴 만큼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했던 컬렉션이었다. 우선 (사진 1)에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검은색 의상과 금색 장식의 강렬한 대비, 그리고 아라베스크 곡선 장식이다. 아라베스크란 ‘아라비아식’이라는 뜻이다. 르네상스 이후 이슬람 미술에서 유입된 식물의 덩굴이나 줄기, 소용돌이 무늬 장식이다. 이 무늬가 결정적으로 사람들에게 바로크적인 이미지를 준다.


바로크 양식이 성행하던 17세기는 왕권과 종교 모두 가장 화려함을 과시하는 시기였다. (사진1)이나(사진2)의 어깨를 감싸는 케이프와 장갑, 대칭적인 장식성은 국가적이며 종교적인 의식을 치르는데 필요한 의상처럼 엄숙하고 권위있어 보인다. 이렇게 주제가 강한 컬렉션 중간에도 돌체 앤 가바나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호피무늬 의상(사진 3)을 넣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이 컬렉션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 디테일들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
↘레이스와 어우러진 화려한 꽃무늬의 타피스트리(사진 4,5)는 또 다시 우리를 과거로 이끈다. 사람들은 앞서 나온 바로크적인 이미지를 주는 장식과 새로 나온 꽃무늬 타피스트리의 연대가 일치하는지는 관심 없다. 오히려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의 전통이나 유물이라도 어우러지고 아름다우면 그만이다.


명화를 프린트한 (사진 6)의 의상도 그렇다. 하나의 그림을 그대로 프린팅한 것이 아닌, 꽃과 천사를 강조하기 위해 나머지 부분은 어둡게 처리되었다. 역동적인 형태를 포착하고,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대화시키는 데에 중점을 두는 바로크 미술의 방법을 제대로 적용했다. 오히려 원본 그림에서의 주인공일 듯한 성인(聖人)은 팔 부분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천사와 장미 모티브는 세심한 디테일로도 나타난다. 파스텔톤의 장미와 천사는 귀고리와 머리장식, 벨트, 구두 등에서 작지만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하얀 레이스 의상과 어우러진 앙증맞은 컵 케익을 연상시키는 구두는 바로크적이라기 보다는 로코코적이다. 로코코는 바로크 양식이 끝나갈 무렵 등장한 사조였다. 바로크가 웅장한 느낌의 곡선이었다면, 로코코는 작고 아기자기한 곡선으로 좀 더 여성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돌체 앤 가바나는 디테일에 굉장히 강하다. 앞서 살펴본 구두의 디테일뿐 아니라 귀고리도 자세히 살펴보면 양쪽의 천사가 각기 바이올린과 나팔을 불고 있다. 실제 명화에 나타나는 천사들처럼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게 한 것이다. 작은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는 디자이너의 성격이 드러난다. 


두 디자이너는 무대 장식에서도 바로크풍을 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우선 조명의 장식뿐 아니라 빛의 강도를 통해 웅장한 느낌의 그림자를 만들어 냈는데, 이것은 바로크 회화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배경으로 사용 된 금장식의 거울과 의자는 그 자체로 바로크 시대의 성 안에 들어온 듯한 환상을 불러 일으켰다.




바로크와 로코코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수많은 컬렉션을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서양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이 보고 자란 화려함의 대명사인 두 사조에서 영감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시대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도 역사적 공감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역사적 유물 자체는 신선한 재료보다는 묵은지에 가깝다. 이 곰삭은 과거의 재료를 어떻게 다시 요리하느냐에 따라 진보와 진부가 갈라진다.



고학수 객원기자
marchberr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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