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구는 일반 디자인 아이템과 좀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것에 그치는 일반 디자인과는 달리, 가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특정한 방식을 제공해 준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상황에 맞는 행동, 또 상황에 적합한 편안함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별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지만, 사실 곰곰이 살펴보면 이것은 문화 인류학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편안함을 가장한 특정 문화가 그 문화를 일방적으로 바꿔 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시대까지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의자를 거의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실내에서 의자를 쓰는 것을 편안하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온돌로 바닥을 난방하면서 의자를 이용한다는 것은 알고 보면 이것은 매우 모순적인 생활 방식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을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가구 하나가 갖는 문화적 영향이라는 것은 매우 무서울 정도이다.
론 아라드(Ron Arad)의 톰 백(Tom Vack) 의자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의자이다. 구조가 매우 단순하고, 조형적 아름다움이 뛰어나기 때문에 대중들이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덧붙일 수 있는 것은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의자의 구조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사람이 앉는 둥근 부분과 가느다란 파이프로 만들어진 네 개의 다리로만 이루어진 의자의 모양은 이전의 다른 의자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조형적 인상을 주었다. 더 단순하지만 전혀 보지 못했던 의자의 구조, 이것이 론 아라드의 톰 백 의자가 가진 최고의 장점이었다. 이런 특징은 생산의 합리성과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져 대중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키게 됐다.
그러나 여기서 좀 더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이 의자가 단지 사람이 앉는 부분의 요소를 최소화, 단순화하는 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의자 자체의 존재감, 의자가 사람에게 주는 어떤 효용성에 있어서도 색다른 접근을 했다는 것이다.
다른 의자들이 앉는 사람을 그저 편안하게 앉을 수 있게 하는 것에서 그친 반면, 이 의자는 앉는 사람의 몸을 둥글게 감싸 안는 구조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앉았을 때 편안하기 때문에 이 의자를 앉음의 기능성을 잘 고려한 디자인으로 생각하기가 쉽지만, 꼼꼼히 따져 보면 그런 편안함은 기능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따뜻하게 안겼을 때 느껴지는 문화적인 편안함을 이미테이션한 것이기 때문에 계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의자에 앉는 순간 사람들은 의자에 앉는 편안함뿐 아니라, 누군가에 안겼을 때의 포근한 느낌을 그대로 되새김질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솜사탕 같은 추억의 부드러움을 이끌어 내게 된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의자일 뿐이지만 이 단순한 구조를 통해 사람들은 단편적인 편리함에서 정신적인 안락감까지 맛보게 된다. 디자이너 론 아라드는 가구의 기능적인 면을 문화적인 힘으로까지 승화시키고 있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서의 이름이 전혀 손색이 없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hk8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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