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패션쇼 무대로 끌어들인 릭오웬스의 2012 F/W 무대는 시각적 충격으로 꽤나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한 패션쇼가 탄생한 것은 어딘가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영감으로 만들어진 것이 결코 아니었다. 릭오웬스의 고딕적인 패션 철학과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파노스이아파니스라는 스타일리스트의 무대 스타일링이 어우러져 탄생한 극적인 장면이었다.
릭오웬스는 “패션이 고딕(Gothic)적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패션에서 자주 쓰는 ‘고스족(Goth族)’과 ‘고딕(Gothic)적이다’라는 표현은 다른 의미라는 것이다. 고스(Goth)의 정의는 1980년대 유행한 록 음악의 한 형태로 가사가 주로 세상의 종말, 죽음, 악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미국의 히피와 영국의 펑크에 이어 등장한 기성사회에 대한 반발의식에서 출발한 아웃사이더 문화이자 하위계층 문화를 뜻한다. 고스족의 특징은 검은 옷, 해골 아이템, 뾰족한 스터드 장신구를 걸치고, 마치 드라큘라처럼 하얀 분칠을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고스족 문화는 로맨틱 고스, 패티쉬 고스, 뱀파이어 고스 등 다양한 형태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반면 고딕(Gothic)이라는 단어는 형용사로 본래 건축 분야에서 쓴 것이다. 따라서 고딕 양식의 건축물처럼 수직적이고, 뾰족뾰족한 장식, 또 안개 낀 유럽의 날씨를 표현할 때 고딕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를 패션 디자이너와 비유를 하자면, 앤 드묄미스터의 옷은 완전한 어둠의 검은색이 주를 이루는 고스족에 가깝고, 릭오웬스의 컬렉션을 보면 회색빛의 음울하고 신비로운 고딕적인 형태가 느껴진다.
컬렉션을 보면 알 수 있다. 앤 드묄미스터의 무대는 어둡고 깜깜하다. 그에 비해 릭오웬스의 컬렉션은 회색빛이 많이 돈다. 빛을 사용한 무대는 좀 더 환상적인 이미지를 준다.
이렇게 빛은 패션 컬렉션 무대에서 거의 비슷해 보이는 고스와 고딕의 경계를 나눠주는 역할도 하지만, 쓰임에 따라 완전히 상반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빛이 등 뒤에서 비추는지, 측면에서 비추는지에 따른 이미지의 차이, 빛의 색에 따른 이미지의 차이, 빛으로 인해 상반되게 나타나는 효과 등, 한 줄기 빛이 야기하는 결과는 무궁무진하다.

<사진 1>의 알렉산드르헤르치코비치의 2012 F/W 컬렉션에서는 의도적으로 레이스로 된 치마의 속이 드러나게 빛을 사용하였다.

그에 비해 <사진 2>의 2010 S/S 릭오웬스 컬렉션은 빛에 비친 모델의 그림자가 위압적으로 보이고, 뾰족한 옷의 실루엣을 더욱 돋보이도록 연출하였다.
뒤에서 쏘는 빛이라도 정 후면인지, 측면인지에 따라서, 혹은 빛의 색에 따라서 이미지가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

<사진 3>는 릭오웬스의 2012 S/S 컬렉션으로 푸르스름하고 새하얀 빛이 무대의 측면에서 비춰져 모델이 어떤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을 암시하는 듯 하다.

그에 비해 <사진 4>은 존 갈리아노 컬렉션의 모습인데 모델의 바로 뒤에서 비춰지는 빛 때문에 모델의 실루엣과 빛의 대비가 확실하다. 이처럼 빛은 때로는 신비롭고 성스러워 보이며 관객들에게 기대감을 심어주는 효과가 뚜렷하다.
고학수 객원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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