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는 언젠가 “애플의 아이폰이나 아이팟의 디자인이 실은 독일 브라운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디터 람스의 디자인을 참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의 성공 뒤에 숨은 디자인의 큰 역할을 아는 사람들은 2차 대전 이후 독일에서 활약했던 한 산업 디자이너를 부랴부랴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독일 전자제품 브랜드 브라운을 전설로 만든 디자이너 디터람스가 새롭게 재조명되었다.
디터람스는 독일의 비스바덴에서 출생했다. 2차 대전 후 비스바덴 공작 미술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목수일도 같이 배웠다고 한다. 그 후 건축가 오토 아펠과 1953년에서 55년 까지 함께 일을 하다가 한스 구겔로트와 브라운 사에 들어간다. 한스 구겔로트도 브라운을 반석에 올린 뛰어난 디자이너였다. 한스 구겔로트가 브라운사의 디자인에 울름 조형학교의 이론을 도입해 다소 기능적이고 딱딱한 디자인을 했다고 한다면, 디터람스는 여기에 풍부한 조형적 개성을 투사하여 단순한 형태 가운데에 아름다운 조형미를 부여 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이런 개성에 의해 디터람스가 개발한 브라운 제품들은 이전의 디자인들과는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었고, 브라운이 세계적인 전자제품 회사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디터람스의 스타일은 이후 브라운의 현대적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있어 가장 주요한 바탕이 된다.
1961년에 그는 브라운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는데, 이때부터 브라운사의 제품들은 디터람스의 지휘 하에 완전히 탈바꿈한다. 브라운 디자인 팀은 레코드 플레이어 SK-4, 고화질 슬라이드 프로젝트 D 시리즈와 같은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제품들을 디자인 한다. 제품의 기능에 대한 뛰어난 해석, 어떤 실내에도 어울릴 만한 정갈한 형태, 그 안에 녹아있는 아름다운 비례미 등은 다른 어떤 제품과도 차별화 되었으며, 소비자들의 눈과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가 디자인한 커피 포트, 선풍기, 헤어드라이어, 오디오, 라디오, 전자 계산기 등은 디자인 역사에 길이 남는 산물이 되어, 오늘날 수많은 세계의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디터람스는 1998년 은퇴할 때까지 30여년 간 브라운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활약했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디자인을 “Less, but better"라고 말했다. 깔끔하면서도 극도로 아름다운 그의 디자인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의 수석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최신 디자인에도 디터람스의 디자인적 유전자가 흐른다고 하니, 영원한 디자인의 DNA를 만든 그의 디자인은 이제 시간을 초월한 걸작의 반열에 올라갔다고 단정지어도 될 것이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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