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 하회마을 vs 이탈리아 피렌체
한국문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로 꼽히는 것이 자연과의 조화이다. 그러나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도 하거니와, 진부한 수사학적 언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긴 현재 우리가 사는 공간이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지 않기 때문에 못 알아듣는 것인지도 모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이럴 때는 어려운 말 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최고다.
하회마을이라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으로, 한국에서 보존이 가장 잘된 마을이다. 이 마을 강 건너편에는 부용대라는 절벽이 있는데, 여기에 올라 하회마을 을 내려다보면 마을 전경이 거짓말처럼 다가온다. 마치 마을의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대단한 곡률로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낙동강 동세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강의 흐름을 역시 외곽에서 첩첩이 호위하듯 솟아 있는 산들의 장관도 한 눈에 들어온다. 마을은 자연에 의해 두겹, 세겹으로 보호받으며, 수많은 세월 동안을 이곳에서 안전하게 삶의 흐름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의 어울림이란 것은 듣기 좋은 수사학적 언사가 아니라 바로 이런 모습을 두고 했던 말이었다. 앞에도 자연 뒤에도 자연,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은 자연과 그야말로 하나가 되고 있다. 어디에도 자연과 인간의 삶을 나누는 경계선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와 서양의 차이점이다.
마을 역사로 보면 피렌체는 하회마을에 비해서 조금 동생이다. 하회마을은 고려시대 때부터 마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도시의 규모가 어느 정도 갖추어진 시기는 거의 비슷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지구상에서 멀리 떨어진 두 장소가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묘한 느낌이 든다.
공간의 구성 원리는 지구상의 거리만큼이나 다르다. 르네상스 문화가 시작된 중심지가 피렌체이지만 하회마을과 비교하면 이곳은 자연보다는 인공이 우선이다. 강도 지나가고, 멀리 뒤쪽으로는 산도 보이지만 하회마을에 비하면 자연의 비중은 미미한 편이다. 무엇보다 자연과 인공물의 경계가 분명하다.
그리고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산이나 강이 아니라 멋진 모양을 하고 있는 건물이다. 멋진 건물을 중심으로 수많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도시를 이루고 있다. 도심지 안쪽으로는 자연이 스며들 틈이 거의 없다.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나무들도 자연 그대로가 아니다. 심어놓은 것이다.
하회마을과는 달리 이곳은 자연으로부터 보호를 받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자연과 대치하고 있다. 자연과 인공물의 경계선이 분명하다.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곳이지만 마을이 구성된 원리는 이처럼 완전히 다르다. 르네상스 문화를 촉발시킨 중심지였지만 자연과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하회마을에 비해서 낮다고 할 수 없다.

강 건너편에서 하회마을을 바라보면 이 오래된 마을이 자연과의 어울림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앞의 모래사장과 강, 그리고 건너편의 모래사장과 언덕과 소나무 숲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그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는 산세들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은 자연과 그냥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중층적이면서, 입체적으로 어울리고 있다. 이때 인공물인 집은 절대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않고 있으며, 마치 숲의 일부, 땅의 일부인 것처럼 아늑함을 자랑하고 있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ckw869@hanmail.net
- Copyrights ⓒ 메이비원(주) 패션인사이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