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스와치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가장 대중적인 손목시계 브랜드다. 비싸지는 않지만 시간을 보기 위한 시계가 아니라 패션을 위한 시계. 감각적인 그래픽이 뛰어난 독특한 존재감을 가진 시계로 인식되어 있다. 원래부터 스와치가 이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스와치 시계의 이런 이미지를 만든 사람은 바로 알레산드로 멘디니다.
1990년대에 이르러 스와치를 비롯한 스위스 시계산업은 되돌릴 수 없는 위기에 봉착했다고 한다. 이때 스와치사는 막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고 활동하기 시작했던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아트 디렉터로 초빙한다.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선택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스와치를 기사회생시키는 결정적인 한 수가 된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멘디니는 스와치사의 C.I.와 Logo에서부터 상품의 디자인, 매장 디자인 등 거의 모든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스와치를 바꾼 가장 중요한 화두는 ‘장식’이다. 장식은 멘니디가 줄 곳 주장해온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다. 물론 장식은 오래가지 못하는 문제가 있긴 했다. 하지만 멘디니는 장식이 가지고 있는 소통성과 친밀감에 주목했다. 시계라는 아이템을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니라 친근하고 예쁜 장식품이 되게 하여 사람들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표면적으로는 시계에 장식을 많이 넣어서 소통성을 강화하자는 것이었지만, 내면적으로 그의 의도는 시계를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을 바꾸고자 하는 철학적 접근을 깔고 있었다.
그의 그런 의도에 따라 1990년에 스와치는 멘디니의 디자인 오롤로지오(Orologio) 시리즈를 선보였다. 매력적인 그래픽으로 가득 찬 시계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고, 그러면서도 무겁지 않은 가격은 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관심과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자칫하면 브랜드의 이미지를 저렴하게 만들어버릴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눈이 휘둥그러질 정도의 그래픽 장식을 넣은 시계는 가격표를 따라 저렴해진 것이 아니라, 뛰어난 디자인을 가진 감각적인 물체로 대중들에게 이해되었다.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간파한 장식의 소통력이 적중했던 것이다. 친근하면서도 예술적인 격조를 잃지 않는 디자인을 해온 알레산드로 멘디니를 생각하면 그런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중세시대부터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정교하면서도 럭셔리한 기계장치라는 이미지가 컸고, 스위스 시계는 그런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세계적인 신뢰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계를 만드는 기술을 모든 나라가 가지게 되면서부터 스위스 시계산업은 위기에 봉착했던 것이다.
멘디니는 이점을 정확하게 보았다. 그는 시계에 대한 무거운 선입견을 벗겨내고, 시계를 액세서리처럼 가볍고 친근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 결과 스와치는 일약 세계적인 브랜드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 이후로 그는 계속해서 패셔너블하고 아름다운 장식으로 가득 찬 시계들을 디자인했다.
최경원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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