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들 뉴욕 컬렉션은 파리 컬렉션보다 ‘상업적이다’라고 한다. 이 말을 조형 언어로 바꾸면 파리 컬렉션에 비해 뉴욕 컬렉션의 옷은 ‘절제되어 있다’고 읽을 수 있다. 존 갈리아노의 디올 쇼와 도나 카란을 비교한다면 그 이미지가 쉽게 연상될 것이다. 과장된 실루엣 vs 간결한 실루엣,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 보일 수 있는 패션쇼를 위한 옷 vs 바로 입고 회사에 출근할 수 있는 옷, 과도한 장식 vs 절제된 장식 등에서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파리 컬렉션의 옷들은 시각적, 물리적으로 부피가 크다. 옷들이 부풀고 과장되어 있다. 옷을 예술 작품으로 대하기 때문에 발상에 제한이 없는 것이다. 이 옷을 입고 회사를 가거나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실용적 목적보다는 ‘탐미’가 우선 순위이다. 따라서 장식도 과해지고 색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거리낄 것이 없다.
반면에 뉴욕 컬렉션은 목적이 다르다. 정말 일하는 현대 여성을 위한 패션쇼가 각광받는다. 일하는데 걸리적거리지 않은 옷, 튀지 않는 색,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안목이 높은, 세련된 커리어 우먼임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싶어한다. 몇 백 년간 이어져 내려온 귀족과 왕정 문화가 있던 파리와 자본주의로 급속히 성장한 뉴욕의 역사적 결과가 패션에도 다르게 묻어나는 것이다.
남성복 컬렉션의 양상은 어떨까? 현대의 비즈니스 맨의 유니폼은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오던 18세기 말, 부르주아의 형성과 함께 완성되었다. 재킷과 화이트 셔츠, 베스트와 바지, 구두 등 현대의 양복 아이템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이 비즈니스 복장은 시즌마다 바뀌는 여성복의 유행과는 전혀 다른 속도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스트라이프 무늬 간격이 좁냐 넓어지냐에 따른 유행이나, 체크무늬, 솔리드 같은 소재 패턴의 차이, 버튼 개수에 따른 유행, 바지 폭의 변화 등 그 속도도 아주 느렸을 뿐 아니라 변화 양상이 크지 않고 미세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 변화가 눈에 띄게 커지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컬렉션에 남성복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면서 차별화를 계속해서 시도한 것이다. 권위적이고 고여있는 물 같던 남성복 시장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
여기서도 파리 컬렉션과 뉴욕 컬렉션의 차이가 드러난다. 탐미적인 프랑스는 튀는 색이나 화려한 무늬로 소재를 바꾸는데 주력했다. 시각적 충격이 큰 쪽을 택한 것이다. 실용적인 뉴욕은 평범한 듯 하면서 아주 작은 디테일로 승부하기 시작했다. 3.1 필립 림의 남성복 컬렉션처럼 말이다.
사진 ①에서 보여주는 평범한 복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발목을 두른 스트랩이다. 평범한 구두에 발목 끈을 달아 발목을 강조하고 있다. 강조라고는 하지만 쉽게 지나칠 정도로 미세하다. 사진 ②는 모양은 재킷인데 소재나 바지에 입는 방식이 셔츠에 가깝다. 사진 ③은 평범한 정장 같다.
커다란 장갑이 눈에 먼저 띄지만 자세히 보면 허리 춤을 끈으로 묶어 허리 라인을 좀 더 강조하고 있다. 워커에도 퍼를 달아 미세한 장식성을 더했다.
고학수 현디자인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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