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하면 이탈리아, 이탈리아 하면 디자인이 떠오른다. 한 때 디자인 왕국이라 불리웠던 명성만큼 이탈리아에서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디자인들이 즐비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과연 이탈리아는 어떻게 해서 디자인의 중심지가 되었을까?

디자인의 나라
나라마다 캐릭터들이 있지만 이탈리아만큼 여러 가지 캐릭터가 공존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서구 문화의 시발점, 예술의 나라, 마피아의 나라, 그리고 패션 디자인 대국.

이처럼 이탈리아를 수식하는 말은 한 둘이 아니다. 역사와 전통이 유구한 까닭일 것이다. 그런데 조각이나 그림, 오래 된 집 등과 같은 시간의 축적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라는 초현대식 문명과 관계되는 것이 이탈리아를 대표한다는 것이 좀 의외이다. 하지만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이탈리아는 현대 디자인에 있어서도 못지않은 매력적 디자인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페라리.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이다. 자동차 하면 독일을 연상하지만 페라리 앞에서는 위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작(?) 성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오감을 뒤흔드는 뛰어난 외양은 세계적인 명성이 이상하지 않다.

패션하면 이탈리아를 손꼽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베르사체와 같은 아름다운 명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빛내고 있는 패션 명가들은 얼마나 많은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은 원래 그랬던 일이고, 계속해서 새로운 명가들이 등장해서 전통의 흐름을 도도하게 이어가고 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알레산드로 멘디니 같은 이탈리아 디자이너는 기능만을 충실히 따라야 할 것 같은 제품 디자인에 생명을 불어 넣었다. 쓰임새에 큰 하자 없이도 이처럼 사람의 마음에 답삭 다가오는 디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 그지없다.

이처럼 이탈리아는 여러 디자인 분야에서 골고루 세계적인 수준의 디자인들을 내놓고 있었으며, 유구한 전통 외에도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확보하였다. 비록 독일 보다는 좀 뒤지기는 했지만 독일식 디자인이 쌓아 놓은 연륜을 생각하면, 대단히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았으며, 그 만큼 커다란 성공을 세계적으로 이루어냈다. 디자인이라는 이 새로운 흐름 뒤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

라파엘의 파스텔 조의 색상은 소박한 듯하면서도 이탈리아적 인상을 강하게 준다.
1980년 대 포스트 모던 디자인을 이끌었던 에또레 쏘사스의 책장을 보면 컬러풀한 색상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르네상스 건축하면 생각나는 천재 건축가 브루넬리스키. 그가 설계한 피렌체 대성당 돔은 아마도 르네상스 건축의 아이콘이라 해도 별 탈 없을 것이다. 로마시대의 돔구조를 그대로 받아 되살린 돔은 이탈리아 건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알도 로시가 디자인한 커피 메이커를 보면 이 조그마한 커피 머신이 어떤 형태를 지향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다. 전통을 거의 가져왔지만 고리타분하거나 진부하지 않다. 전통도 제대로 살리면 이렇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천재 미켈란젤로의 조각을 보면 돌이란 무생물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동세가 강하다.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스포츠카 람보르기니의 외향을 봐도 거의 같은 생명감과 강한 동세를 느끼게 된다. 이처럼 이탈리아의 현대 디자인은 그저 디자이너들이 홀로 잘 나서가 아니라 유구하게 내려오는 전통이라는 흐름을 매우 영리하게 자기화시켰고, 자신의 능력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산으로 삼았다는 것이 정확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디자인은 새로운 것도 오래된 것처럼 보이고, 오래 된 것도 첨단시대를 선도하는 새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특징들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최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