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석습(朝花夕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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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브랜드에세이 (47)

2010-04-02 오후 3:29:44

눈앞에 펼쳐진 건 바야흐로 봄입니다. 토요일 오후,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기분 좋은 낮잠에 빠졌다가 얼굴에 쏟아지는 햇볕에 눈을 뜨자, 베란다 한 켠에서 분홍빛 자태를 뽐내며 피어있는 난 꽃의 모습이 말입니다. 지난 며칠간 간만에 몸살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었나 봅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잔가지들을 좀 쳐내고, 잠시 쉬면서 핵심에 집중하라는 본능적 신호겠지요. 그래서 주말엔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고 오랜만에 집안에서 빈둥거렸습니다. 그러자 변덕스런 3월을 뒤로하고 완연한 봄기운이 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다’는 뜻의 ‘조화석습(朝花夕拾)’은 중국의 유명한 문인 ‘루쉰(魯迅)’의 글귀로 글에 담긴 여운과 기품이 좋아 오래도록 기억하는 문장입니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지저분하다고 그 자리에서 매정하게 쓸어낼 것이 아니라, 가지에서 떨어졌어도 아름다운 꽃이긴 마찬가지이니 감상도 하며 저녁까지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이건, 일로 생긴 문제이건 여유를 두면 다 잘 마무리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학창시절 이 문장에 매료되었을 때는 남들이 모두 가지 위를 쳐다볼 때 발밑만 바라보며, 바닥에 떨어져 수북이 쌓인 벚꽃이 눈밭처럼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오랫동안 저는 여유 없이 살았습니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목표와 그걸 달성하기 위한 빈틈없는 스케줄에 맞춰 앞만 보고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정작 마음속 타이어가 펑크나는 줄은 몰랐습니다. 나만 고장난게 아니라 주변사람까지 과속을 조장하지 않았나 하는 미안함도 듭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잠시 멈춰있는 동안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겁니다. 한 해를 살아갈 때 이성과 감성의 밸런스가 중요하다면, 봄은 특별히 감성 충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계절이 아닌가 합니다. 형태와 빛깔이 모두 겨울의 허물을 벗고 새롭게 태어나며 생동감이 넘칩니다. 우리의 오감은 스폰지처럼 새로운 것을 빨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요. 여러모로 창의성이 필요한 패션 브랜드에 있어서는 더욱 그것이 발휘되기 좋은 환경인 것입니다.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본 바에 따르면 창의성은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할 때 극대화된다는 것이 과학적 뇌파검사를 통해 검증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두뇌가 긴장하지 않고 말랑말랑해질 때 일이 더 잘되는 것이지요. 또한 무언가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흥분과 경이와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즉, 여유가 생기면 감동받기도 창의적으로 생각하기도 쉬워집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이 관망이 아닌 체험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일상 속에서 작은 쉼표를 찾아 삶과 업무를 더욱 윤택하게 해보면 어떨까요. 저도 압니다. 생각은 쉬워도 막상 틈을 내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직장인입니다. 그렇다면…자, 오늘 점심엔 늘 가던 뻔한 메뉴의 식당 대신 포장 김밥이라도 싸들고 동료들과 함께 가까운 공원을 찾아 봄바람을 한껏 포식해 보는 건 어떨까요?

태진인터내셔날 마케팅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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