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가슴이란 그 자체로 여성성의 상징이다. 유방암 수술을 한 여성들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함께 겪는 이유도 그 상징성 때문이다. 또한 남성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신체 부분이며 따라서 그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도 가슴이다. 따라서 오랜 역사에 걸쳐 여성의 가슴은 다양한 방식으로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 봉긋하고 둥그스름한 형태가 파괴되지 않았었다. 장 폴 고티에의 가슴이 원뿔 형태인 콘브라(cone bra) 바디수트가 그만큼 파격일 수 있었던 이유도 가슴 본연의 형태 파괴에서 오는 충격이 컸기 때문이리라. 사실 제품 디자인의 경우만 해도 우리에게 익숙한 디자인의 형태만 바꿔줘도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인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옷의 디자인, 특히나 곡선적인 여성의 신체가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이러한 미학관을 가진 시대에 패션 디자인은 다분히 정적(靜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래도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가슴을 강조하고 있다. 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든가, 간접적으로 드러내든가. 다시 말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든지, 가리는 척 드러내는 것이다.
화려함으로 깅조하기
가장 간단한 방법은 액세서리를 하거나 옷에 장식을 달아 가슴을 꾸미는 것이다. 목걸이를 착용하거나 가슴 부근의 옷에다 시퀸이나 스팽글, 큼지막한 인조 보석 등 반짝이는 재료를 사용하여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이때 가슴을 장식하는 면적에 따라 시선 집중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가슴골로 긴 브이(V)라인을 형성하는 목걸이 줄에 달린 조그마한 펜던트나 인체의 대칭 형태를 깨 포인트가 되어주는 브로치는 가슴으로 시선을 유도하는데 비해 목걸이나 가슴을 꾸미는 장식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가면 가슴보다 얼굴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마치 네크라인처럼. 네크라인은 얼굴과 가슴의 중간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얼굴과 가슴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네크라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얼굴, 또는 가슴으로 시선을 더 집중시킬 수 있다.
박쥐같은 네크라인
네크라인을 얼마나, 또 어떻게 파는가에 따라 집중도가 달라진다. 터틀넥처럼 목조차 꽁꽁 싸매거나 티셔츠의 네크라인처럼 목까지만 보여주면 단정하고 정숙한 이미지를 준다. 하지만 목과 가슴을 많이 노출시킬수록 남성들의 시선은 더 집중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터틀넥을 입고도 가슴으로 시선을 집중 시키는 방법이 있다. 바로 몸에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옷을 입는 것이다. 여성의 인체는 장식 없이 그 자체의 곡선만으로도 아름답다. 몸에 달라붙어 그 실루엣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의는 그 어떤 현란한 장식을 압도한다. 그것이 디자인에 있어 장식보다 형태가 우월하다는 증명이 된다.
디자인의 단계 중에서도 일반적인 형태에 장식을 더하는 것은 하위 단계의 디자인 방법론으로 볼 수 있다. 혹자는 디자인에 우열을 가릴 수 있냐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취향이 있고 그 취향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어떤 디자인은 금방 식상해지고 어떤 디자인은 볼수록 깊은 감동을 주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장식으로만 쉽게 눈에 자극을 줘 뇌의 피질까지만 도달하느냐, 새로운 형태로 뇌의 깊은 수질을 자극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더 깊숙이 자리 잡은 수질에 도달하려면 역사와 시대의 흐름까지 읽어야 한다.
형태는 장식보다 우월하다
장 폴 고티에의 콘브라가 역사에 남게 된 것은 물론 형태 파괴도 있지만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는 역사적 과정 중에 남성들에 의해 여성에게 강요된 모성과 여성성의 상징인 가슴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었기 때문이 아닐까.어쨌거나 콘브라처럼 3차원적으로 형태 자체를 바꾸는 것이 너무나 큰 사회적 충격을 준다면 2차원적인 형태를 바꾸어 강조할 수도 있다.
이중적인 여성의 심리, 감추는 척 드러내기
앞의 네 가지 예시는 직접적으로 가슴을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여심이란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노골적으로 가슴을 강조하면 ‘저 쉬운 여자예요’ 라고 타인에 비춰질 것 같은 것이 싫은 것이다. 여자는 ‘나는 정숙한 여자지만 마음만 먹으면 당신을 유혹할 수 있어요’ 라는 의사표시를 하고 싶어 한다. 이렇듯 여자는 복잡한 동물이다.
어쨌든 이렇게 꼬인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때 소재를 활용해보자. 씨쓰루 룩(see through)은 비치는 소재로 속이 보일 듯 말듯 표현할 수 있는 소재이다.
이렇듯 디자인에서 가슴을 강조하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동양 여성들 중 자신 있게 가슴을 드러낼 수 있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 장식이든 패턴이든 본래의 인체를 바꿀 수 없는 법 .다음 시간에는 인체에서 가슴이 차지하는 해부학적, 복식사적, 심리적인 의미를 복합적으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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