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디자인 공부하는 여학생들은 대번에 구별해낼 수 있어. 특징이 있거든. 첫째, 앞머리를 단발로 잘랐고, 둘째, 꼭 색깔 있는 안경테로 된 안경을 써. 셋째, 큰 은반지를 끼고, 그리고 아주 큰 가방을 들고 다니지.” 스트레오타입에 대한 누적된 검증까지 가능할 정도로 밀라노의 4월은 ‘디자이너’와 ‘디자이너 지망생’들로 넘쳐난다.
<글.정인희(ihnhee@kumoh.ac.kr)| 금오공대 교수>

4월 18일(水)부터 23일(月)까지 피에라(fiera, 박람회장)에서 공동으로 ‘국제가구전(Salone Internazionale del Mobile)’, ‘국제가정용품전(Salone Internazionale del Complemento d'Arredo)’, ‘유럽조명전(Euroluce)’이 열리는 기간 동안 밀라노 전역은 곳곳이 볼거리로 가득 찬다. 이른바 <밀라노디자인위크>. 시내 곳곳의 관련 매장들은 작은 전시를 준비하고 손님을 맞는다. 살로네(salone, 살롱)들은 대략 ‘첸트로첸트로(시내 최중심지)’와 ‘조나토르토나(Zona Tortona)’에 모여 있지만, 한 집씩 뚝 떨어져 있는 곳도 많으니 필히 행사 지도를 지참하고 찾아다닐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단언하건데 그 누구도, 일주일의 기간 동안 밀라노에서 선보이는 모든 살로네에 가보지는 못할 것이다. 피에라만 해도 전체를 제대로 보려면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돌아다녀 사나흘은 족히 걸릴 것 같다.
밀라노 외곽지역 로(Rho)에 새로 지은 이 피에라밀라노는 <밀라노우니카>가 열리는 피에라밀라노시티와는 감히 비교가 안 되게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그래서 매표소에서는 1일권(18유로) 외에도 3일권(35유로)과 6일권(47유로)까지 판매한다.
조나토르토나에서는 세계 각 대학의 학생들이 작품을 가지고 와서 참가한 <대츠디자인(That's Design)>이라는 디자인 대학 박람회가 열리기도 했다. ‘도무스 아카데미’와 ‘폴리테크니코 디 밀라노’에서 주도적으로 준비한 행사다. 이탈리아 내 여러 도시뿐만 아니라 독일, 프랑스, 그리고 한국 등에서 25개 대학이 참가했다. 이 지역 역시 행사 기간 내내 좁은 골목길이 발 디딜 틈 없게 성황을 이루었다.
조나토르토나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2호선 ‘포르타제노바(Porta Genova)’ 역에서 내려 육교를 넘어가야 하는데, 이 포르타제노바 역은 나빌리오(Naviglio) 지구로도 이어진다. 나빌리오는 밀라노 시내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물’이다. 얼마 전 모 주간지 특집 기사에서 ‘포 강이 밀라노를 흐른다.’고 쓴 구절을 보았는데, 이탈리아에서 제일 긴 강인 포(Po)가 밀라노를 둘러 흐르기는 하지만 밀라노에서 포 강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빌리오는 밀라노 두오모를 짓기 위한 건축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시내까지 이 물길이 이어졌다고 하지만, 지금은 두오모의 남서쪽에 해당하는 이 지역에만 그 흔적이 남아 ‘운하’라는 뜻의 ‘나빌리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낭만과 예술의 도시
나빌리오 주변은 낭만과 예술의 거리로도 이름이 나 있다. 늦은 오후부터 슬슬 젊은이들이 모여 들기 시작하여 밤이면 연인들이 한껏 분위기를 잡을 수 있는 곳. 앤티크 가게 등 재미있는 콘셉트의 점포들도 많이 들어서 있다. 특히 토요일 오후에는 이 좁은 운하를 따라 자기가 직접 그린 그림들을 펼쳐 놓고 파는 화가들이 모여들어 한결 더 운치가 풍기는 곳으로 탈바꿈한다.
우리에게는 패션 밀라노가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밀라노패션위크>와 <밀라노디자인위크>는 그 규모 자체가 다르다. <밀라노패션위크>란 ‘밀라노 여성복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이 열리는 일주일간을 일컫는 것으로 ‘패션위크에는 택시 타기가 힘들다’는 말이 나돌기는 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크게 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디자인위크에는 아침부터 지하철이 만원이다. 외부에서 온 손님들을 대상으로 지하철 표 구입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올 정도다. 사람도 많고, 더구나 그 사람들이 ‘큰 가방’을 들고 몰려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디자인위크는 모든 밀라노 사람들이 피부 깊숙이 실감할 수밖에 없는 밀라노의 대표적인 행사다.
그런 까닭인지 밀라노인의 디자인 감각(?)은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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