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동의보감 25권의 완성
광해군 2년(1610년) 음력 8월 6일에 70대의 늙은 허준은 동의보감 25권을 왕에게 바쳤다. 조선왕조실록(광해군일기)에는 그날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왕이 전교하기를 “양평군(陽平君) 허준(許浚)은 일찍이 선조께서 의방(醫方)을 찬집(撰集)하라는 명을 특별히 받들고 몇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였는데, 심지어는 유배되어 옮겨 다니고 유리(流離)하는 가운데서도 그 일을 쉬지 않고 하여 이제 비로소 책으로 엮어 올렸다. 이어 생각건대, 선왕께서 찬집하라고 명하신 책이 과인이 계승한 뒤에 완성을 보게 되었으니, 내가 비감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다. 허준에게 숙마(熟馬) 1 필을 직접 주어 그 공에 보답하고, 이 방서(方書)를 내의원으로 하여금 국(局)을 설치해 속히 인출(印出)케 한 다음 중외에 널리 배포토록 하라.”고 하였다. 이 책의 이름은 『동의보감(東醫寶鑑)』인데, 대개 중조(中朝)의 고금 방서를 널리 모아서 한 권에 모은 다음 분류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다.
동의보감은 몸 내부를 설명한 내경편(內景), 몸 바깥을 설명한 외형편(外形), 20여 가지의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서술한 잡병편(雜病), 각종 약초에 대해서 설명한 탕액편(湯液), 침과 뜸을 설명한 침구편(鍼灸)의 5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동의보감의 구성은 세계 의학사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치밀할뿐더러, 한의학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요즘의 건강서적이나 의학서적은 대부분 내과, 혹은 외과, 민간요법, 특정 질병의 치료법에 국한되고 있는 반면 동의보감은 인간의 질병을 5가지 관점에서 바라보지만 전체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동의보감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중국의 명나라는 동의보감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신을 통해서 한 질을 얻어갔다. 그러나 청나라와의 전쟁으로 이 책을 정식으로 출간하지는 못했고, 명나라를 대신해서 대륙의 주인이 된 청나라가 중국판 동의보감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재미난 일화가 전해진다. 청나라가 대륙의 주인이 되었지만 명나라를 숭배하는 분위기를 금방 없앨 수는 없었다. 이에 청나라 고종이 민심을 얻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중국판 동의보감의 간행이었다. 왜냐하면 수많은 중국 의사들이 조선의 동의보감을 원했기 때문에, 청나라 조정에서는 이 책을 발간하여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인기를 얻으려고 했다.
이 책의 서문에 “한줄기 햇빛이 작은 구멍을 통해서 들어오기만 해도 어둠이 금방 사라지듯, 이 책은 몸 속을 환히 꿰뚫어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책이다”라는 찬사의 글귀가 있다.
일본판 동의보감의 번역자 후지하라는 서문에서 “이 책은 생명을 구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책이다”라고 극찬했다. 그리고 구 소련에서 발간된 세계의학백과사전에는 동의보감을 동양에서 간행된 3대 의학서 중 하나라고 소개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613년 내의원에서 초간본이 인쇄되어 보급되었고, 이 후에도 필요할 때마다 각 지역에서 동의보감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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