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조상들의 은덕으로 신혼 초야를 치른 후 두 사람은 새 생명을 잉태하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새 생명은 부부의 노력과 조상들의 연(緣)이 합쳐지고 여기에 하늘이 감응해야 얻어진다. 즉 임신이란 기계적인 관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건강한 임신을 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택일이다. 옛날에는 부부가 합방하는 것을 집안의 큰 일로 여겼기 때문에 별도의 날을 잡아서 부부관계를 가졌다. 왜냐하면 기형아 출산을 비롯하여 단명, 불운, 약골 등이 부부합방 날짜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마음만 통하면 시도때도 없이 곧 바로 관계를 하는 세상에 무슨 고리타분한 비과학적 내용이냐고 반문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하늘 땅 인간의 삼박자가 고루 맞아야 건강한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택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여자의 몸 상태이다. 요즘은 생리 예정일에서 14일 앞인 배란기 전후에 관계를 하면 임신이 잘 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동의보감에서는 이보다 일주일 정도 빠르다. 즉 생리를 한 후 4-6일 되는 날에 관계를 하면 임신이 잘 된다고 하였다. 배란기가 우선이냐, 배란일 일주일 전이냐에 대한 논쟁의 근거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몸 튼튼한 남편을 두었다면 배란이 일주일 전부터 배란기 때까지 매일마다 계속 하면 된다. 신혼부부에게 논쟁이 필요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때가 가장 좋다고 하더라도 피해야 할 때가 있다. 바로 하늘의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때인데, 쉽게 말해서 이상 기후가 나타나는 때에는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택일을 했더라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거나, 비바람이 불거나, 천둥 번개가 친다면 합방을 피해야 한다. 또한 이웃에서 상(喪)을 당하던지, 집안에 시끄러운 문제가 생기던지, 나라가 혼란스러워도 합방을 피해야 한다.
이 외에도 음력으로 초하루, 보름, 그믐날은 피해야 한다. 그날의 일진이 병(丙)이나 정(丁)일 때에도 피해야 하고,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날 때에도 피해야 한다. 또한 무지개가 뜨거나 지진이 일어날 때에도 피하는 것이 좋다. 만약 이때 관계를 가지면 남자에게 매우 해롭고, 여자 또한 각종 자궁병이 생기거나 건강하지 못한 아기를 수태할 수 있다.
택일이 잘 되었다면 부부가 합방하는 장소도 좋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조용한 장소에서 관계를 가져야 하는데, 옛날에는 주로 여자들의 거처인 내실에서 이루어졌다. 시간은 밤 11시부터 1시 사이가 가장 좋으며, 늦어도 새벽 3시 이전에는 끝내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반드시 불을 끄고 하는 것이다. 불을 끄지 않고 관계를 가지면 정신이 산만해져서 정신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옛날에 퇴계 이황이 혼인을 했을 때 사람들이 성리학의 대가인 이황도 부부관계를 하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특히 장인과 장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신혼 첫날밤이 끝난 후 장인과 장모가 딸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한동안 얼굴을 붉히던 딸이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로 하는 말 “말도 마이소. 불 끄니 개입디다” 그 말을 들은 장인과 장모는 한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고 웃었다고 한다. 역시 그 일은 불이 꺼져야 제 맛이 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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