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가장 멋진 남자들을 볼 수 있는 곳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옷집들이다. 고급 매장이든 저가 매장이든 대형 패션매장에는 이른바 ‘기도’라고 할 수 있는 남자들이 문 앞을 지키고 있다. 대체로 검정색 정장 차림에 인물도 키도 훤칠한 남자들이다. 게다가 상냥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가끔은 땅딸막한 대머리 아저씨들이 짜증을 부리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두오모 옆 모 매장의 문지기 아저씨가 그렇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목인 탓일 게다.
옷집들이 서서히 문을 닫을 저녁 무렵이 되면, 밀라노의 온갖 멋쟁이들이 몰려드는 장소가 있다. 바로 ‘아르마니 까자(Armani Casa, casa는 집이라는 뜻)’ 안에 있는 일본식 리스토란테(ristorante, 레스토랑) 겸 바르(bar, 바)인 ‘노부(NOBU)’라는 곳이다. 지하철 3호선 몬테나폴레오네역 바로 앞이다. 아르마니(Armani)도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다. 정식으로 식사를 한다면 매우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겠지만, 노부에도 역시 ‘해피 아우어(Happy Hour, 영어를 그대로 쓴다)’가 있다.
‘해피 아우어’란 간단한 음식 몇 가지를 뷔페식으로 마련해 놓고 주류 혹은 음료 한 가지를 주문하면 이 음식들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시간인데, 이 때 모든 주류와 음료의 금액은 동일하다. 즉 해피 아우어 가격이 정해져 있어서 손님들은 해피 아우어에 가면 일정 금액을 내고 음료를 하나 마실 수 있고, 이와 더불어 차려진 음식들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지불하는 것이 음료 값인 만큼 음료를 하나 더 주문하면 한 번 더 돈을 낸다.
필자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해주는 한 후배의 말을 빌리자면, 원래 점심 때 만들고 남은 식재료를 처분하기 위해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제공하던 것이, 이제는 이런 곳이 많아지고 손님들도 해피 아우어를 찾아다니니까 바르에서는 해피 아우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피자만 제외하고, 밀라노의 밥값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장소는 피짜리아 아니면 해피 아우어를 하는 바르 밖에 없어 보인다.
해피 아우어 가격은 6유로 아니면 8유로다. 이것도 거의 만 원 돈이니까 결코 싼 것도 아니다. 해피 아우어는 보통 저녁 6시 30분 정도부터 시작되는데,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인기 바르에는 7시 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앉을 자리도 없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앉을 자리가 있건 없건 사람들은 계속 들어온다는 것이다. 음료 하나 받아서 손에 들고 음식도 그냥 서서 먹는다. 차려진 음식은 바르마다 조금씩 다르다.
노부의 경우에는 해피 아우어도 매우 비싸서 12유로나 한다. 음식은 일본식이니까 기본적으로 김밥이 있고, 파스타와 야채와 고기가 나온다. 앉을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코트를 벗어서 다른 손님이 앉아 있는 의자에 말도 없이 걸쳐 놓고 그대로 통로에 서서 먹고 마신다. 보통 바르와는 달리 노부는 흡연 공간이어서 담배도 서서, 즉 앉아 있는 손님의 머리 위에서 피운다. 9시가 가까워오면서 노부의 공간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찬다. 다만 먹고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마다 잘 차려 입은 모습을 뽐내기 위해 이 공간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 같다. 즉 노부는 하나의 패션 상징이다. 그리고 단연코 남자 손님들이 많다.
보통의 밀라노 사람들은 어떻게 옷을 입을까? 여름부터 가을, 겨울에 이르기까지 특징적인 것들을 하나씩만 찾아보자. 물론, 지금 필자가 언급하는 것은 전문가의 패션 트렌드 분석이 아니라 단지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모습들을 전하는 것이다.
먼저 여름의 속옷. 지금은 겨울이니까 외투를 덧입어 이런 모습을 잘 보기 힘들지만, 여름의 거리는 팬티를 드러낸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바지를 엉덩이까지 잔뜩 내려 입으니 팬티의 허리 부분이 자연스럽게 노출되는데, 거기에는 유명 브랜드 이름이 새겨져 있기도 하고, 재미있는 프린트가 되어 있기도 하다. 의자에라도 앉으면 팬티는 더 깊숙이까지 보인다. 브래지어의 일부가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데다가 이제는 팬티까지 보여주기 위한 기능, 겉옷의 일부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서 내심 놀란 것은 여자들이 모두 검정색 정장을 입고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유럽이니까 매우 다채로운 색상의 옷차림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출근을 하는 여성들의 옷차림은 의외로 검정색 일색이다.
대다수는 값싼 소재로 만든 검정색 정장이다. 마치 교복처럼 검정색 정장을 입고 나타난다. 이유를 몇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라면, 아마 「자라(Zara)」나 「에이치앤엠(H&M)」 같은 대형 저가 패션 매장들에서 검정색 정장 기획을 잔뜩 하지 않았을까 하고 분석해 볼 수 있다
정인희 금오공대 교수
ihnhee@kumo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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