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다소 생소했던 이 단어가 어느새 우리의 곁으로 불쑥 다가섰다. 올초 다보스 포럼은 이 단어를 주제로 삼았다. 클라우드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직접 나서 “인류는 이미 4차 산업혁명에 접어들었으며, 과거 경험하지 못했던 급속한 변혁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는 이미 그 변화의 바람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는가.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바둑대결은 승패 여부를 떠나 그 자체로 사회적 이슈가 됐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지능을 지닌 소프트웨어는 산업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시대, 한국의 패션산업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패션인사이트>에서는 소비자와의 ‘소통’에서 그 답을 찾아보려 한다.
소비자들은 날로 스마트해지고 있다. 인터넷과 해외 여행 등을 통해 폭넓은 정보를 손에 쥐게 되며 소비자는 프로슈머(Prosumer)로 진화했다. 이들은 패션을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단계에 관여하며 그 안에서 특별한 가치를 찾기를 원한다.
따라서 소통의 기술도 변하고 있다. 수직적인 조직관계는 수평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소비자와의 교감을 높이기 위해 한류와 IT기술 등 다양한 분야와 융복합을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에 소비자는 즉각 반응한다. 환골탈태를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 소비자까지 사로잡고 있는 패션 기업들의 사례를 알아보자.
‘에잇세컨즈’는 한류 스타 지드래곤과의 콜래보를 진행하며 K-스타일을 선도하고 있다. |
◇ 좋은 파트너를 만드는 것이 곧 고용이다
“10년 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일을 할 것인가?” 최근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가 패션기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에서 화두를 던졌다. 일순 청중들은 숨을 죽인 채 김대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면서 그간 고용문제에 대해 얼마나 골머리를 앓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어진 답변은 간단했다. 시야를 밖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었다. 현재 한국의 패션산업은 200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다양한 디자이너 및 홀세일 브랜드들로 인해 더욱 풍성해지고 있다. 해외 유명 패션스쿨을 나온 인재부터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해 젊은 나이에 동대문으로 뛰어든 이까지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이들이 자신만의 브랜드를 꾸려가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이들 홀세일 브랜드는 대부분 1인 기업 체제로 운영된다. 디자인부터 생산, 판매까지 디자이너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신진 디자이너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전화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공장에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뛰쳐나가야 한다. 매장에서 재고를 넣어달라는 요청이 생기면 직접 짐을 실어 나르고 외부 미팅으로 인해 업무를 처리하지 못한 날이면 새벽까지 처리하다 사무실 구석에서 몸을 누이기도 한다.
소비자는 안다. 이 상품에 얼마나 땀과 애정이 녹아들어갔는지 말이다. 덕분에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조금씩 자신의 컬렉션을 사랑해주는 마니아층을 늘려가며 성장하고 있다. 마니아들의 팬심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2주에서 한 달까지 걸리는 배송시간도 기꺼이 기다리며, 시즌이 출시되자마자 몇백만원씩 지불하며 전 컬렉션을 사모으기도 한다. 소비자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말한다.
기존의 패션기업들에서도 이들의 파워를 실감하고 있다. 아니 더 나아가 함께 미래를 꾸려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시선인터내셔널은 여성복 ‘르윗’의 F/W 컬렉션 디렉팅을 스타 디자이너 이명신에게 맡겼다. 디자이너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를 통해 이름을 알린 이명신 디자이너는 감각적인 디자인의 ‘로우클래식’과 ‘로클’이라는 브랜드로 20~30대 여성 소비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명신 디자이너는 단순히 디자인 기획에만 참여한 것이 아니다. 전체 컬렉션부터 비주얼, 인테리어, 온라인 콘텐츠까지 전 영역을 디렉팅했다. 단순한 홍보 효과를 노린 게 아니라 브랜드 재정립을 위한 전략으로 콜래보레이션을 택한 것이다.
보다 장기적인 미래를 보고 파트너십을 맺은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럭키슈에뜨’ ‘슈콤마보니’ 등 디자이너 브랜드를 인수해 전략적으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있다. SK네트웍스가 ‘스티브J&요니P’와 M&A를 맺은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이명신 디자이너가 디렉팅에 참여한 ‘르윗’의 2015 F/W 컬렉션. |
‘로우클래식’ 2016 F/W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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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 콘텐츠로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 하라김묘환 CMG 대표는 최근 ‘메이커’라는 단어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메이커는 패션산업이 등장한 1970년부터 1980년 사이 유행했던 말로 추적이 가능한 생산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뜻한다. IMF이후 불어닥친 패션의 커머디티화, 그리고 2000년에 들어 등장한 SPA 붐은 메이커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하지만 패션을 단순한 소비의 행위로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프로컨슈머들이 생겨나며 메이커에 대한 수요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소비자들은 패션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필요에 의해 사서 입다 버리는 실용품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이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패션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커머디티 패션의 선두주자였던 ‘갭’의 새로운 대표는 ‘이제 ‘갭’은 아트 패션을 하겠다’며 이름 마저 아트 펙(Art Peck)으로 바꿨다.
다행이 우리에게는 패션의 부가가치를 올려 줄 훌륭한 자산이 있다. 바로 한류가 그것.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양질의 콘텐츠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유례없는 한류 열풍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한국의 위상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는 만들어지기 무섭게 수출되며 제작 인력까지 모셔갈 정도다.
패션에도 한류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온라인몰 알리바바에서는 여성복 순위 상단에서 ‘한국 스타일’이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한국의 스타일을 모방한 온라인 몰 ‘한두이서’는 높은 매출고를 자랑한다. 특히 ‘한두이서’는 티몰에서 2012년부터 4년간 광군제 최대 매출액 1위를 차지했으며 40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대형 유통업체다.
직접 한국 사이트에 접속해 쇼핑을 즐기는 중국의 역직구족도 늘고 있다. 이러한 소비 행태의 변화 속에 ‘스타일난다’나 ‘로켓런치’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가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파고들었다.
보다 적극적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결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 패션 기업들은 브랜드 모델을 선정할 때 중국에서의 인기를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에잇세컨즈’는 중국 진출에 빅뱅의 GD와 손을 잡았다. 빅뱅은 지난 8월 열린 10주년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중국에서 예매를 시도한 이들만 198만명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어, 현지에서 ‘에잇세컨즈’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IT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나가는 사례도 눈에 띈다. 카카오는 주문자 생산방식의 플랫폼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 서비스를 시작했다. 카카오의 모바일 경쟁력을 이용해 소비자와 생산자를 효율적으로 연결하겠다는 것. 이 서비스는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굿즈부터, 패션, 리빙 등의 상품을 제안한다. 새 상품은 공개된 뒤 일주일 동안 주문을 받고 접수된 물량만 제작한다. 적은 리스크로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뷰티와 패션 크리에이터를 양성하는 레페리는 콘텐츠를 중국 시장에 공급하며 훌륭한 홍보의 창구가 되어주고 있다. 또 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 텐센트 비디오와 뷰티 브랜드 ‘이니스프리’와 손잡고 중국 뷰티 크리에이터 육성 프로젝트인 ‘워더짱구에미’를 제작에도 나섰다. 중국 최대 화장품 유통사 릴리앤뷰티, 대형 투자사 케이벤처그룹 등이 25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레페리에 대한 기대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는 선 주문을 받고 접수된 물량만 제작해 호응을 얻고 있다. 사진은 인기리에 판매된 ‘브라운브레스’의 에코백. |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에 판매된 ‘스위치’의 브리프케이스. |
‘스위치’의 브리프케이스. |
최은시내 기자
cesn@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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