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날렸다. “현 정권의 문제점은 자신이 무엇을 잘 못하고 있는 지 모르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IMF의 주범이라는 오명 때문에 무슨 소리를 해도 좋은 말을 듣지 못하는 그였지만 이 한 마디 만큼은 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최근 롯데쇼핑의 우리홈쇼핑 인수를 바라보면서 기자는 김 전 대통령의 말을 롯데에 비춰 생각해보게 된다.
지난 2일 롯데쇼핑은 우리홈쇼핑 주식 53%를 4천667억원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까르푸 인수 실패와 연이은 악재를 타개할 수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2001년 사업자 선정에서 떨어지고 나서도 M&A를 통해 홈쇼핑 사업을 할 것이라고 밝힐 정도로 끈질기제 준비해온 사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롯데의 생각과 달리 뒤이은 난관들은 롯데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먼저 방송위의 승인을 받아낼 수 있을 지가 문제다. 2004년 사업자 재심사에서 우리홈쇼핑이 3년간 대주주 지위를 넘기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기 때문이다. 우리홈쇼핑은 “2대주주인 태광산업이 지분을 46%까지 높이며 경영권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에 예외조항에 해당한다. 또 강제력이 없는 문건이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방송위의 승인을 얻기 까지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또 이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방송을 내보낼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없다. 지금까지는 2대주주인 태광산업이 이 분야 최대업체여서 문제가 없었지만 태광은 경영권이 롯데로 넘어간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벌써부터 방송 송출을 중단한 상태다.
하는 일마다 번번이 꼬이는 롯데는 ‘왜 우리가 하는 일에는 사사건건 시비냐’라고 내심 불만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롯데에게 자기성찰의 계기가 되길 기대하는 것이 롯데를 아끼는 이들의 솔직한 바람일 것이다.
지난 10년간 롯데쇼핑은 국내 최고의 유통업체로 자리매김하고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장 우호적이어야 할 협력업체들의 마음을 잃었다. 지난번 신세계와 벌인 브랜드 유치전에서도 22개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파워로 겉모습만 이겼을 뿐 많은 브랜드의 관계자들이 이미 신세계 편으로 돌아섰다.
이번 사건도 그렇다.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게 증권가와 유통업계의 중론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롯데쇼핑의 주가가 연일 하락세다.
지금 롯데가 맞고 있는 위기는 최고의 유통업체라는 권력을 쥐고 난 뒤 주변을 살피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자만심과 교만이 롯데를 수렁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대통령에게 권력을 쥐어준 것은 결국 국민이다. 마찬가지로 롯데쇼핑이 최고의 유통업체가 되기까지는 협력업체들의 피와 땀, 그리고 소비자들의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롯데는 망각한 것일까?
최고의 유통업체라는 권력을 무기로 협력업체들을 구속하는 데서 벗어나 상생과 화합의 롯데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김정명 기자
kjm@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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