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보레는 한때 인기있는 ‘패밀리카’로 매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시보레는 모든 사람에게 호소하려는 생각에서 고가 세단, 저가 세단, 스포츠카, 트럭, 밴 등 지속적으로 새로운 버전을 선보였다. 오늘날 시보레가 업게 4위 밖에 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잭 트라우트가 쓴 ‘Big Brand, Big Trouble’의 한 구절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밀려난 시보레의 이야기는 미묘하게도 오늘날 공룡화된 패션 기업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하나의 빅 브랜드를 가졌지만, 그후 유사 여성복과 아웃도어니, SPA 등 여러 브랜드를 거느리다가 퇴행하고 있는 기업이 좀 많은가. 그리고 오늘날의 상황은 몸집이 큰 브랜드일 수록 큰 트러블에 봉착해있으니, Big Brand, Big Trouble이란 말이 참으로 절묘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바로 우리가 꿈꾸는 거대화의 패러다임이 과연 옳은 것인 것 하는 문제다.
모든 기업이 빅 브랜드를 만들고자 애쓰고, 그렇게 하나의 빅브랜드를 만든 뒤에도 제2, 제3의 빅 브랜드 론칭을 꿈꾸며, 궁극적으로는 다수의 빅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 회사로 성장하기를 꿈꾸는 거대화의 패러다임.
한동안 우리를 성장의 길로 내몰아온 원동력이기도 한 이 공식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애초에 틀린 것이다.
잭 트라우트는 기업이 추구해야 할 것은 ‘수익’이지 ‘매출’이 아님을 되짚으면서, 더 몸집이 커져야겠다는 생각이 가져오고야 마는 트러블의 실체들을 책 한권에 걸쳐 기술해놓았다. 결국 기업과 브랜드가 가야할 길은 ‘크기’가 아닌’ 차별화’의 길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패션 브랜드로서 가장 적합한 회사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명품 브랜드들을 ‘메종’이라고 부른다. ‘페라가모’의 메종, ‘루이비통’의 메종 등 우리가 흔히 쓰는 ‘메종’이란 단어는 하우스, 즉 ‘집’을 의미한다. 명품 브랜드들은 대부분 가내 수공업적인 장인정신을 이어오고 있어, 아직도 그 규모들은 오랜 저택 하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바로 이점이 희소가치와 고부가가치를 이끌어내는 원인이기도 하다.
‘에르메스’의 백을 사기 위해 고객들은 그 작은 메종이 오더받은 백들을 섬세하게 생산할 때까지 기꺼이 기다린다. 만약 그 메종이 대규모 공장이고, 거기에서 잠만 자면 쏟아질 제품들을 대량생산 한다면 그 제품들은 결코 명품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저렴한 옷을 대량 공급하는 회사들일수록 규모는 크다. ‘자라’나 ‘H&M’은 그야말로 패션 대기업들이다. 이 브랜드는 다품종의 옷을 대량으로 취급해야 하니 회사 규모가 클 수밖에 없고, 회사 규모가 크니 유지하기 위한 매출이 커야 하고, 이런 패러다임 속에 점점 거대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국내 패션 브랜드는 어떠할까.
가끔 패션 관계자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우리 패션 기업이 대기업병에라도 걸린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기왕 할 거면 규모도 커야 하고, 매출은 기본 천억대를 넘어야 하고, 해외 출장은 1년에 몇 번은 꼭 가야하고. 기타 등등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대체 그런 기준이 언제부터, 왜 필요하게 된 것인지 개탄스럽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건, 우리 소비자는 누구이고, 그 시장의 크기는 어느 정도이며, 그 시장 속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이익의 최대치는 어느 정도인지, 또 그에 맞는 사업 규모를 어느 정도로 꾸려가는 것이 적합한지 같은 것들이 아니던가.
언제부터인지 패션계에는 그런 말이 떠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할 뿐 매출은 MD가 만든다.’ 한 번 연간 매출이 세워지고 나면 디자인은 어떻게 나왔던지 간에 물량을 밀고 땅겨서 매출을 맞추는 시대란 얘기다.
이건 무책임한 디자인실을 양산하는 전략이자, 공들여 세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망가뜨리는 전략이다.
최근들어 필자의 동네에는 새로운 커피숍이 5-6개나 문을 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중 단 한곳도 프랜차이즈 커피숍은 없다는 점이다.
한 집은 책과 사람을 주제로 하는 학림다방 컨셉이고, 다른 한집은 유학갔다 온 바리스타가 하는 핸드 드립 전문 숍 등등으로 커피숍의 콘셉이 매우 다양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프랜차이즈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가 대규모의 도그마에서 서서히 벗어나, 자신만의 콘셉을 찾아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세상도 이렇듯 변하가고 있는데, 세상보다 빨리 변해야 할 패션에서 더 이상 무리한 몸집 불리기나 물량 돌리기 같은 관행이 이제 그만 사라지길 희망해본다.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
rosmary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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