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의 경영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디자인 중심의 인력 구조와 유통 전략에 대한 가치 기준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백화점 중심의 유통구조가 최우선 영업 정책으로 여겨졌던 시절의 경영 전략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점이다. 백화점 유통이 전부였던 단일 브랜드 중심의 패션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할인점과 아울렛, 로드샵 유통에 기반을 둔 브랜드들이 외형 성장과 함께 영업 이익과 신장율이 높아지는 등 고성장을 누린데 따른 경영관의 변화이다. 과거 제도권 유통에서는 감도와 캐릭터있는 브랜드를 해야만 기업 모양새가 나고, 그 브랜드의 디자이너 또는 MD로 재직 해야만 자신의 경력에 흠집이 나지 않는다고 인정했던 시절은 끝났다. 극심한 불황의 여파와 극단적인 시장 양극화 추세는 비제도권 또는 비주류로 비하(?)했던 브랜드가 주인공으로 부상할 수 있는 환경적 요인을 제공했다. 자신들의 장점인 생산과 코스트 다운에 대한 철저한 소싱력과 전국적인 네트워킹을 통한 유통 판매 전략이 소비자의 합리적인 소비 패턴과 맞아떨어지면서 이들 브랜드가 성장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지난해부터 대형 백화점과 대형 패션업체들은 비제도권 브랜드로 취급했던 브랜드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한 시스템과 소싱력을 분석하고 장점을 취하기 위한 벤치마킹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제도권 패션과 유통업체가 무시했던 비제도권 브랜드의 전략과 시스템을 그대로 답습, 조직과 인력을 새롭게 편성해 그동안 놓쳤던 외형과 이익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본연의 시장을 팽개치는 브랜드도 등장했다. 백화점 유통도 멀티군에 있었던 중가 조닝을 정상군에 전진 배치시키고 입점 경쟁을 벌이는 등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광경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소비자가 끊임없이 요구하는 합리적인 소비 욕구가 그에 부응한 상품 및 브랜드를 유치할 수 밖에 없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밸류 브랜드에 대한 패션 유통업계의 인식 전환은 매스볼륨 브랜드에 대한 경험이 있는 인력에 대한 고정관념도 바꾸어놓았다. 자신의 눈높이에서 감도와 트렌드, 디자인을 고집했던 몸값높은 전문 인력은 효율과 이익을 중시하는 시장구조로 인해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런 존재로, 개인 입장에서는 화려했던 시절에 비추어 냉정한 현실과 타협점을 찾지 못한 사례들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규모와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패션시장 구조에 맞는 합리적인 마인드와 자세,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감도의 디자인으로 승부했던 캐릭터 캐주얼 출신의 패션 인력들이 볼륨 중저가로 흡수, 혁혁한 성과를 거두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시장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인력의 경계 또한 허물어져 서로의 장단점이 보완돼 패션 시장을 발전시킬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류숙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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