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패션시장은 어느때보다 ‘불황’ ‘판매부진’ 등 부정적인 단어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알겠지만, 그 말속에는 모든 원인을 시장환경과 경쟁자에 미루고 싶은 심리가 강한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환기인 지금이야말로 근본에서부터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패션 썰전’ 참석자들의 공통된 썰이었습니다.
이번 썰전은 휴가 막바지인 지난 6일 대치동 마세리아 커피숍에서 △글로벌 SPA 기업 전문 경영자 △중견 여성복기업 오너 경영자 △뷰티 브랜드 오너 경영자 △섬유패션 관련 단체 상무이사 △패션 경영 컨설턴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본지 정인기 편집국장이 사회를 봤습니다.
생생한 대화를 위해 익명 처리했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 사회: 지난주에 이어 글로벌 시장환경에 대한 썰을 이어가겠습니다. 요즘 미디어에선 글로벌과 로컬에 대한 정부 정책을 자주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이 국내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일까요?
A경영자: 최근 신문을 보니 정부에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차의 가격을 낮추고, A/S를 싸게 하라’고 수입차 업체에 압력을 넣고 있다고 하더군요. 전 이를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이 정책대로 한다면, 누가 타격을 받겠습니까? 현대와 기아차가 입지 않을까요. 수입차들이 앞으로도 계속 한국 소비자를 우롱하도록 내버려둬야 2~3% 이하의 소수만 이용하고, 결과적으로 한국 산업이 성장하지 않을까요? 만약 수입차 가격을 내리고, AS 개선되면 누가 한국 차 사겠습니까? 정부에서는 현대 기아차 가격과 서비스를 더 개선하도록 해야 한국 산업이 발전하지, 왜 수입차에 푸시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반대로 국내 기업에는 가격 더 내리라고 하고, 세제 혜택 주고 국내 기업이 더 잘 팔도록 해야 합니다. 언론에서도 이런 것을 감안해서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B경영자: 동감입니다. 패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샤넬’이나 ‘유니클로’와 같은 해외 브랜드에 푸시할 것이 아니라 국내 브랜드들이 품질을 개선하고 가격을 더 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해외시장 진출한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 사회: 요즘은 취미와 쇼핑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소비자와 공감대가 중요해졌고, 기업들의 대응도 그에 걸맞게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D컨설턴트: 그만큼 ‘쇼핑’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점이 바뀐거죠. 실제 유럽에서 회원제 온라인 아웃렛 쇼핑몰로 시작한 방트 프리베(www.vente-privee.com)는 14년만에 하루 250만명이 방문하고, 연간 2조원 매출 등의 진기록을 세우며 승승장구하고 있죠. 기존 회원이 추천해야만 가입할 수 있는 조건임을 감안하면 SNS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E경영자: 최근 현대백화점 코엑스점에서 우리 브랜드를 접한 한 모델이 “이 브랜드가 너무 마음에 들어 모델을 하겠다”고 얘기하더군요. 요즘 소비자들은 자기가 좋다고 생각되면 일단 서치(Search)하고, 정보에서 진정성을 인정하면 주변 친구들과 나누는(Share) ‘2S’의 특성을 보입니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브랜드와 상품의 ‘진정성’에 대해 분별력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죠.
D컨설턴트: 우리 기업들이 소비자들과 보다 많이 공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요즘 소비자들이 가장 즐겨하는 SNS가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패션기업 가운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이 거의 없습니다. 인스타그램은 수요자 중심의 관심사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그들과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용하고, 특히 그들의 관심사를 빅데이터로 분석한다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결국 아직도 국내 대부분 패션 기업들은 과거 제조업 기반의 공급자 시대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내 것’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죠.
◇ 사회: 패션사업의 영역이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업 영역도 넓어지고, 사업 모델도 다원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D컨설턴트: 결론적으로 ‘생태적 지위’를 가진 카테고리별 하나만 살아남는다고 할 수 있죠. 이젠 남 탓할 필요 없이 특정 부문에서 나만 잘 하면 되는 겁니다. 아이템도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된 만큼 규모가 아닌, 전문성과 진정성으로 승부해 생태적 지위를 확보한다면 성장할 수 있는 겁니다.
A경영자: 요즘 소비자들은 내가 잘 하면 바로 선택합니다. F&B 시장만 보더라도 분명합니다. 한때 유행했던 ‘국대떡복이’와 ‘아딸’도 시무룩해졌죠. 요즘은 ‘김선생’ ‘누이단팥빵’ ‘단풍애’ 등이 유행이죠. 남 눈치보지 말고 생태적 지위만 확보하면 돈 버는 것은 순간적입니다.
D컨설턴트: 요즘 뷰티시장에서 주목받는 ‘더프트&도프트’를 보더라도 생태적 지위의 중요성이 명확합니다. 기존 브랜드와 경쟁하려고 하지말고, 자기 브랜드만의 강점을 명확한 아이덴티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C임원: 우리 사회가 주택만 빼고 ‘잉여의 시대’를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냉장고를 열어보세요. 지난해 가을에 선물받은 한우가 그대로입니다. 옷은 어떻습니까? 옷장에 70%는 1년에 한번도 안입는 옷으로 가득한데, 또 삽니다. 중요한 것은 잉여의 시대에 소비자들로 하여금 반드시 사야만 하는 ‘이슈’를 만들어주면 됩니다.
◇ 사회: 시장과 소비자에게 ‘새로움’과 ‘재미’란 이슈를 던지는 것이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과거 ‘익숙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A경영자: 제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80년대에는 3개년, 5개년 계획을 열심히 세웠죠. 그러나 요즘은 필요없게 됐습니다. 일단 질러야죠. 그러다보면 잘 되는것도 있겠죠.
B경영자: 그러나 무작정 지를수는 없잖아요. 시장이 요구하는 것을 지르기 위해서는 시장 흐름을 먼저 파악해야겠죠.
D컨설턴트: 늘 말씀드리지만 ‘패션은 익숙함과 낯설음의 경계를 타고 가는것’입니다. 지금은 시장이 ‘낯설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낯설음을 어떻게 활용해 ‘매스(Mass)로 지르냐’가 숙제입니다. 결국 소비자들과 감정적 동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라도 ‘매장’에 투자해야 합니다.
A경영자: 지금은 과거 20~30년 동안 익숙했던 것과 결별해야 할 때입니다. 흔히 유통업이나 패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소비자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나와 다른 ‘제3의 존재’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공략해야 할 소비자는 나와 우리 가족, 부모님들이죠.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 가족을 위한 상품을 찾는다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D컨설턴트: 네 맞습니다. 우리 사고방식 관점이 여전히 ‘공급자 중심’이기 때문이었던거죠. 소비자 중심에서 생각한다면 해답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20여년간 해왔던 방식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좀더 싸게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는 과거 방식으로는 ‘낯설음’을 원하는 소비자 감성을 쫓아갈 수 없습니다. 만드는 것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제 때 가져다 팔 수 있는 상품기획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 사회: 요즘 인재상에 대해서도 변화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실전에서 어떤 사람이 필요합니까?
A경영자: 이번 월드컵에서 스페인의 사례를 보면 아무리 우수한 스타군단을 모아도 소용없더군요. 스페인이나 브라질의 1인당 연봉보다 우승한 독일이 휠씬 낮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이겼더라도 연봉은 크게 안 바뀔 뿐더러 더 아이러니 한 것은 독일 선수들도 그에 대해 불만이 낮다는 것입니다. 그냥 자기가 잘 하는 것을 하면서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독일 선수들의 가치관이라는 거죠.
C임원: 이러한 가치관 변화가 우리 사회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자기 자식에게 무조건 좋은 대학, 대기업을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행복의 기준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E경영자: 요즘 실감하는 것은 과거 인재상이었던 ‘멀티 태스커’는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회사의 핵심 인재 가운데 한 명이 상품기획, 영업기획, 마케팅 등을 모두 할수 있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믿음직스러웠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거짓말이었습니다. 결국 최근 그 친구는 회사에서 내보냈습니다.
C임원: 일을 할 때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어렵죠. 멀티 태스킹은 정말 천재라고 인정하는 소수에게서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한가지를 제대로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E경영자: 잘못된 지식이 큰 낭패를 불러올 수도 있고, 경영자를 현혹시킵니다. 과거에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고, 잔재주가 많은 것에 경영자들이 현혹되면서도 표시가 잘 안났지만, 지금은 기업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사회: 그럼 우직한 직원은 어떻습니까?
D컨설턴트: 그건 더 위험하죠. 요즘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제일 위험한데, 우직한 친구가 그 케이스입니다. 역사적으로 볼때도 충신은 망한 왕조에서만 있었죠. 태평성대 충신은 없습니다. 세종 때 황희와 맹사성 사례를 보더라도 조선 500년에서 부정에 대해 가장 투서를 많이 받은 사람이 그들이죠. 그런데 태평성대를 이뤘다는 것은 그렇게 챙기더라도 그의 본분에 충실했기 때문에 나라가 잘 굴러갔다는 것입니다. 우직한 충신이 나라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죠.
A경영자: 결과적으로 요즘 인재를 채용할 때는 일 잘할 사람을 먼저 찾고, 집 안 옮긴 사람은 안됩니다. 더욱이 모든 걸 잘하려는 사람부터 짤라야 합니다.
◇ 사회: 오랜 시간 값진 대화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패션인사이트 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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