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패션기업 MD로 일하고 있는 정상훈(36) 씨는 지난 주말 갑자기 찾아온 한파로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 깜짝 놀랐다. 평소 좋아하던 최범석 디자이너의 패딩 점퍼가 29만원에 팔리고 있었던 것. 더군다나 「컬럼비아」 「갭」 등 세계적인 브랜드에 다운을 납품하는 태평양물산에서 생산해 품질도 보증됐다. 방송 화면을 통해 디테일까지 꼼꼼히 확인한 그는 즉시 휴대폰을 들어 주문 버튼을 눌렀다.
홈쇼핑 패션 부문이 올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묶음 상품, 떨이 판매, 끼워 팔기 등 저가 이미지가 강했던 홈쇼핑은 작년 패션 부문 강화에 돌입, 한층 높아진 전문성과 품질을 바탕으로 올해 폭발적인 성장률을 보였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CJ오쇼핑과 GS홈쇼핑은 올해 각각 전년대비 26.7%와 34%(3/4분기까지) 매출이 증가했다. GS홈쇼핑의 경우 올 3/4분기까지 잡화는 60%, 의류와 속옷은 각각 30%씩 증가했다. 편성 비중도 늘었다. CJ오쇼핑은 현재 패션 부문의 방송 비중이 40%에 달하고, GS홈쇼핑은 2년 새 27.8%가 증가했다.
◇유통? 제조? 新 모델 만들었다
올해 홈쇼핑 패션 부문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데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소비자들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기획 단계부터 홈쇼핑 전문가와 디자이너가 심도 있게 협력하고, 기업 인프라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아웃소싱이 뒷받침되는 등 전 기획 과정의 집중과 분배가 효율적으로 이뤄졌다.
최근 3년간 매 시즌 20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인 CJ오쇼핑은 패션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본격적인 빛을 발했다. 장민영 디자이너, 한혜연 스타일리스트와의 협업 브랜드 「엣지」는 한 시간만에 6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는 저력을 보였다. 이어 CJ오쇼핑은 지난 9월 패션 문화사업을 추진하며 장 디자이너와 함께 여성복 브랜드 「드민」을 론칭, 자사에서만 판매하는 PB의 개념을 넘어 타 채널로 유통을 확대하는 등 기존 관행을 과감히 깼다. 또한 디자이너와의 공동 개발 브랜드의 성장은 가히 폭발적이다. CJ오쇼핑은 현재 최범석, 최지형, 고태용, 크리스 한, 박승건 등 총 7명의 디자이너와 제휴하고 있다.
이달 2일 방송한 최범석 디자이너의 「제너럴아이디어 클래스 5는」 다운 점퍼는 35분 동안 1400장 판매, 3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또 지난 1일 박승건 디자이너의 「푸시앤건」은 20분만에 4억원(2500장), 최지형 디자이너의 「더쟈니러브」는 25분간 5억 5000만원(4000장), 크리스 한의 「코발트 바이 크리스 한」은 30분만에 7억원(3800장)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루 만에 세 명의 디자이너가 16억 5000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이렇듯 주말 이틀간 CJ오쇼핑과 제휴한 디자이너 7명이 올린 매출은 약 20억원. 연간 매출로 계산하면 백화점 매장 70여 개를 가진 중형 여성복 브랜드와 맞먹는 수준이다.
GS홈쇼핑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론칭한 손정완 디자이너와의 협업 브랜드 「SJ.WANI」는 전 색상, 전 사이즈 완판, 총 1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강동준 디자이너와 협업한 「쏘울」은 하루 만에 매출 11억원(8300장)을 올렸다. 최근 두 차례에 걸쳐 방송한 「칼 이석태X로보」는 39만 8000원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16분 만에 1600벌, 37분만에 1800벌이 팔리며 ‘완판 행진’을 이어갔다.
◇소비자들, 왜 홈쇼핑으로 몰리나?
소비자들이 올해 홈쇼핑으로 몰린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먼저 경기 침체로 소비가 위축된 것이 홈쇼핑엔 오히려 기회로 다가왔다. 백화점 소비를 줄인 소비자들은 최근 불어든 한파에 집에서 편하게 쇼핑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덜 한 홈쇼핑으로 눈을 돌렸다. 여기에 홈쇼핑 업체들이 주요 시간대에 배치한 프로그램은 재미 요소까지 강화돼 매출, 시청률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시너지 효과를 냈다. 실제 2009년 CJ오쇼핑이 정윤기 스타일리스트와 손 잡고 편성한 셀렙샵은 올해 70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20배 이상 성장했다. 특히 정윤기 스타일리스트의 재치와 스타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어우러져 20대 시청자 층이 크게 늘었다. 3년간 누적 매출 1300억원을 올린 셀렙샵은 지난달 특집 방송에서도 매출 38억원, 분당 매출액 역대 최고치인 6000만원을 기록했다.
홈쇼핑의 패션 수준이 높아진 것도 주효했다. 홈쇼핑 업체들은 소비자들의 높은 안목에 발 맞춰 판매 가격이 소폭 상승하더라도 품질을 높이는 방법을 택했다.
저가상품, 묶음판매 등의 비중이 높았던 홈쇼핑 에서 유명 디자이너 상품을 적절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반응이 높았다. 이 과정에서 20~30대 젊은 소비자들의 유입도 대폭 늘었다.
CJ오쇼핑이 기획한 디자이너 최범석의 패딩은 국내 최고 수준의 생산업체인 태평양물산에서 제작했고, GS홈쇼핑의 PB 「쏘울」은 「프라다」 「샤넬」 「루이비통」 등 세계 유수 브랜드에 납품하는 이탈리아 원사 ‘Tollegno LANAG ATTO’를 사용한다. 홈쇼핑 패션 상품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젊은 소비자 유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CJ오쇼핑 강형주 사업부장은 “홈쇼핑 패션 부문을 강화하며 확대한 디자이너 협업 등의 차별화 브랜드가 올 매출을 견인했다. 내년에는 차별화 브랜드 비중을 25~30%까지 늘리고, 패션 부문에서 300억원 매출을 목표로 트렌디 브랜드 육성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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