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은 늘 사회적 변화과 대중들의 라이프스타일과 함께 진화해 왔다. 특히 20세기 패션 100년은 이전 1,900년에 걸친 패션사와 맞먹을 정도의 혁신적인 변화와 위업을 이룩했다. 바로 패션의 민주화가 그것이다. 귀족과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패션의 산업화와 대중화는 패션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맞춤복과 고급 기성복이 주도했던 20세기를 지나 하이스트리트라 불리는 ‘매스밸류’ 브랜드들이 위세를 떨치는 21세기 세계 패션은 진정한 패션 민주화의 길목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100년간의 20세기 패션사는 한마디로 패션의 점진적 민주화 과정이었다. 이전 세기까지 귀족이나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패션은 20세기에 들어 일반인들의 주요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패션의 대중화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세기 초 고급 맞춤점을 뜻하는 오뜨꾸뛰르에서 출발한 명품 하우스들은 패션이 점점 캐주얼화·대중화되면서 소수의 상류층을 위한 옷만으로는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고급 기성복을 뜻하는 쁘레따뽀르떼를 통해 전 세계에 의류, 향수, 화장품 등 토털 브랜드를 선보이며 세계 패션을 주도했다.
하지만 세기말과 밀레니엄을 지나 21세기 들어서자 ‘오뜨꾸뛰르의 종말’과 ‘고급 기성복의 가격 버블 현상’은 현실화되었고, 여기에 「H&M」과 「자라」와 같은 하이스트리트 브랜드들이 패션의 중심인 파리와 뉴욕의 패션 거리에 대형 가두매장을 열면서 세계 패션은 지각 변동과 주류 교체를 예고하고 있다.
20세기의 패션 민주화 운동
1950년대를 흔히 1차 패션 민주화 시대라 부른다. 1950년대에는 모든 사회 계층과 연령대를 망라해 패션이 과거 어느 때보다 삶의 중요한 관심사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터득한 군수 산업의 대량생산 노하우는 대중들의 마음에 드는 옷들을 대량으로 시장에 내놓게 했고, 백화점은 고급 부티크의 대안 유통으로 패션 리테일러들에게 각인되었다. 특히 제조방법이 개선되고 새로운 합성섬유가 등장하자 유행하는 옷과 액세서리의 가격이 낮아져 소득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패션을 접할 수 있었다. 여기에 생산성 증가, 저렴한 합성섬유, 지역을 초월하는 상품 교환은 빠른 유행 사이클을 만들었다.
1960년대 들어 패션산업 발전은 귀족 세력도 상류층도 아닌 바로 청소년들의 몫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이 하향 평준화된 1960년대를 흔히 2차 패션 민주화 시대로 부른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는 반전 평화운동이 일어났고 기존 권위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이 확산되면서 저항의 표현으로 히피 패션이 유행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종아리를 드러내는 치마 길이가 논란이 되고 여성이 바지를 입거나 짧은 머리를 하는 것이 격렬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미니 스커트와 핫팬츠가 거리를 휩쓸었고 이젠 저항의 의미를 넘어 단순한 유행 상품으로 변모했다.
「H&M」 오리지널(?) 브랜드와 손잡다
작년 연말 세계 패션계는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H&M(Hennes & Mauritz)」의 의기투합에 경악했다. 한정품으로 만든 라거펠트의 「H&M」 리미티드 컬렉션은 매장에 출시되자마자 장사진을 치고 있던 소비자들이 마네킹에 입혀진 옷까지 벗겨내 가져갈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여 1시간 만에 제품의 전 아이템이 매진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여성들은 탈의실에 들어갈 시간도 아까워 속옷 차림으로 그냥 옷을 입어보는 진풍경을 연출했고, 디자인과 사이즈를 따질 틈도 없이 다른 사람이 집어갈까 봐 아무 아이템이나 잡고 놓지 못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이는 여성 소비자들이 얼마나 ‘럭셔리 디자이너의 감성’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H&M」은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특히 「샤넬」)의 디자인을 카피, 값싸게 제공하는 콘셉트로 성공을 거둬온 브랜드로,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인 라거펠트와 손을 잡은 사실 자체만으로 쇼킹한 뉴스였다. 결국 「H&M」이 얻은 교훈은, 소비자들은 가격 때문에 「H&M」의 카피 디자인을 구매할 뿐 톱 디자이너에 대한 짝사랑은 불변이라는 사실이었다.
한편 라거펠트의 「H&M」 리미티드 컬렉션은 라거펠트의 캐릭터가 들어간 19.90달러 티셔츠를 비롯 49달러 블라우스, 149달러 울 캐시미어 오버코트 등을 선보였는데 전 세계 매장에서 단 1시간 만에 품절되었고, 덕분에「H&M」
유재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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