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상권 점주들, 무리한 요구 힘들다
입점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상권은 ‘5대 상권’이라 일컬어지는 명동과 동성로, 광복동, 충장로, 은행동.
유동인구가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코엑스 몰을 둘러싼 캐주얼 브랜드들의 입점 경쟁도 최근 급부상하고 있으며 청주, 부평, 원주, 전주 등도 캐주얼 브랜드들이 선호하고 있는 상권으로 나타났다.
「월튼」 이기현 영업부장은 “가두 상권을 둘러싼 신경전이 날이 다르게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경쟁이 치열한 것 같다”고 말했다.
5년간 캐주얼 브랜드의 대리점 영업을 맡아 온 한 담당자는 “체감 경기가 바닥을 치고 매출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지금 점주들은 의류 장사에는 흥미를 잃은 것 같다. 대신 마진 보장, 인테리어 지원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어차피 장사가 안 되니까 6개월에서 1년은 안전하게 넘기고 보겠다는 것”이라며 “대리점 영업을 몇 년째 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위험 부담은 본사에서 지고 돈은 자기가 벌겠다는 태도가 얄밉기도 하다”고 말했다.
신규 브랜드들의 경우 어려움은 더욱 커지게 마련. 매시즌 신규 브랜드들은 매장을 얻기 위해 유력 백화점 입점 경쟁을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쟁전을 벌이고 있다.
올 가을 런칭한 예신퍼슨스(대표 박상돈)의 「니퍼」는 「마루」 「노튼」 「스멕스」 등 스타 브랜드의 후광 덕분에 유통 전개가 순조로울 것으로 예상했으나 뜻밖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 브랜드 영업부의 강진영 차장은 “10여개의 리뉴얼 브랜드들과 신규 브랜드들이 서로 매장을 확보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보니 상거래 질서가 많이 무너진 상태다. 일부 핵심상권에서는 점주들이 대 놓고 인테리어 지원과 마진 보장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올 봄 출시한 GSGM(대표 이진순)의 「라이츠」는 명동, 동성로, 은행동 등 주요 상권 입점을 포기했다. 인테리어 지원은 기본이고 1억원에 가까운 매출 보장, 통마진 40% 등 막무가내 식의 요구조건을 도저히 맞출 수 없었기 때문.
「라이츠」 이재원 이사는 “주요 상권에 무리하게 들어가느니 다소 작은 상권이라 하더라도 효율을 낼 수 있는 상권에 매장을 열어 인지도를 높인 다음 차근차근 볼륨화 시키겠다”고 말했다.
기존 브랜드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기존 브랜드 관계자들은 “인테리어 전액 지원, 마진 보장 등의 터무니없는 조건에 점주들이 쉽게 마음을 돌리고 있어 불안하다. 마음 놓고 긴장을 풀고 있는 사이 믿고 있던 매장을 뺏긴 적도 있다”고 말했다.
엠케이트렌드(대표 김상택)의 「티비제이」는 대리점으로 운영하던 명동 매장을 철수하고 곧 직영 매장을 오픈할 예정이다. 자리가 조금 빠지더라도 안정적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에서다.
인테리어 비용, 홍보 비용까지… 빠듯하다
점주들도 불만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점주들은 인테리어 변경, TV-CF방영에 따르는 비용을 점주에게 떠 안기는 본사의 일방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심 상권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A점주는 “요즘같이 장사가 안 될 때는 일년도 못 가 컨셉을 변경하고 인테리어를 바꾼다. 웬만한 상권의 30평대 매장도 1억원의 수익을 내려면 6개월은 장사해야 하는데 1년에 한두 번은 인테리어를 바꾸니 까놓고 보면 남는 게 없다.
매출 부진의 원인은 본사에도 있을 텐데 책임은 모두 점주가 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중소 도시에서 이지 캐주얼 브랜드 매장을 운영중인 B점주는 “얼마 전 본사에서 텔레비전 광고를 진행하겠다며 그에 따른 비용을 걷어갔다.
본사는 이것저것 일만 벌이고 뒷수습은 모두 점주들이 하는 것 같아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7년째 의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수원의 점주는 “예전에는 점주와 본사가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도왔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관계 유지보다도 서로의 이해타산을 따지는 삭막한 관계로 변질된 것 같다. 본사도 본사대로 고충이 많겠지만 점주 입장에서 볼 때는 추가 발생 비용은 모두 점주에게 전가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업계 관계자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바라볼 때 무리한 조건이 운영비용을 증가시키고 결국 브랜드가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브랜드 전개에 있어서 유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중저가 캐주얼 같은 저관여(低關與) 상품은 목적구매보다는 충동구매의 비중이 많은 데다가 상품의 컨셉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케팅이나 유통의 중요도는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A급 상권의 입점 여부는 업체의 투자능력과 의지를 대변해 주는 대표지수로 여겨지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매장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안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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