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이 패션 기업과 패션 브랜드들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크리스에프앤씨(대표 우진석)는 최근 코스닥 상장사인 IT기업 필링크로 63%의 지분을 1725억원에 매각해 패션업계를 놀라게 했다. 크리스에프앤씨는 ‘핑’ ’팬텀’ ’잭앤질’ ’파리게이츠’ ’파리게이츠 캐주얼’ ’고커’ 등 골프웨어부터 캐주얼, 골프용품까지 6개 브랜드를 전개하며 매년 20% 이상의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던 중 기업 매각을 택했다.
시장에서는 크리스에프앤씨가 적지 않은 기간 기업공개를 추진해 왔고, 인수자인 필링크의 외형이 크지 않으며, 우진석 대표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조직 변화도 없다는 점에서 크리스가 우회 상장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재무구조, 브랜드 별 체질, 시장에서의 위치 등을 종합해 볼 때 지금이 최고의 몸값을 받을 수 있는 매각의 적기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자본시장에서도 통한 경영능력을 보여준 우 대표 개인에 대해서도 패션사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규 사업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선글라스 ’젠틀몬스터’를 전개하고 있는 스눕바이(대표 김한국)는 글로벌 패션 명가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계열의 투자회사와 1000억 대 투자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혀 업계를 놀래 켰다.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가치를 1조로 평가한 이 펀딩이 성사되면 LVMH 그룹 운용 펀드를 받는 국내 세 번째 사례가 되고 이전에 YG엔터테인먼트가 유치한 820억 원보다 큰 규모다.
스눕바이는 또 LVMH뿐만 아니라 ‘젠틀몬스터’의 브랜드 가치를 6천억 원으로 평가한 중국의 한 투자기업과도 600억 원 안팎의 펀딩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다 보니 당초 내년으로 예상됐던 기업공개 일정도 당겨졌다. 최근 미래에셋대우를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고 이르면 상반기 중 코스피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이 패션 기업과 패션 브랜드들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
◇ 금융자본, ’혁신’과 ‘성장가능성’에 투자
자본은 수익률과 성장성을 따라 자연스럽게 흐르기 마련이다. 크리스에프앤씨나 스눕바이 사례 외에도 현재 패션업계 안에서 일어나는 활발한 기업공개 움직임과 펀드의 유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패션산업 저 성장기라고 말하는 지금, 금융 자본이 보는 패션 사업은 어떻게 돈 되는 사업이 된 것 일까.
국내외 투자은행부터 사모펀드까지, 금융 자본이 투자를 결정하는 최우선 기준은 ‘미래가치’다. 규모보다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면을 높이 평가해 성장성을 보고 투자를 진행한다. 지난해에 매출액 1500억 원,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30% 늘어난 460억 원을 기록한 ‘젠틀몬스터’의 경우도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 더불어 카테고리 확장성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독창적인 콘텐츠로 웹과 모바일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마케팅과 세일즈를 진행해 글로벌 브랜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내수사업 베이스가 우선 고려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섬에 이어 SK네트웍스까지 손에 넣은 현대도 패션전문기업의 인수를 통해 핵심 전략 역시 자사 유통 인프라와 인수기업의 콘텐츠 결합, 시너지를 내는 비즈니스 모델의 확장성이다.
이화영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지속 성장을 위해 필요한 신규 브랜드 빌딩 능력, 기존 브랜드 관리 능력 보유 여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패션은 뷰티, 리빙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 가능한 베이스 콘텐츠”라고 말했다.
◇ 스몰 콘텐츠, 스몰 펀딩 주목
자본시장이 ‘혁신적이고 확장 가능한 콘텐츠’를 찾아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패션시장에서 톡톡 튀는 스몰 콘텐츠, 청년 기업가와의 조인 사례가 늘고 있다.
영상제작 분야에서는 이미 낯설지 않은 클라우드 펀딩, 한세실업과 ‘플러스마이너스제로’ 론칭에서 보았던 엔젤펀딩, 여기에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나 청년 창업가들의 온, 오프라인 유통 또는 마케팅 플랫폼에 투자하는 스몰 펀딩이 주목 받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올 해 출범한 ‘스몰에스에프디에프(small SFDF)’가 대표적인 예다.
삼성은 기존에 삼성패션디자인펀드가 SFDF를 통해 글로벌 활동 기반의 디자이너를 모집해왔던 것과 달리, 국내를 기반으로 한 디자이너 브랜드를 대상으로 하며, 범위 역시 의류에서 가방ㆍ슈즈ㆍ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대 적용된다. 한화S&C 드림플러스가 추진하는 ‘101글로벌’ 프로젝트, 네이버의 ‘디자이너 윈도’ 등은 잘 알려진 사례다.
우선 스몰 펀딩은 온라인 패션 시장을 중심으로 투자와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다. 회사 설립 초기부터 체계적 지원과 투자 유치에 성공한 온라인 맞춤 셔츠 ‘스트라입스’나 29CM, 온라인 패션유통 플랫폼 브리치에 이어 봉제 프로모션으로 출발해 온라인 브랜드를 론칭한 SYJ는 최근 한국투자파트너스로부터 30억 규모 펀딩을 받았다.
성장성과 함께 기업공개를 준비하고 있는 패션기업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필요충분조건은 경영 투명성 확보다. 그런 의미에서 알짜브랜드로 꼽히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던하우스’ 매각에 나선 이랜드의 행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모던하우스’는 50여 개 매장에서 지난해 3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외형과 성장성을 보았을 때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랜드월드, 이랜드파크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해 매각작업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금융관계자들의 중론. 이랜드 전 임원은 “이랜드의 기업공개 일정연기와 신용등급 하락 원인은 현금 유동성 문제가 가장 크다”면서도 “신비주의 경영, 임금체불로 도덕성에 직격탄을 맞은 것도 저평가의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채연 기자
leecy@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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