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첨단패션산업’에 투자하라
2006-09-01김태수 편집이사 

최근 모 교수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국립대학에 재직 중인 관계로 정부당국자와 접촉이 여러 차례 있었고 또 여러 가지 지원요청을 했으나 당국자들이 패션섬유산업을 사양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산업분야 예산이 매년 줄어들고 있고 정부의 대책도 매우 미온적이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정부당국이 섬유패션 부문이 사양산업이라고 인식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1970~80년대 경제성장을 주도하던 정도의 비중에서 산업이 다변화하고 IT 등 새로운 성장 주도산업이 등장하면서 섬유패션산업의 위상이 추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섬유패션산업이 노동력중심산업으로 강하게 인식된 가운데 원부자재 생산은 물론 제조 생산소싱의 중심이 중국 등 주변국으로 옮겨가면서 생산관련 섬유패션산업 공동화가 가속화되기 때문일 것이다.

셋째는 섬유패션산업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유통서비스 쪽을 보더라도 그 역사가 짧고 디자인력이 일천하여 우리는 국제화된 글로벌 브랜드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고 있고, 또 패션 선진국의 브랜드력을 좇아가는 것이 요원할 것이라는 비관론 때문일 것이다.

그 외에도 산자부와 정부 요직에 섬유패션에 대해 제대로 아는 관리가 없고 섬유패션산업 관련 교수들도 디자인, 소재, 복식사 등 비정책적인 분야의 전공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정부정책에 충분히 개입하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섬유패션산업 종사 사업주 중 성공한 기업가들 상당수는 사업의 중심을 다른 산업으로 옮겨갔고 현재 섬유패션산업 종사를 계속하고 있는 기업주들도 대부분 자수성가형으로 정부정책을 조직적으로 활용하는 데 익숙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우리의 섬유패션산업은 적어도 앞으로 100년 이상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국부창출 산업이 될 것이다. 필자는 그 근거로 다음 몇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는 섬유패션산업이 최첨단산업이며 선진국형 산업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섬유패션 선진국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 일본 등 모두 선진국들이다. 우리는 올해 미국 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세계 100대 브랜드에 삼성과 현대자동차, LG 등 세 개의 브랜드를 겨우 올려놓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루이뷔통, 샤넬, 로레알 등 세계적 패션 브랜드가 10여 개나 포진하고 있어 패션산업의 미래성을 증명하고 있다.

둘째는 섬유패션산업이 한국인의 적성에 맞고 한국에서 현재 급성장하고 있는 산업이라는 점이다. 정부당국자들은 섬유패션산업을 봉제산업과 동일시하는 착각을 하고 있다. 사양화되고 있는 봉제산업은 패션산업의 한 부분일 뿐이며 우리의 근대적 섬유패션 역사는 불과 20여 년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이미 세계 ‘5대 패션강국’을 들먹일 정도로 급성장했다. 한국인들은 멋을 중시하는 선비문화와 사계절의 기후 때문에 세계에서 옷을 가장 잘 입는 민족이고 이것은 인구비례로 볼 때 엄청난 소비시장을 제공하고 있다. 소비는 곧 산업을 부흥시키는 원동력이며 한국인의 급한 성격과 섬세성, 그리고 근면성은 섬유패션산업의 빠른 변화를 주도할 수 있으며 고도의 디자인력을 발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우리의 성장세대는 엄청난 인재풀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매년 대학에서 디자인과 미술, 섬유공학 등 섬유패션 관련 인력을 3만5천 명씩이나 배출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최대 규모다. 지금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미술 분야 지망생 중에는 디자인 지원자가 압도적이다. 이것이 바탕이 되어서 핸드폰 등 산업디자인에서 우리가 세계를 리드하기 시작했고, 이제 섬유패션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것이다.

우리가 선진국들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알았던 첨단전자산업인 핸드폰으로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부자놀음인 여자 골프가 미국을 흔들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