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시장의 윤리 의식 실종
2006-08-31정인기 기자  ingi@fi.co.kr

최근 한 프로모션업체는 거래중인 A 패션기업으로부터 4천여 만원을 송금 받았다고 한다. ‘이 돈이 뭐냐’는 말에 해당 기업은 상반기 어음 할인 수수료라고 했다고 한다. A 기업은 연매출 3천만원 이상의 대기업군에 속하기 때문에 어음을 지급했을 때는 어음 할인율 만큼 보상해줘야 한다는 공정거래법을 지키기 위해 지급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프로모션업체 사장은 ‘그래도 이 기업은 양심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날 A 기업 자금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는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법망을 피하기 위해 보낸 것이니 다시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평소 A 기업은 국내 대표적인 패션기업으로서 괜찮은 기업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회사의 미래를 생각했다고 한다.

또 다른 프로모션업체는 최근 B 패션기업으로부터 납품한 여름 상품 가운데 70%를 클레임 처리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납품 때는 전혀 말이 없었는데, 판매율이 30%에 그치자 나머지 상품에 대해 클레임 처리하겠다는 것이었다. 납품 전에 B기업 검사원들이 와서 합격시킨 제품이었지만, 납품 후 2달 만에 클레임 통보를 받은 것이었다.

국내 대표적인 할인점을 운영중인 C 업체는 최근 해외에서 생산한 제품에 대해 현지 공장에서 점포별 물량을 분류해서 국내 90여 개 점포에 직접 배송하고 있다. 이 업체와 거래중인 한 생산업체 사장은 결제대금에서 배송비와 보안택 비용이 제외된 것을 알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배송업체는 C 업체의 계열사이고, 보안택은 유통업체가 판매시 보안을 위해 부착하는데, 왜 그 비용까지 생산업체에게 부담하느냐는 것이 그 사장의 말이었다. 협력업체와 밥 먹을 때 밥값 계산에는 기업윤리를 들먹이면서, 거래 관행에는 원칙이 없다는 것이 그 사장의 푸념이었다.

한 캐주얼 생산업체는 지난해 D 패션기업과 거래하면서 A/S비용만 1억원 이상을 지불했다고 한다. D 기업은 ‘고객만족’을 최고의 덕목으로 강조함에 따라 고객 클레임은 1년이 지난 옷까지도 바꿔준다는 말을 광고하고 있다. 그러나 1년에 1억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생산업체는 적은 부담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불량품이라면 감수하겠지만, 요즘처럼 까다로운 고객의 행패를 무조건 생산업체에 떠넘기는 브랜드가 ‘고객만족’을 외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 업체는 소비자가의 60%에 클레임 처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생산업체가 납품가보다 더 비싼 가격에 재구매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근 국내 패션시장에는 글로벌 브랜드의 진출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유니클로」와 「망고」 「에스프리」 등은 이미 진출했고, 「자라」와 「H&M」도 진출을 앞두고 있다. 결국 이제 국내 패션업체는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와 직접 싸워야 하는 무한 경쟁시대로 접어들게 됐다.

글로벌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마케팅력과 상품기획력, 소싱력 등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무엇보다 제품 소싱 부문이다.

패션은 산업 특성상 경쟁력 있는 협력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나만 살겠다는 이기주의 보다는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관계 구축이 절실하다. 아직도 ‘갑-을’ 논리로 일방적으로 요구하다가는 실력 있는 소싱 업체들로부터 외면당할뿐더러 미래도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한 소재업체 사장은 “「H&M」의 경쟁력은 첫 번째도 도덕성이고, 두 번째도 도덕성이다. 소비자에게 충성하기 위해서 본사 경영진들부터 모범을 보이고 있으며, 이 회사와 거래하는 입장에선 어떤 소재를 공급해야 「H&M」이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것 외에는 신경 써 본적이 없다”며, “한국 패션업체들도 경쟁력 있는 소싱 업체들이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업무 시스템을 만들고 내부 직원들의 실력을 키워야만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바로 경영자와 실무자들이 갖춰야 할 도덕적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이 업체는 「H&M」에 연간 300억원 어치 소재를 직거래 하는 것을 비롯 「자라」 「망고 「막스앤스펜서」 「타겟」 등에 연간 1천억원의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