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나’의 발렌시아가가 특별한 이유

2024-03-28 홍석우 yourboyhood@gmail.com

홍석우의 Style 인사이트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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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나(T매거진, photo by Suzanne Koller)



‘입는’ 옷과 ‘좋아하는’ 옷 혹은 패션 디자이너가 항상 바뀌곤 했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의 베트멍(Vetements)이 (소위) 패션계를 폭격하던 시기, 나는 패션위크가 한창이던 2016년 가을 어느 날의 파리에 있었고, 그때 실제로 본 뎀나의 영향력은 거대했다. 이후 그가 바꾼 발렌시아가(Bale nciaga)는 첫 번째 컬렉션부터 좋아했으나, 입는 옷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의 발렌시아가는 다양한 요소가 혼재하고 있다. 과학적인 쿠튀르 하우스에서 출발한 브랜드의 근간부터 거리 문화, 제3세계 청년들, (소송당하는 거 아닌가 싶은) 온갖 패러디와 혼합 그리고 과거 특정한 시대를 상징하는 요소들이 현재와 만나서 근미래의 룩과 스타일을 이루는 감각까지. 조금 더 깊숙이 옷이나 컬렉션을 들여다보면, 브랜드의 이름이자 설립자이기도 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obal Balenciaga)의 유산을 밀도 있게 연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재단하여 선보인다는 걸 알게 된다.


킴 카다시안이나 예(Ye)같은 유명인의 필터를 거두고 룩과 옷을 보면, 평생 입을 일은 없을 쿠튀르 컬렉션이나 매장에 걸린 기성복 컬렉션에도 그러한 흔적은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 고정적이며 충성스러운 럭셔리


퍼렐(Pharrell)의 새로운 컬렉션이 어떻게 매장에 걸렸는지 궁금해 루이비통(Louis Vuitton) 매장에 갔다. 참새가 방앗간을 거르지 않는 것처럼 발렌시아가 매장에도 들렀다. 퍼렐의 루이비통 남성복 데뷔 컬렉션에 관해서는 서울패션라디오(Seoul Fashio Radio)와 <패션 인사이트>에 쓴 글에 아주 큰 호평을 남겼는데, 그가 이뤄내는 실시간의 성취나 영향력은 실로 거대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몇 차례의 컬렉션이 지나는 과정을 보며, 역시 퍼렐은 버질 아블로(Virgil Abloh)와는 많은 것이 다른 사람이구나, 깨닫는다.


프로듀서이자 음악가이자 전방위에 영향을 끼치는 시대의 아이콘 혹은 예술가로서, 그는 각기 떨어져 있는 게 정상으로 보이는 것을 뒤섞어 새로운 ‘럭셔리(luxury)’로 치환하는 아이디어, 혹은 재창조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세계 최고의 수준에 올라와 있다(물론 그를 보좌하는 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이 매장에 온전히 안착하는가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버질 아블로 시절의 루이비통 매장은 (예나 지금이나) 수십,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무언가를 팔고 있었지만, 그곳에는 다양성을 향한 알 듯 모를듯한 상징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오랜만에 방문한 루이비통 매장은?브랜드가 가장 열심히 결과를 보여주는 플래그십 매장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 규모와 위치의 브랜드는 대체로 동일한 DNA를 이식하므로?친절한 직원들과 꽤 많은 손님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으나, 고급 사치품으로서 루이비통의 가치만이 꽤 많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곳은 (적어도 손님들에게는) 안락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라운지 같았지만, 버질이 이룩한 어떠한 ‘정신’의 요소들은 조금씩 사라지는 것 아닌가 싶었다.


공식적으로 첫 번째 ‘퍼렐 루이비통’ 캠페인에 모습을 드러낸 ‘킹(King)’ 르브론 제임스는 누가 보아도 루이비통의 지금과 어울리는 남성이지만, 내 추측 혹은 의견으로 만약 버질이었다면, 현존하는 최고의 농구 스타를 브랜드의 아이콘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랩 스타들, 고정적이며 충성스러운 기성 VIP들이 아니면 사실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없어 보인다고나 할까.
루이비통을 비롯하여 역시 흠모하여 마지않은 패션 디자이너 킴 존스(Kim Jones)나 최근의 버버리(Bur berry),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심지어 에디 슬리먼(Hedi Slimane)의 셀린(Celine)이나 이 모든 디자이너들이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한?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까지 다양한 브랜드의 매장에 들어갔을 때, 거기서 본 옷들 그리고 느낀 경험들이 어떠한 실체가 없는 사치와 우아함의 극치에 정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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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 홀리데이 패키지, 2023AW



◇ 다른 패션 하우스와 다른 시선


뎀나의 발렌시아가는 어느 정도 의도한 대로, 그를 좋아하고 발렌시아가를 옹호하는 고객들이 소위 로고 플레이로 부르는 의상에 집착하는 경향을 받지만, 반대로 내가 뎀나의 발렌시아가에 좋아하는 부분은 뜻밖에도 비슷한 경계의 다른 브랜드들이 시도하지 않는 무언가였다.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T 매거진>의 긴 밀착 취재 기사에서 닉 하라미스(Nick Haramis)는 뎀나의 창작에 관해 이렇게 표현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나 풍경에서 영감을 받는 반면, 그는 산업적이고 소박하며 일상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뎀나는 본인의 의견을 덧붙인다.


“나는 럭셔리가 항상 당신이 부자라는 점을 전달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I don’t like that luxury is always intended to communicate that you’re rich).” 나는 이러한 지점, 즉 실제로는 사치의 영역에 존재하나, 사치품으로 보이지 않는 시도와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뎀나의 발렌시아가’와 다른 패션 하우스 브랜드들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취향이 고급이라는 것을 애써 강조하거나, 은연 중에 주입하는 다른 모든 브랜드와 서 있는 지점이 어쩐지 다른 기분이 든다.


◇ 뎀나의 럭셔리


모든 패션은 과거에서 온다. 그것을 새롭게 보이기 위하여, 패션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리고 그들의 모든 팀은 끊임없는 재해석을 거친다.


때로는 독특함, 평범함, 아름다움, 귀여움 같은 긍정의 요소를 담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특정 문화를 거칠고 껄끄럽게 반영하거나 깊게 바라보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교묘히 숨기기도 한다.


럭셔리 패션의 기반은 (누군가 부정하더라도) 과도한 소비와 그를 동반한 문화에서 온다. 다수의 사람들은 드러내고 과시하며, 이 문화의 일원으로 여기기를 원한다. 그러나 추측하건대, 뎀나는 ‘럭셔리’라는 단어, 혹은 패션 하우스가 뿌려대는 수없이 반복되고 서서히 늘어나기만 할 뿐인 가격표의 당위성을 어느 정도 부정하는 듯한 디자인을 한다.


휑한 콘크리트 매장에 툭 하고 걸린 옷들은 누군가 보기에는 값싸 보이는 룩을 비싸게 팔기 위한 ‘쿨(cool)’의 정서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지금 가장 자신을 드러내기 좋은 넉넉한 사이즈의 향연일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시스템의 하나가 되었으면서도, 어느 정도 안티 패션(anti-fashion) 혹은 반주류의 정신을 꼿꼿이 유지하고 있는 정서의 집합체일 것이다. 이 모든 의견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비로소 입는 옷과 좋아하는 옷이 어느 정도 일치하게 되었다. 마크 주커버그나 스티브 잡스의 (그 유명한) 하나의 옷들로 이루어진 옷장 일화처럼, 내게 지금 뎀나가 만드는 발렌시아가는 조금은 그런 의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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