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2023-09-04 유재부 패션 에디터 UB@fi.co.kr

참을 수 없는 카피의 가벼움, H&M vs 쉬인의 패스트패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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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이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쉬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누워서 침 뱉기'일까? 비평가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중국 최대의 ‘울트라 패스트 패션’ 플랫폼 쉬인(Shein)이 각국에서 ‘디자인 베끼기’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24년 미국 시장에서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중간 정치, 무역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쉬인의 미국 진출이 지적재산권을 비롯해 다양한 논란의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쉬인은 지난 2008년 설립된 울트라 패스트패션 온라인 쇼핑 플랫폼으로, 10여년 전 자라, H&M 등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주도하는 시장에 끼어들어 큰 폭으로 성장했다. 작년 연간 매출이 100억달러(약 11조원)에 달한다. 8년 연속 매출 100%를 초과 달성하는 기록을 쓰고 있다. 이 기업은 130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평가받는다.


성장세가 빠른 만큼 논란도 크다. 특히 이같은 쉬인의 급성장 배경에는 중국 업체 특유의 디자인 베끼기가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크고 작은 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쉬인의 성공엔 치밀하게 계산된 베끼기가 있었다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패스트패션 경쟁사인 스웨덴의 SPA 기업 'H&M'이 '쉬인'을 상대로 한 소송이 주목받고 있다. 2021년 홍콩에서 쉬인의 모기업 조탑 비즈니스 그룹(Zoetop Business Group)과 쉬인 그룹을 상대로 H&M이 처음 제기한 지식재산권(IP) 침해 소송에서 H&M은 쉬인이 자신들의 디자인을 여러 차례 베꼈다고 주장하고 있다. H&M이 제출한 금지 가처분 신청서에는 "두 제품 간에 현저한 유사성이 있으며, 이는 복제품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라고 적혀 있다.


<WWD> 보도에 따르면, H&M 측은 "홍콩에서 쉬인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진행 중인 것은 맞다."라고 밝혔다. 이어 H&M은 "우리는 여러 사례에서 쉬인이 우리의 디자인을 침해했다고 확신하고 있어서 이 소송을 제기했다. 아직 진행 중인 사건이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쉬인은 진행 중인 소송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3년간 최소 50건에 달했던 미국내 쉬인을 상대로 제기된 상표권 침해나 디자인 표절 소송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쉬인은 '다가오는 환경 재앙', '비윤리적인 노동 및 공장 환경', '인플루언서 가짜 공장 견학 초대' 등과 같은 이슈로 전 세계인들의 입방아에 올랐으며 미국 비평가들로부터는 '들어본 적 없는 가장 큰 국가 안보 위협'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패션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평가들에 따르면, H&M이 중국의 거대 전자상거래 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이번 소송은 '사돈 남 말하기' 혹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와 같은 개념이라고 비판한다.


미국의 인스타그램 패션 평론가 다이어트 프라다(Diet Prada)는 지난 7월 "언제부터 H&M이 타사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에 신경을 썼나? 패스트 패션 소매업체로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디자이너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부터 본격적인 모조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왔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지난 2004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브랜드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는 '샤넬'의 디자인을 그대로 카피하고 있었던 스웨덴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 H&M과 손잡고 리미티드 컬렉션을 출시해 1시간 만에 전 세계 매장에서 매진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당시 선보인 샤넬의 시그너처 아이템 블랙 미니 드레스의 가격은 상징적인 99.99달러였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여성들은 짝퉁이지만 샤넬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날 수 있었다. 이후 패스트 패션의 디자이너 브랜드와 럭셔리 제품 베끼기는 모험이 아닌 상술이 되었다.


당시 라거펠트는 H&M과 함께 리미티드 컬렉션 출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사람들은 항상 레스토랑에서 외식하지 않는다. 때로는 바쁜 도시 생활 때문에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옷을 만들어 보았고, H&M과 함께 내 생애 가장 싼 옷도 만들어 보았다. 바야흐로 패션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이제 여성들은 자신의 (경제) 수준에 맞는 소비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 옷이 카피 된다는 것은 내 디자인이 일반 여성들에게 유행하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개의치 않는다"라며 생전의 코코 샤넬과 같은 발언을 했다. 이는 카피를 허용하는 듯한 발언으로 진짜와 짝퉁의 구별을 소비자들의 판단에 맡긴 셈이다.


중국 소셜 미디어에서 네티즌들은 H&M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베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이 소송이 다소 복잡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중국 소셜 미디어 기반 쇼핑 플랫폼 샤오홍슈의 한 사용자는 "이 문제는 막상막하여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다. 한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다른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표절 혐의로 고발하고 있다. 정작 패스트 패션의 모조품 먹잇감이었던 다른 명품 브랜드는 할 말을 잃을 수도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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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왼쪽)이 디자이너 쳇 로가 2022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선보인 뾰족한 니트웨어 디자인(오른쪽)을 베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H&M의 카피 의혹을 제기한 '다른 브랜드'에는 아시아계 미국인 디자이너 쳇 로(Chet Lo)가 포함되는데, 그는 지난 2022년에 "특정 패스트 패션 회사"가 자신의 시그니처인 뾰족한 디자인을 베꼈다고 주장했다. 당시 쳇 로는 "소규모 브랜드이자 퀴어 POC 독립 디자이너로서 나는 나만의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엄청나게 열심히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항상 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해왔고, 그것이 내 작품에서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H&M은 중국의 신진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기념하는 것으로 찬사를 받은 적도 있다. 2021년 H&M은 중국 현지의 듀오 디자이너 저우쮠과 리우샨이 전개하는 남성복 브랜드 프로나운스(Pronounce)와 협력하여 프리미엄 스트리트웨어 컬렉션인 블랙 스테이플스(Blank Staples)를 출시했으며, 2019년에는 중국 디자이너 엔젤 첸(Angel Chen)과 협업을 통해 아시아와 캐나다에서 한정판 4피스 컬렉션을 출시했다. 하지만 협업만으로 카피 브랜드라는 오명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패스트 패션의 거인 H&M이 중국의 더 빠른 울트라 패스트 패션업체들(쉬인, 테무)과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비평가들은 말한다. 쉬인이 하루에 최대 6,000개의 신상품을 출시하는 것을 고려하면 스웨덴의 패스트 패션업체 H&M과 스페인의 패스트 패션업체 자라를 비롯한 다른 하이스트리트 브랜드는 이를 따라잡기 어려울 수 있다.


'참을 수 없는 카피의 가벼움'으로 럭셔리 브랜드를 베끼는 패스트 패션에 소비자들은 접근할 수 있는 럭셔리 유혹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쇼핑의 가벼움'으로 어느새 패스트 패션의 무단 복제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소유할 기회가 없는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패스트 패션을 통해 경험해 본다는 긍정적인 의도는 암시장의 암묵적 허용(?)을 가져왔으나 또 다른 문제를 양산했다.


결국 세계적인 유명 디자이너들은 더는 패스트 패션의 무단 카피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컬렉션이 끝나자마자 바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인-시즌 컬렉션으로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B2C로 유통의 틀을 바꾸었다. 이제 더는 카피를 위한 6개월의 시간을 패스트 패션에게 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의 무단 복제는 여전했다. 즉 공식 협업이 아닌 유사한 디자인이지만 가격은 원본과 비교해 볼 때 극과 극이다. 지금쯤 지난 3월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2023 가을/겨울 컬렉션 제품 대부분이 백화점이나 편집 매장에 '신상'이라는 타이틀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원본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더 저렴하고 대량 생산된 많은 상품도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


사실 원본과 카피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패션 디자이너의 제품을 카피한 패스트 패션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상업적인 패션 민주주의 이면에는 디자이너들의 창조에 대한 열정을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면도 동시에 존재한다. 어쩌면 최근 불고 있는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시-나우 바이 나우(See Now Buy Now) 형식의 인-시즌 컬렉션을 열겠다는 일부 디자이너들의 움직임은 당연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따라서 패스트패션업계는 더이상 관행이라는 이유로 누구가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무분별한 의류 제작, 그리고 비윤리적인 노동 및 공장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글로벌 패스트패션의 메인 타켓인 MZ세대를 비롯한 소비자들도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패스트패션 업계의 행보를 꾸준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H&M이 후발 주자인 쉬인을 지식재산권 침해로 고소한 것은 누워서 침 뱉기가 아닐까 한다. "지식재산권(IP) 보호에 대한 H&M의 우려는 진심일까, 아니면 뒤처지는 것에 대한 염려일까?"라는 인스타그램 계정 다이어트 프라다의 게시 글은 '참을 수 없는 패스트 패션의 가벼움'을 지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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