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한류 '잇백' 탄생에 대한 단상

2023-03-10 유재부 패션 에디터 UB@fi.co.kr

럭셔리 소비 1위와 K-스타 파워는 '잇백' 탄생의 최적 조건

블랙 핑크 지수


최근 럭셔리 브랜드의 한류 스타들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어느새 K-스타들은 럭셔리 브랜드의 홍보대사, 즉 하우스 앰버서더가 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최근 티파니앤코는 블랙핑크 로제에 이어 개별 활동 중인 BTS 지민을 글로벌 앰버서더로 기용했고 BTS멤버 제이홉도 루이 비통의 새로운 앰버서더로 발탁됐다. 버버리는 손흥민과 전지현을 앰버서더로 임명했다. 이미 슈가는 발렌티노, 지민은 디올과 티파니 앰버서더다. 뷔는 오래 전부터 셀린느의 모델로 활동해왔고 RM도 보테카 베네타 모델로 내정돼 있다는 소문이다.


'인간 샤넬'로 불리는 제니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앰버서더로 활동 중이며, 리사는 셀린느와 불가리의 앰버서더로 활동 중이다. 로제는 생 로랑 앰버서더를 맡고 있고  지수는 디올과 까르띠에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어 블랙핑크 멤버 전원이 럭셔리 브랜드의 얼굴이 되었다. 요즘 인기 급상승 중인  걸그룹 '뉴진스' 역시 럭셔리 브랜드들의 앰버서더의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최근 멤버 하니, 혜인, 다니엘, 민지가 각각 구찌, 루이비통, 버버리, 샤넬 앰버서더로 발탁됐다. 또한 아이브의 안유진과 장원영도 각각 펜디와 프레드의 앰버서더로 활동중이다. 지난해 데뷔한 엔믹스는 멤버 전원이 스페인 명품 브랜드 로에베의 앰버서더가 됐다.


외신들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K-팝 스타를 앞세워 매출 효과를 보고 있으며, <빌보드>를 비롯한 잡지들과 온라인 매체들은 럭셔리 브랜드의 지난 1월 남성복 패션위크를 시작으로 파리 쿠튀르 쇼와 여성복 패션위크에 이르기까지 패션쇼 앞 좌석인 '프론트로우(Frontrow)'를 차지한 K-스타들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다루고 있다.

K-스타들이 럭셔리 하우스의 선택을 받는 이유는 바로 SNS의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아이돌 개인 SNS팔로워는 각각 수천만명에 이른다. “한국 젊은 층의 명품 소비가 늘어난 것은 인스타그램 등 외부적인 요인”이라는 블룸버그의 말처럼 K-스타들은 전세계 MZ세대 소비를 이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분석되고 있다.


블랙핑크 제니


하지만 이 시점에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한류의 치솟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왜 한류 스타들의 이름이 들어간 '잇백(it bag)'이 없을까. 이미 2016년에 샤넬이 G-드래곤을 뮤즈로 발탁한 것을 시점으로 2018년 블랙핑크 지수가 샤넬의 앰버서더로 임명되면서 샤넬 패션 쇼 프로트-로를 빛내는 대표적인 셀럽이 되었지만 이들의 이름이 들어간 잇백이 없다.


'핸드백 효과(Handbag Effect)'라는 패션 용어가 있다. 여성들에게 소지품을 담고 다니는 일상용품 개념으로 사용되던 핸드백이 1990년대 후반 들어 자신의 지위 등을 나타내는 패션상품으로 인식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이 다른 분야로까지 확산되는 현상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는 핸드백 효과라고 불렀다. 핸드백 효과의 확산은 당시 구찌의 톰 포드, 루이비통의 마크 제이콥스, 에르메스의 켈리 백 등이 잇따라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여성들이 핸드백을 단순히 필요에 의해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닌 멋을 위한 패션상품으로 인식하게 됐다.


이러한 핸드백 효과로 인해 언제부터인가 럭셔리 패션에서는 ‘잇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더니 이제는 일반적인 패션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특별한 어원이 밝혀진 것은 없지만 ‘이것이 그 가방이다(It’s the bag)’라는 뜻으로,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가방을 의미한다.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K-스타들의 글로벌 앰버서더 임명이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면 그 다음 수순은 직접적인 매출을 이끌 잇백의 탄생이 아닐까 한다.


아이브 안유진


해마다 잇백으로 선정되는 럭셔리 브랜드의 가방들은 가격에 관계없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바로 스타 파워 영향으로, 이는 셀러브리티들과 잇백과의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말해준다. 특히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잇백’을 가진 스타들이 가방을 든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온라인으로 간접적인 홍보를 하면서 가방들은 매장마다 품절 사태가 벌어지는 등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쯤되면 특정 스타의 혜택을 통해 하우스와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글로벌 스타의 이름이 들어간 '잇백’이 궁금해진다.


먼저 에르메스의 켈리 백이 대표적이다.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는 코스튬 디자이너 에디스 헤드가 1954년 영화 <나는 결백하다>에서 켈리의 옷장 일부분으로 가방이 사용된 이후 에르메스 백과 사랑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이를 간파한 에르메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1922년 최초의 가죽 핸드백을 출시한 에르메스는 전 세계 여성들이 열망하는 '꿈의 핸드백'을 탄생시켰다. 1935년 선보인 여성용 가죽 백(Sac à dépêches)은 모나코의 왕비가 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1956년 미국 잡지 <라이프> 표지에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들고 나온 모습이 실린 이후, 1977년 ‘켈리 백’ 으로 불리게 되며 현재에도 인기를 얻는 최고의 명품이 됐다.


'버킨 백' 역시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잇백이다. 1984년 에르메스의 5대 손인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 CEO가 비행기를 탔는데 동석하게 된 가수이자 여배우 제인 버킨(Jane Birkin)을 위해 '버킨 백'을 만들었다. 뒤마는 제인 버킨의 가방 안에 물건이 엉망진창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당신의 물건을 다 넣을 수 있는 가방, 그리고 수첩을 넣을 수 있는 포켓을 가방 안에 붙이자"고 제안해서 탄생했다. 일명 ‘버킨 백’은 일주일에 2개 정도만 만들 정도로 제작 공정이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며 몇 달을 걸려서 구입하는 '기다림의 럭셔리 미학'으로 유명하다.


그레이스 켈리


역대 퍼스트 레이디 중 독보적인 패셔니스타로 꼽히는 재클린 캐네디 오나시스 역시 잇백 '재키 백'을 탄생시켰다. 1950년에 탄생한 구찌 숄더 호보백인 일명 '부비에(Bouvier) 백'은 1961년 패셔너블한 퍼스트 레이디가 가장 사랑하는 가방이 되면서 '재키 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리게 되었다. 1999년 톰 포드와 2009년 프리다 지아니니에 의해 새로운 버전의 재키 백이 탄생하면서 스테리 셀러 아이템이 되었다.


영국의 황태자 비 다이애나는 종종 자신이 기장 좋아하는 베이지 컬러의 토즈 백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그녀의 사망 이후, 토즈는 'D-bag'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한 1994년 디올에서 아무런 이름이 업이 탄생한 가방을 1995년 프랑스 퍼스트 레이디가 마담 시라크가 자국을 방문한 다이애나에게 선물하면서 유명한 잇백이 되었는데, 이후 다이애나가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공식 석상에 자주 들고 다니면서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다. 결국 지난 1997년 다이애나에게 영광을 표하는 의미로 '레이디 디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국의 럭셔리 브랜드 멀버리의 '알렉사 청' 백은 스타일 아이콘이자 방송인인 알렉사 청(Alexa Chung)의 이름을 따서 2009년 백을 런칭했을 때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스타일이 되었다. 그녀는 TV 쇼와 각종 행사에 이 가방을 들고 나오며 대중에 멀버리 가방을 알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 가방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베스트셀러 제품으로 등극하였고, 세계적으로 멀버리 브랜드를 빛낸 잇백이 되었다. 지난 2021년 창립 50주년을 맞은 멀버리는 새로운 ‘멀버리 X 알렉사 청’ 리미티드 에디션 캡슐 시리즈를 출시해 다시한번 대박을 터트렸다.


제인 버킨


또한 멀버리는 영국출신의 모델 겸 배우 카라 델레바인(Cara Delevingne )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조절 스트랩이 달린 그녀의 실용적인 배낭(rucksacks) 라인을 '카바 백'이라는 이름으로 2015년 9월에 런칭했다. 멀버리의 베이스 워터백이 변형된 디자인으로 특이한 점은 실용성을 고려해 토트 & 백팩 & 숄더 백으로 자유자제로 변신이 가능하다.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의 아내 아말 클루니(Amal Clooney)는 이탈리아 브랜드 '발린(Ballin)'의 주요 백 중 하나의 이름을 변경한는데 영감을 주었다. 아말 클루니는 인권 변호사에서 셀러브리티로 변신한 대표적인 인물로, 이탈리아 브랜드 '발린(Ballin)'은 대표적인 핸드백 라인 중 한개를 그녀의 이름이 들어간 '아말 백'으로 변경되었다.
  
마크 제이콥스가 루이 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하고 있던 시절, 그의 절친이자 뮤즈인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감독의 이름이 들어간 백이 프랑스 하우스에 의해 우연히 선보였다. 2007년 소피카 코폴라는 주문하려는 의도로 LV 워크숍에 방문했지만 디자이너는 대신 그녀를 위한 완벽한 잡동사니 자루를 디자인했다. 그래서 태어난 것인 바로 'SC' 백이다. 또한 마크 제이콥스가 미국 모델 제시카 스탐의 이름을 딴 큍팅과 시그너처 체인이 특징인 '스탐' 백을 잇백으로 탄생시켰다.


다이애나 황태자비


미국 디자이너 제이슨 우의 '다이엔' 숄더백은 독일 배우 다이엔 크루거(Diane Kruger)와 협업으로 디자인되었다. "우리는 어느 날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해 몇 번의 이메일과 대화를 통해 ‘다이엔 백’이 탄생했다"고 제이슨 우가 설명했다. 이어 "나에게 백은 세련된, 여성스러운, 시대를 초월하는 단어로 이를 다이엔을 정의하는데 사용했다"고 덧붙였다.


2012년에 미국 가수 레나 델 레이(Lana Del Rey)의 이름을 붙인 멀버리의 '델 레이' 백이 선보였다. 제품이 나오기 전 '알렉사' 백과 마찬가지로, 스타 가수 레나 델 레이가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자 전 세계에 걸쳐 매진되었다.


이외에도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슈퍼 모델 지젤 번천(Gisele Bündchen)의 이름으로 딴 루엘라 바틀리의 '지젤' 백은 2002년에 첫 선을 보였고, 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은 브랜드 설립자와의 우정 덕분에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소피아' 백의 탄생하게 되었다는 탄생 비화를 인터뷰를 통해 자랑스럽게 언급했다.


알렉사 청


결론적으로  K-스타들의 이름이 들어간 잇백의 탄생은 당연지사다.  앰버서더로 활동하는 럭셔리 브랜드를 통해 잇백이 나와도 좋고,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외의 협업을 통한 형태도 좋을 것이다. 패셔니스타 여성들의 버킷리스트 목록에 당당하게 이름이 올라간  '잇백'은 시즌에 관계없이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라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K-패션의 세계화에도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럭셔리 소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지난해 1인당 럭셔리 소비액은 324달러(약 40만4000원)로, 미국의 280달러(약 34만8000원)나 중국의 55달러(약 6만8000원)보다 높은 세계 1위였다. 럭셔리 소비 1위 국가에서 자국 스타의 이름이 들어간 '잇백'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다.


다이엔 크루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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