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디지털 레트로'로 변주된 '응답하라 1980'

2022-10-13 유재부 패션 에디터 UB@fi.co.kr

2023 봄/여름 그리디어스 컬렉션

2023 봄/여름 그리디어스 컬렉션


드디어 100% 라이브 서울패션위크가 3년 만에 컴백했다. 한껏 부푼 기대감으로 어두컴컴한 패션쇼장에 들어서자마자 신선한 봄날의 향기가 코끝은 스쳤다. 그 진원지는 '그리디어스'의 강렬한 프린트를 입은 왕빛나, 진세연. 수란, 채연, 알리 등 수십명에 달하는 그리디 군단이었다. 그리디 별들이 가득 채운 프론트 로는 잠시 후 펼쳐질, 꽃으로 만발한 '그리디어스 봄날'의 예고편이었다.


그동안 미래지향적이고 기하학적인 그래픽 디자인과 '희망'이라는 화사한 컬러로 패브릭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던 천방지축 '그리디 걸'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배고픈 욕심쟁이 '그리디 레이디'로 런웨이에 컴백했다. 그래서일까 2023 봄/여름 캣워크는 어딘가 모르게 성숙해 보였으며 연륜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지난 2월 뉴욕 패션위크에서 인공지능 인간 '틸다'와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디지털 소통을 통한 협업으로 주목받은 그리디 레이디는 2023 봄/여름 시즌도 여전히 우주 바다를 어슬렁거렸다. 지난 시즌과 차이점이라면 3D의 정교한 틸다가 아닌 엔틱 느낌 물씬 풍기는 2D 컴퓨터 그래픽이었다. 그녀는 80년대 레트로를 재해석한 판타지 양념을 뿌린 '디지털 레트로'로 컴백! 서울패션위크 오프닝 데이를 자축했다.


인류는 지난 100년 동안 과학적으로 무궁무진한 발전을 했지만 복병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 등장하자 패닉에 빠졌다. 눈부신 과학도 자연의 경고인 악성 바이러스를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인류는 마스크와 주사를 무기로 3년간 바이러스와 싸우며 소셜 미디어라는 ‘디지털 공감'으로 소통했다. 펜데믹 위기를 이겨내고 포스트 코로나를 맞은 인류는 미래보다는 과거 좋았던 시절 '벨 에포크'가 먼저 떠올랐다. 코로나 락다운을 통해 막연한 미래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출발점에서 패션 아티스트 박윤희가 선택한 벨 에포크는 1980년대. 손으로 그려낸 이차원적인 평면 2D 그래픽만이 간직한 특유의 느낌은 그 시절 청춘을 보냈던 X세대들에게는 코끝 찡긋한 '레트로' 향수를 선물했고, 1980년부터 태어나기 시작한 MZ세대의 '뉴트로' 감성을 자극했다. 20세기 2D 그래픽의 단순함 속에 숨어있는 추상적인 하이-테크는 촌스럽지만 정겨운 휴먼 패션의 본질을 들려주는 듯 했다.


브랜드 '그리디어스'를 떠올릴 때 화려한 패턴의 두툼한 패딩이 떠오른다면 이제 선입견을 버려야 할 듯하다. 퍼플, 그린, 블루, 옐로, 핑크 등 마치 컬러 퍼레이드로 연출한 그리디어스의 정체성은 블랙과 화이트가 조연이 되어 무게 중심을 잡아주었다. 또한 러플과 섬세한 플리츠, 반짝거림, 스포티한 드로-스트링, 그리고 과감한 커팅 등 트렌디한 디테일도 잃지 않았다. 여기에 페미닌 드레스, 엣지있는 로커 재킷, 턱시도를 변주한 슈트와 고풍스러운 트렌치, 후디와 애슬레저 느낌의 아이템 등은 클래식과 캐주얼의 절묘한 만남을 연출했다. 특히 화려하고 자유분방한 프린트와 정교한 테일러링과 커팅, 여성스러운 실루엣의 만남은 럭셔리 스트리트 웨어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하는 듯 신선해 보였다.


2023 봄/여름 그리디어스 컬렉션


특히 포멀한 턱시도의 다양한 쁘띠 캐주얼 변형은 이브 생 로랑이 미완으로 남겨 놓은 스모킹 슈트 유산을 완성도 높은 젠더풀 실루엣으로 재해석한 그리디 슈트로 선보여 별 나라에 있는 전설을 기쁘게 만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프린트의 경우 기하학적인 기교를 넘어,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개념 있는 디자이너답게 에코-프렌들리 감성을 주입해 딱딱함과 정교함보다는 포근함과 휴머니즘을 강조했다.


철 지난 20세기 하이테크인 2D 컴퓨터 그래픽의 평면은 그리디어스만의 열정과 연민이 가미된 프린트와 디테일을 만나 3D휴먼 하이테크로 변주되었다. 마치 코로나로 인해 억제되었던 니즈와 원츠를 분출하는 여심을 연상시키는 퇴폐미 숨어있는 흐느적거림과 몽환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실루엣은 촌스러움 속에 숨어있는 인간적인 패션 미학의 결정판이었다.


어쩌면 3D 그래픽이 상실했던 투박한 붓 터치의 유화를 보는 듯한 느낌은 섬세한 디테일과 볼륨감으로 살려낸 실루엣 때문이다. 미술학도 출신답게 패브릭을 캔버스삼아 그림을 그려온 패션 아티스트의 비전이 이제 서서히 꽃망울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유니크'라는 정체성에 '프레시'라는 아로마를 몇 방울 떨어뜨린 듯한 그리디어스의 컨템포러리 프린트 미학은 남다른 의미로 비쳐졌다.


이번 시즌 선보인 다소 익숙한 ‘응답하라 1980’ 노스탤지어아를 통해 스토리텔러 박윤희는 21세기의 미래는 80년대 SF영화를 보면서 상상했던 인간성을 상실한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계가 소통하고 디지털 감성으로 인간성을 회복해가는 유토피아라는 사실을 한 편의 캣워크 드라마를 통해 잘 보여주었다.


정열적인 비비드한 프린트를 추구하는 '그리디어스'의 디자이너 박윤희는 브랜드 이름처럼 아직도 배고프다. 포스트 코로나를 계기로 이제 다음 챕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할 때다. 모자 디자이너로 시작해 위기 때마다 변신을 시도했던 우상 가브리엘 샤넬처럼 박윤희 역시 성숙함을 위한 발전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 변화와 진화를 위해 결혼은 약간 미루더라도 가브리엘 샤넬처럼 가슴 떨리는 연애만큼은 자유로운 성숙한 '그리디 레이디'로 변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브리엘 샤넬도 변신 때마다 늘 사랑에 빠진 ‘프리티 걸’이었다. <사진제공=서울패션위크>


2023 봄/여름 그리디어스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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