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패션은 여성인권의 거울

2022-10-11 유재부 패션 에디터 UB@fi.co.kr

여성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이란 여성들


지난 9월 16일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구금된 22세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Mahsa Amini)의 사망은 그야말로 패션 참사이자 비극이다. 젊은 청춘 마흐사의 가슴 아픈 사망 사건 이후, 지난 몇 주 동안 수천 명의 이란 여성들과 소녀들이 히잡을 불태우며 시위를 주도했으며, 수십 개 도시에서 남녀노소 이란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분노를 드러내며 이란 정부의 패션을 통한 여성 인권 탄압을 비난했다.


하지만 그동안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을 소리 높여 외쳤던 럭셔리 브랜드는 긴급한 글로벌 인권 이슈에 대한 공식 입장을 곧바로 취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여성들 덕분에 돈을 번 럭셔리 브랜드가 현실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결국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대중들의 거센 비난 여론이 일자, 지난주부터 일부 럭셔리 브랜드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란 여성들의 자유와 삶'에 대한 지지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발렌시아가는 '여성, 삶, 자유(Woman, Life, Freedom)'라는 문구의 흑백 이미지를 인스타그램 피드와 스토리에 업로드하면서 "발렌시아가, 케링 그룹, 케링 재단은 항상 여성의 기본권과 자유를 위한 싸움을 지지해왔다. 우리는 모든 이란 여성들과 함께 마흐사를 추모한다"라는 댓글을 게재했다.



다소 늦었지만  주요 럭셔리 하우스 발렌시아가가 히잡 패션으로 인해 촉발된 이란 여성들의 인권 운동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지지를 표방했을 뿐 아니라 2023 봄/여름 파리 패션위크 쇼케이스 며칠 만에 인스타그램 페이지의 관련 부분을 모두 지우고 인권 메시지를 부각시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란 여성의 인권 지지 선언에는 발렌시아가 뿐 아니라 모회사 케링 그룹과 여성 폭력 근절을 목표로 2008년 설립된 비영리단체 케링 재단도 동참했다. 회사 측에서는 최근 자사 인스타그램 계정에 "케링 그룹과 케링 재단은 항상 여성의 기본권과 자유를 위한 투쟁을 지지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이란 여성들과 함께 하고 있다. #마흐사아미니 #????_?????"라는 글을 올렸다.


케링 그룹 소유의 또 다른 럭셔리 브랜드 구찌 역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여성복 브랜드로서 우리는 국경과 세대를 넘어 성 평등을 위한 싸움에서 단결과 목소리를 강화하기 위한 '차임 포 체인지(Chime for Change)' 캠페인을 통해 모든 이란 여성들과 함께하고 있다"라는 글을 올렸다. 케링그룹 소유의 또 다른 브랜드 생 로랑과 알렉산더 맥퀸은 아직 아무 게시물로 올리지 않은 상태지만 곧 동참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라인 패션 미디어 <더컷>의 최근 보도에서 묘사한 것처럼, 독재 국가의 지시를 받는 경찰에 의해 불법 구금되어 결국 고문으로 사망한 22세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대한 온라인 지지는 이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계속 넘쳐나고 있다.


사실 이슬람 여성들에게 두건, 즉 히잡을 착용하는 매우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이란 정부의 반강제적인 드레스 코드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채택되어 계속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전까지는 이란 여성의 젊은 여대생들은 히잡을 강제적으로 쓰지 않았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기 때문에 전통 고수라는 명목과도 거리가 멀다.


29명의 이란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벗은 채 걸어가다가 체포되어 이슈가 된 2017년을 포함, 그동안 겸손법에 반대한 많은 이란 여성들은 체포되었지만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22세 청춘의 사망 소식에 분노한 이란 여성들은 히잡을 벗어 허공에 흔들고, 일부는 불에 태우는 등 시위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슈퍼모델 벨라 하디드를 비롯한 글로벌 셀럽러브리티 역시 인스타그램으로 이란 여성들과의 연대를 보여주었다. 벨라 하디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우리 자매들이 인권을 되찾기 위해 살해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인권은 자유롭게 존재할 권리와 자기 몸에 대한 주권을 선택할 자유를 말한다. 그들은 비무장으로 무장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어떻게 권력화된 지배적인 다수가 여성들을 위협하고 불안에 떨게 할 수 있는가? 가부장제는 병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사실 우리도 같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70년대에 유신 독재 정부는 여성의 미니스커트 단속과 남성의 장발 단속을 위해 자와 바리캉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또한 캠퍼스에서는 여대생들이 저항과 남녀평등이라는 페미니즘 운동 확산으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다. 또한 배꼽 티라 불리는 크롭 탑이 단속 여부를 두고 이슈가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 바람을 타고 패션은 단속 대상이 아닌 선택 대상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보편적인 상식이다.


패션은 여성의 인권과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그 사회의 또 다른 거울이다. 여성들은 20세기 초반부터 팬츠 착용을 위해 무던히 투쟁했고, 60년대의 젊은 청춘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기 위해 기성세대와 투쟁했다. 마스크도 동양인과 달린 서양인들에게는 강도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기피 대상이었지만 3년간의 코로나 펜데믹 이후 필수템이 되었다. 따라서 이란에서 패션 액세서리에 불과한 히잡 때문에 여성 인권이 유린당한다는 사실은 시대를 거스르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때문에 지금이라도 글로벌 영향력을 지난 디자이너와 럭셔리 하우스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페미니즘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웠던 많은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란 여성들의 인권 침해에 침묵하고 있다. 물론 지난 9월은 4대 패션위크 때문에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다. 그동안 패션은 런웨이와 티셔츠 문구를 통해 전쟁과 독재를 반대하고 인권과 자유를 외쳤다. 앞으로 더 많은 영향력 있는 패션 기업들이 자사 플랫폼을 이용해 이란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킬 것으로 고대한다. 패션의 뿌리는 페미니즘이다. 여성 인권을 테마로 하는 패션 페미니즘을 시각적인 쇼윈도 마케팅이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SNS 마케팅로 보여줄 때 패션의 정치적 의미는 그 힘을 다시 한번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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