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미래 35ㅣ불황에서 발견하는 호황의 법칙

2022-09-01 정인기 기자, 권민 객원 에디터 unitasbrand@gmail.com



1997년 외환위기 어려움부터 2022년 코로나 시국과 러시아 침공까지 경기침체와 불황은 언제나 뉴스로 끊임없이 나왔다. 더 끔찍한 것은 아직 본격적인 불황은 시작도 안 했다는 것이다. 100년 만에 기록적 폭우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는 뉴스에 더해 앞으로 기후 대재앙이 온다는 조회수를 의식한 낚시성 뉴스도 계속 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올 현실적인 불황보다 더 무서운 것은 보이지 않는 불안한 미래다.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저서 《불안》에서 불안을 이렇게 정의했다.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트렌드와 사치를 합성해서 상품을 만드는 뇌쇄惱殺적 산업군에서 일하는 마케터들은 '불안'과 '욕망' 그리고 '브랜드'를 한 덩어리처럼 사용했기 때문에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욕망의 하녀'가 누구인지 대충 짐작을 할 것이다.


불안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본능으로 가지고 있는 생존과 보호를 위한 반사 작용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불안감을 다루는 마케터는 제품에 글로벌 트렌드, 새로운 디자인, 허영심, 사치, 경쟁심, 체면과 욕망을 적당히 섞어 넣어 자칭 트렌드 리더들이 구매하지 않으면 스스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마케터들은 소비하지 않으면 불안하게 만드는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것의 독성은 치명적이다. 그런데 불황이 되면 호황에 사용하던 이런 불안감의 약발은 떨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돈을 쓰지 않고, 그동안 소비 영역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던 머리를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는 이렇게 말한다. "불황이 되면 '소비자들의 소득은 적어졌지만 어떻게 하면 소비를 통해 편안함을 느낄까?' 혹은 '싸지만 럭셔리한(chip luxury)것을 구매할 수는 없을까'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된다. 불황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소비 경험을 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비 자체를 줄이기도 하지만 어떤 소비자들은 전혀 다른 소비를 경험하기도 한다."


불황에서 호황의 규칙이 그 정체를 드러낸다. 불황에서 명품 브랜드의 성장을 이끄는 제품들을 살펴보면 부피가 크고 고가인 상품보다는 작고 실용성 있는 작은 사치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불황에 소비가 과연 사라지는 것일까? 도대체 불황일수록 매출이 올라가는 속옷 산업에는 어떤 소비 메커니즘이 있을까? 불황인데 왜 고급 기종은 기본 상품보다 더 많이 팔릴까?


결론부터 말하면 소비는 사라지지 않았고 이동하고 있다. 불황에 매우 혁신적인 브랜드가 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새로운 욕구의 출현이다. 영국의 마케팅 전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한눈에 보는 마케팅 플랜》의 저자 피터 나이트에게 영국의 상황과 시장 변화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글로벌 금융 사태로 인한 불황 당시에 영국에서 차(tea) 판매는 고공 행진 중이었다. 확실히 영국 사람들은 어려운 시기에 차를 더 많이 마시는 경향이 있다.


그 외에 온라인 데이팅(online dating)은 매달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호황 중이다. 진정한 브랜드는 불황인데도 더 큰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 불황에도 호황하는 브랜드는 어느 곳에나 있다.


◇ 불황도 그 누군가에게는 전략이다 
불황이 되면 소비자는 고객이 되고, 고객은 소비자가 된다. 이 말은 종전 브랜드 충성 고객들이 가장 손쉽게 다른 브랜드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불황이 되면 기업과 브랜드는 자신과 싸우게 된다. 자신의 강점은 약점이 되고, 자신의 성장은 덫이 된다. 시장 리딩 브랜드들은 불황이 오기 전에는 대부분 최고의 역량을 발휘해서 광고 및 마케팅 비용을 들여 시장점유율을 유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가 줄어든 상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최악의 방법이자 가장 빠른 방법을 사용한다.


가격 할인과 원가 절감이다. 가격 할인은 기본 충성 고객에게 치명적이고, 원가 절감은 내부 고객에게 치명적이다. 결국 안팎으로 어려워진다. 대부분 기업은 자구책을 사용하지만, 고객 중심이기보다는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브랜드와 고객과의 관계는 재설정된다. 물론 지금까지 상품을 '팔기' 위해만 생각했기에 브랜드를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지식이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시장을 리드했던 브랜드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때 고객의 이익을 중심으로 설계된 (말로만 듣고 책에서만 나오는) 가치혁신 브랜드가 탄생한다.


불황이 되면 기업가 정신에 의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소비자들에게 안정과 신뢰를 주는 새로운 대안으로 환호받는다. 소비자는 고객이 되어 이런 혁신적인 기업과 브랜드를 응원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고객이 기업을 응원한다.'


그렇다면 불황을 전략으로 활용한다면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복잡하지 않다. 일단 싸기만 하면 안 된다. 싸기만 한 브랜드의 단점은 호황 때 사라지거나 수많은 모방자를 만들어 내거나 무엇보다 싼 상표(브랜드가 아니다)로 포지셔닝된다는 것이다. 싸지 않으면 매출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품질에 문제가 생기고, 급기야 소비자에게 외면받아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래도 불황에는 싸야 한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싸야 하며 그 철학은 고객에게 품질로 만족시키겠다는 브랜드 사명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결국 품질이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명품' 브랜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사면서 그렇게 품질을 따지는 것은 오래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품질에 깃든 장인정신, 곧 완벽함을 사고 싶기 때문이다. 얼핏 듣기에는 '품질 좋고 싸게 만들어라'는 식으로 들리겠지만 이것은 불황에서는 기본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상품의 기본 속성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비자를 흥분시키려면 왜 가격이 저렴한지에 관한 '철학'을 반드시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가 이 시대에 왜 만들어졌고,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어려움을 이겨 내고, 고객에게 이런 것을 주고 싶은 동시에, 우리의 고객은 우리와 이런 철학을 공유하고 있으며, 우리는 고객과 함께 불황을 이렇게 이길 것이고, 우리는 망하더라도 이 철학을 버리지 않겠다'는 말을 소비자는 듣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불안함을 이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바로 신뢰이기 때문이다. 신뢰란 다름 아닌 '다른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시장의 질서가 왜곡되는 불황에는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소비자는 더 이상 불확실한 것 때문에 불안을 원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을 원한다. 그렇다고 그 확실함이 예전의 광고 카피처럼 자기주장 식이 아니다. 확실함의 근본인 신뢰는 '솔직함'이다.


◇ 철학이 전략이다
불황에서는 호황 때처럼 대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불황을 이기기 위해는 마케팅 전략을 다시 짜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전략이라는 개념으로 모든 것을 다시 세워야 한다. 브랜드 전략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광고, 홍보, 판촉, 스타 마케팅 정도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돈'으로 하는 판촉 행위다.


재고를 불태우는 명품 '에르메스'에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일까? 악성 재고는 불태울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브랜드에 대한 태도다. 이제 브랜드 철학을 재정립해야 한다. 왜 우리가 불황에 존재해야만 하고, 불황 속에서 소비자에게 어떻게 봉사하며, 불황에서도 견뎌야 할 이유를 철학적으로 세워야 한다. 불황을 주제로 인터뷰한 회사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불황을 이기는 전략보다는 놀랍게도 불황에도 자신들이 고객들에게 지켜야 할 의무를 이야기해 주었다.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방법은 경영자도 반드시 지켜야 할 브랜드 영혼을 구축하는 것이다. <브랜드의 미래 34호>에서 설명한 'Brand DOs & DON'Ts'라고 불리는 메뉴얼이 그것이다. 고객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회사를 접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킨다는 자기 사명적 메뉴얼이다. 이것을 만든다고 갑자기 매출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브랜딩 전략은 '태도'다.


이런 자기 제약 조건이 있으면 경영자들과 브랜드 관리팀들은 자연스럽게 원칙에 맞는, 원칙에서 진화된 전략들을 짤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서 차별화가 이루어지고 시간이 누적되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가치로 정착되는 것이다. 찰스 다윈의 말처럼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듯 불황에서 높은 철학 기준을 세우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문화가 바뀌고, 서비스가 바뀌고, 상품이 바뀌고, 고객이 바뀌게 된다. 불안한 소비자에게 어떻게 '신뢰'를 쌓을 것인가를 고민할 때 바로 거기에서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는 시대정신을 가진 브랜드가 탄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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