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 멋쟁이·행복한 옷쟁이의 ‘사미인곡’

2022-04-25 유재부 패션 에디터 UB@fi.co.kr

태생적 탐미주의자 박윤희의 ‘행복 찬가'...깜순이 공주, 유쾌한 ‘프린트 여왕’으로 변신!

그리디어스 디자이너 박윤희


전 세계가 주목하는 K-패션의 기수 ‘프린트 퀸’ 박윤희. 요즘 그녀를 부산 사투리로 표현하면 ‘할 일이 천지빼까리인 애살있는 멋째이 가스나’다. 센 언니 같은 까무잡잡한 피부와 외향적인 성격, 시원시원한 말투, 텐션이 느껴지는 구수한 사투리에서 ‘세련미’와는 동떨어진 부산 바닷바람을 닮은 시원한 ‘원초적 본능’을 느낄 수 있다.

프린트 여왕 향기 물씬 풍기는 신사동 아틀리에로 들어갔다. 특유의 부산 사투리로 “기자님 잘~ 계셨어요~”라고 간단히 인사한 그녀는 주문(?)받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러 다시 아틀리에를 나섰다. 잠시 후 돌아온 그녀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역시 변함이 없다. 솔직함과 거침없는 말투, 당당함은 막힘이 없다. 그녀를 서울패션위크 GN 컬렉션에서 처음 만났던 신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녀의 변하지 않는 브랜드 콘셉트도 이러한 기질의 발로가 아닐까.


그녀만의 직설화법에 휘말리면 한 시간 인터뷰는 두, 세 시간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지겹지 않다. 너무 길게 느껴지는 패션쇼나 영화를 봤을 때 차오르는 지루함도 없다. 어느새 천방지축 디자이너와 한통속이 되어 수다를 떨고 있다. 질문하는 것인지 질문받는 것인지 도통 헷갈리는 해체주의적인 인터뷰는 결국 2시간 37분 만에 끝났다.


요즘 필자는 ‘싱어게인 20호’로 불리는 무명 가수 출신 이승윤이라는 아티스트에 빠져있다.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장르가 30호로 불리는 그만의 정체성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그 역시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형이상학적 문법으로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었다. 익숙한 듯 낯선 노스탤지어와 컨템포러리의 교집합은 디자이너 박윤희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 역시 브랜드 ‘그리디어스’를 론칭했을 때 신인이라기보다는 무명 디자이너였다. 이미 도호, 오브제와 한섬과 같은 유명 브랜드에서 10년 넘게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독립했다. 현장에서 터득한 탁월한 실력은 있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신사동 아틀리에에서 작업중인 박윤희


자신만의 장르를 만든 아티스틱 디렉터 박윤희



그녀는 그 흔한 유학파도 아니다. 사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난 그녀는 미국 유학을 위해 어학연수를 떠났지만, 향수병 때문에 리턴했다. 대학에서도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다. 첫 직장은 ‘도호’였다. 디자이너 도향호의 열정을 보면서 ‘패션은 정말 좋아해야 할 수 있다’라는 본질을 깨달았다. 아직도 초심을 지키기 위해 막내에게 ‘깜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고인이 된 디자이너 사진을 가지고 있다. 가장 오래 다닌 두 번째 직장 오브제에서는 디자이너로서 성취감을 맛보았고 끈기도 배웠다. 세 번째 직장 한섬에서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익혔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워크홀릭으로 살았다. 일을 즐겼다. 패션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몰랐다. 그게 노하우가 됐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준비된 디자이너다.


12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한 뒤 행복찾기를 위한 ‘패션 독립선언’을 했다. 직장인의 껍질을 벗고 창의적인 크리에이터로 변신한 박윤희는 미래지향적이며 기하학적인 그래픽 디자인을 스타일과 접목한 새로운 룩을 만들었다. 다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헤리티지로 무장한 럭셔리와 패스트 패션으로 무장한 SPA 사이에서 생존할 수 있는 나름의 장르가 필요했다.

원로 디자이너들에게 부를 안겨 주었던 플로랄 중심의 프린트와는 차별화된, 익숙하지만 왠지 신선한 그녀만의 프린트와 패턴은 클래식에서 벗어난 컨템포러리 아트워크 룩이었다. 이승윤이 산울림의 노래 ‘너의 의미’를 자신의 장르로 열창한 것처럼, 그녀의 패션 역시 익숙하면서도 색다르고, 맥시멀하면서도 미니멀하다. 결국 다년간의 패션 디자이너 경력과 산업 디자인 전공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프린트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녀와 인터뷰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가 아버지였다. 2009년 처음 브랜드를 시작했을 때 이야기에서도 아버지가 등장했다. 한섬을 퇴사 후,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는 데 기존 브랜드를 이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SPA 같은 저렴한 브랜드처럼 만드는 것도 싫었다. 결국 영문학박사님인 아버지와 함께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면서 회사명을 지었다. “원래 ‘그리디(greedy)’라는 단어가 있어요. 욕심이 많다는 뜻인데 거기에 형용사 아름다움(fabulous)을 조합해 ‘그리디어스(Greedilous)’라는 회사명을 만들었어요. 회사명과 저는 아주 비슷해요. 특히 저는 일 욕심이 많죠. 회사의 정체성과 제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반려견 '리치'와 디자이너 박윤희

아버지와 함께 시작한 '행복 찾기'

그녀에게 아버지는 정신적인 멘토다. 오브제에 근무할 때 허구한 날 밤새우고 새벽 2~3시에 퇴근하는 딸을 보고는 딸이 회사에서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으로 오해한 아버지는 박카스 100병을 들고 회사를 방문할 정도였다. 늘 자신을 응원하면서 참견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돌발 행동에 딸도 놀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딸에게 묻는다. “너 지금 행복하니?” 이 질문에 박윤희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어려서부터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서인지 부모님처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행복’이나 ‘불행’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그러다 피치 못할 회사 사정으로 오브제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술 돌릴 틈도 없이 한섬 디자이너로 스카우트되었다. 아버지는 다시 딸에게 묻는다. “너 지금 행복하니?” 그때야 곰곰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다. 디자이너인 어머니를 보면서 어릴 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천방지축 깜순이 공주는 결국 디자이너가 되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그냥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런 그녀에게 행복은 디자인만큼이나 어려운 인생 화두였다.


“아버지는 저의 선택을 늘 응원하며 마음의 키가 큰 딸이 되기를 원했어요. 늘 멀리 내다보고 마음을 풍요롭게 가지고 겸손하라고 말씀했던 아버지가 지금 생각해 보면 저의 재능을 미리 알아보신 것 같아요. 사실 그녀의 아버지는 타고난 학자이자 보수적인 사람으로 미술을 공부한 적도 예술적 감각도 없어요. 저랑은 정반대죠. 어쩌면 저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어요. 부잣집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행복도 불행도 모르시는 분이에요. 지금도 가만히 있어도 돈이 그냥 생기는 줄 알아요.”


부모의 장점만 물려받은 긍정적 에너지 박윤희는 나름의 ‘행복 찾기’를 시작했다. 배운 게 도적질이라고 했던가. 결국 그 행복의 본질은 패션이었다. 타협하는 디자인이 아닌 진정한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몇 평 안 되는 작은 공간에 회사를 차리고 직원 1명 데리고 당차게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막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일했던 전 직장의 상사들이 큰 힘이 되었다. 회사에 다닐 때 근성 있고, 열심히 일하고, 감각 있는 이 그녀를 눈여겨본 덕분이다. “회사 다니면서 저를 위해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그분들이 저의 로열티를 만들어 주었죠. 사실 회사 다닐 때는 무척 힘들었거든요. 창고에서 처박혀 자다가 울면서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이것도 못 하면, 회사를 나가서도 아무것도 못 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악바리가 되었어요.”


인스타그램 사진


어린 시절 아버지 서재에는 늘 자녀들의 자리도 있었다. 그녀는 서재에서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에게 줄 만화도 그렸다. 아버지는 딸이 공부는 안 하고 친구들에게 줄 만화를 그리고 있어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다르게 살고, 다르게 생각한다.' '자신한테 부끄럽지 않게만 살면 된다'라는 가르침만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그 누구보다 단단하고 튼튼하게 자랐다.

그녀는 태생적인 탐미주의자다. 그녀의 미적 감각은 길러진 것이 아니라 타고났다. 어릴 적 어머니는 패션 디자이너였고 오드리 헵번 영화를 좋아했다. 어릴 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 음악을 엄마와 함께 들으면서 흥얼거렸다. 대학 시절에는 카르티에를 좋아했던 멋쟁이 외할머니집에 가서 엄마 옷을 입으며 감각을 키웠다. 공주 패션 ‘오브제’ 단골이었던 이모도 그녀에게는 워너비 스타였다. 엄마가 만든 옷을 입고 학교에 가면 주위에서는 딸이 하나밖에 없어서 공들여서 키운다고 했다. 여동생이 있음에도 말이다. 얼굴이 까무잡잡한 그녀는 미인형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공주야! 공주야!’라고 불러서 자신이 진짜 예쁜 줄 알았다. 하지만 학교에 갔더니 얼굴도 하얗고 예쁜 애들이 너무 많았단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개성 있는 멋쟁이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그녀는 인플루언서 디자이너 빅토리아 베컴처럼 자신의 브랜드 ‘그리디어스’의 걸어 다니는 모델이다. 늘 자신이 디자인한 화려한 옷을 당당하게 입고 다닌다. 대학 시절 박윤희는 배꼽티와 나팔바지 등을 입을 정도로 남들보다 한발 앞선 패션 감각을 선보였다. “어릴 때 어머니는 저를 보고 숨으셨었다고 해요. 제가 너무 옷을 화려하게 입어겠죠?”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당당한 자신감을 늘 응원했다. 어쩌면 그리디어스에 그녀만큼 잘 어울리는 모델은 없을 듯하다. 그래서 그리디어스가 박윤희고, 박윤희가 그리디어스다. 자연스럽게 ‘그리디어스’는 그녀의 랭귀지가 되었고, 그것이 스타 마케팅의 밑거름이 되었다. 영어를 못해도 그녀만의 랭귀지가 있어서 해외의 셀러브리티외도 쉽게 소통하고 친해졌다.


AI 아티스트 틸다와 디자이너 박윤희


'샤넬'과 '다이아몬드'를 사랑하는 탐미주의자



어릴 때부터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그녀는 “그리디어스가 샤넬처럼 대명사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그리디어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여심을 설레게 만드는 누구나 갖고 싶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라는 말했다. 이메일 아이디가 샤넬 박(chanelpark)일 만큼 코코 샤넬을 좋아하며 또한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샤넬처럼 세월이 흘러도 여성들이 즐기고 사랑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그 자체만으로도 무수한 매력을 발산하는 다이아몬드처럼 말이죠.” 다이아몬드 예찬론은 계속 이어졌다.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한 사람이 되고 싶고, 다이아몬드처럼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다이아몬드처럼 성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다이아몬드는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보석이지만, 결혼반지처럼 약속의 의미도 있고 영원하다는 의미도 있거든요. 그래서 다이아몬드 콘셉트로 데칼코마니를 해서 프린트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브랜드의 시그너처가 되었거든요.” 다이아몬드 어원에는 ‘정복되지 않는, 정복할 수 없는’이란 뜻도 있다. 이는 높은 내구성과 찬란한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말이다. 결국 도전이라는 그녀의 숙명은 다이아몬드에 대한 미적 탐구로 완성된 듯하다.


그러면 디자인 영감은 어디에서 얻을까? 그녀는 “이번 뉴욕 쇼 끝나고 귀국해서 줌으로 인터뷰를 할 때도 어디서 영감을 얻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때 ‘나 자신’이라고 대답했어요. 영감은 내가 어떤 것을 보고, 어떻게 느끼느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를 어떻게 공부시키냐에 따라서 나오는 결과물이 아주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 자신이 제일 소중하고 일단 저를 위해서 살아야지만 좋은 옷을 만들 수 있죠”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뉴욕패션위크에서 떼샷을 찍은 박윤희


짝꿍 '틸다'와의 만남을 통해 패션의 미래를 개척



그녀가 세계 패션업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2월 14일(현지 시간) 열린 뉴욕패션위크에서 선보인 ‘그리디어스 바이 틸다’라는 타이틀의 패션쇼였다. 특히 틸다라는 생소한 이름 때문이었다. 박윤희가 틸다와 함께 작업한 것은 바로 퓨처리즘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결국 AI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틸다에게 선물해 줄 것은 감성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틸다에게 꽃 프린트로 된 우주복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이번 시즌에는 볼륨감 있는 패딩이 많아요. 금성에서 틸다가 지구를 내려다볼 때를 상상해서 제가 값을 입력하면 틸다가 그림을 그리죠. 그럼 핸드폰으로 틸다가 그린 그림을 중에서 선택을 했죠. 처음에는 AI가 무슨 그림을 그리겠어라고 생각했는데, 몇 개 그려보도록 했더니 잘 그리는 거예요. 물론 처음에는 좀 불안정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어요. 마치 제 분신을 보는 것 같았어요.” 뉴욕의 패션쇼 런웨이에 설치된 LED 화면을 통해 모습을 처음 드러낸 틸다는 박윤희 디자이너와 환경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꽃을 그리고 싶어. 금성에 핀 꽃을"이라 말하자 화면은 틸다가 직접 창작한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날 런웨이에서는 틸다가 창작한 3,000장 이상의 이미지와 패턴을 기반으로 제작된 200여 개의 의상이 소개되었다.


그녀가 추구하는 브랜드 철학은 바로 ‘박윤희’다. 달리 표현하면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사실 그리디어스의 가격은 꽤 비싼 편이에요. 가격을 낮춰서 많이 팔기는 쉬워도 높은 가격으로 재구매를 계속 일으키는 건 쉽지 않아요. 제 브랜드는 제 자존심이기에 부자재 및 소재도 가장 좋은 것을 쓰고 그래픽도 모두 직접 개발하죠. 또한 저 자신이 진정성을 가지려고 항상 노력해요. 현대자동차에서 광고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운전을 안 하는 사람이라 광고를 진행하지 않았어요. 당장 눈앞의 인지도와 이익보다는 제가 부끄럽지 않고 떳떳한 게 중요하니까요. 방송도 마찬가지예요. 홍보에 도움이 안 되면 절대 출연하지 않아요. 그래서 ‘나 혼자 산다’와 ‘라디오스타’ 같은 경우는 섭외가 들어왔지만 출연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홍보에 도움을 주는 ‘불타는 청춘’이나 ‘비디오 스타’에는 출연했죠. ‘비디오 스타’의 경우는 모든 패널에게 제 옷을 입히는 것이 조건이었거든요” ‘불타는 청춘’도 출연 조건인 대대적인 홍보를 해주었고 덕분에 그녀는 대중목욕탕에서도 알아보는 스타가 되었다. 물론 목욕탕에서 만난 어른(?)들도 매장으로 오게 만들어 옷을 판 타고 난 사업가다.


“수 많이 쏟아지는 브랜드 중에 고객들의 기억에 명확히 새겨지려면 아이덴티티가 명확해야죠. 기존 브랜드와 달라야 하고, SPA 브랜드와도 차별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했겠죠. 비욘세가 제 옷을 왜 샀겠어요. 특별하니까 산 거예요. 세상에 표현될 수 있는 ‘다양성’이 옷으로 나타난다면, ‘컬러’와 ‘디테일’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컬러와 프린트, 디테일의 조화를 자신만의 드라마틱한 스타일로 표현했을 때, 이것이 진정 옷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이너의 ‘랭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디자이너 박윤희

비욘세 효과는 '아다리' 행운이 아닌 노력의 결과



그녀의 성공 신화를 이야기하면서 비욘세와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역시 그녀의 표현대로 아다리가 잘 맞은 경우다.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행복을 찾아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한 지 5년 차인 2014년 뉴욕 편집숍이 그 기회였다.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10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뉴욕으로 기서 소호에 있는 편집숍에 옷을 걸 기회가 생겼다. 짧은 영어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소비자에게 가능하면 마네킹에 옷을 입혀달라고 요구했다. 외국 바이어의 무명의 동양인 디자이너에게 가해지는 무언의 갑질 분위기 속에서 그녀는 당당하게 요구했고, 디자이너의 에너지와 데칼코마니 같은 프린트에 반한 바이어는 아시아에서 온 초짜 디자이너 옷을 전시장 마네킹에 입혔다.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려는 디자이너에게 전화가 왔다. “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니?”라고 해서 “왜?”라고 물었더니 “방금 비욘세가 왔다 갔어. 너의 옷을 다 사 갔어”라는 거예요. “오마이갓” 속으로 탄성을 질렀죠. 그리고 편집숍에서 옷을 더 두고 가라는 거예요.”


부랴부랴 귀국을 하루 연기하고 캐리어 들고 편집숍에 가서 나머지 옷을 다 걸었다. 그런데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그녀에게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은 절대 믿지 말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CCTV를 통해 비욘세를 확인했다. 이후 화려한 문양이 수 놓인 라이더재킷을 입은 비욘세 사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삽시간에 퍼졌다. 140만 원대 재킷이 순식간에 350만 원으로 뛰었다. 패리스 힐턴, 앤 해서웨이 등 유명 인사들이 연달아 그의 옷을 입었다. 물론 그녀는 아다리가 잘 맞았다고 표현했지만, 열정과 도전이 없었다면 얻지 못한 기회였다.


그녀의 비즈니스 형태를 보면 상당 부분 럭셔리 비즈니스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4대 패션위크에서 바잉을 하고 서울을 찾는 바이어들이 원하는 것은 4대 패션위크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리디어스가 바로 해외 바이어들이 찾는 기준에 부합하는 K-패션 브랜드가 아닐까. “결국 디자이너 브랜드는 가장 나다운 것이잖아요. 그리디어스가 저다운 것에요. 기본적으로 많이 팔고 싶지 않아요. 그런 역량도 안되고, 대량 생산하는 것도 감당이 안 돼요. 10년 넘게 회사에 다녀 보니까 모든 빚은 바로 재고에요. 앞에서 팔고 뒤에서 밑지는 거죠. 그렇게 장사하면 부도나는 거예요. 그런 상황이 싫어서 저는 오더 메이드로 옷을 팔아요. 고객이 기다리지 못하면 안 팔면 돼요. 무조건 손님에서 팔려고만 해서는 안 돼요. 사고 싶게끔 만들어야죠. 웨이팅을 걸고 판매된 옷에 고객의 이름표를 붙이죠. 기다려야지만 살 수 있다는 인식이 심어주는 것에요. 기다림의 미학은 럭셔리 패션의 또 다른 매력이거든요. 스토리도 중요해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블랙옷을 입고 있으면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 화려한 프린트의 그리디어스는 고객들에게 말할 거리를 만들어 주잖아요. 그리디어스를 보고 ‘재킷이 너무 튄다.’ ‘이쁘다’라고 말하지 ‘진짜 이상하다’라고 말하지 않거든요”


디자이너 박윤희


'프린트 퀸' 박윤희는 K-패션의 중요한 퍼즐 조각



그녀는 추구하는 시그너처는 룩은 무엇일까? “샤넬 하면 트위드가 생각나고, 디올 하면 뉴룩이 생각나는 것처럼, ‘그리디어스’는 아트워크가 생각나게 만들고 싶어요. 디자이너 브랜드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잖아요. 실체는 프린트와 패턴이지만 본질은 시각적으로 전해지는 강력한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야 옷에 대해 수다를 떨 수 있는 주제가 생기거든요.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컬러가 있어요. 프린트 외에도 시각적인 행복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아트워크 작업을 해 보고 싶어요”


시즌마다 주목받는 그녀의 컬렉션은 변화무쌍한 패턴과 섬세함에 초점을 맞추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비주얼 실루엣을 완성했다. 그녀만의 세계적인 비전과 영감으로 표현된 진보적인 그리디어스 컬렉션은 독특한 프린트와 패턴으로 K-패션의 한 장르가 되었고, 이제 수많은 국내외 셀러브리티가 사랑하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했다. 분명 박윤희는 자신만의 장르를 가진 아티스틱 디렉터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디어스’로 명명된 새로운 장르는 앞으로 글로벌 K-패션의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될 것이다.


태생적인 탐미주의자 박윤희는 아마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사실 자신이 잘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그녀 표현처럼 아다리가 잘 맞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어릴 적 꿈인 디자이너가 되어 워크홀릭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 밑바탕에는 그녀의 꿈을 응원한 가족의 힘이 가장 컸을 것이고, 열정과 끈기를 통해 자신을 단련시킨 자기최면도 한 몫했을 터이다. 세계 패션계가 K-패션에 주목하고 있는 지금, 그녀의 자신만의 장르와 방식으로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샤넬처럼 자신의 죽은 뒤에도 다른 사람이 계속 이어가 대중들의 사랑을 계속 받는 헤리티지 브랜드 ‘그리디어스’를 원하는 그녀의 꿈이 프린트와 함께 세계 럭셔리 시장에서 활짝 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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