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분노가 강력한 브랜드 만든다

2021-03-31  

패션의 미래 03


분노로 시작한 브랜드는 강력한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영세 자영업 형태로 브랜드 창업을 통해 거대한 글로벌 브랜드를 만든 두 명의 리차드Richard를 살펴보자.


한 명은 작은 레코드 가게로 창업해서 버진 레코드와 버진 항공사 외 수십 개 기업을 경영하는 버진 그룹의 창업주 리처드 브랜슨Richard Branson이고, 또 한 명은 작고 허름한 옷가게 하나로 시작해서 3개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어반 아웃피터스 그룹Urban Outfitters의 창업자이자인 리처드 헤인Richard Hayne 이다. 이 두 명은 지금까지 이 책에서 말했던 브랜드 창업을 자신의 분노를 통해 성공으로 증명해 보인 사람이다.


먼저 리차드 헤인부터 소개한다면, 그가 소유한 아웃피터스 그룹은 단돈 4,500달러로 시작해서 현재 어반 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 안트로폴로기(Anthropologie), 자유인(Free People) 등 세 개 브랜드로 성장해 현재 수 백개 매장이 있으며, 북미는 물론 유럽까지 진출했다.


원래 헤인 회장은 기업가가 아니었다. 월남전쟁에 대해 반전반핵을 외치는 히피 청년이었다. 그는 월남전이 끝나자 데모를 그만두고 자신의 가치와 철학을 실천하고자 알래스카로 자원봉사 운동을 하러 떠났다. 하지만 너무 춥고 상황이 열악해서 1년 만에 봉사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그때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의 와튼 MBA 스쿨을 다니고 있던 헤인 회장의 친구 벨에어는 '창업'이라는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는데, 그의 숙제는 신규사업을 창업하거나 창업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당시 헤인 회장과 아내는 대학생들이 입을 옷과 잡화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벨에어는 그에게 학교가 있는 필라델피아로 내려와 창업하면 자신이 도울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학점도 받을 수 있다며 동업을 제안했다. 그래서 허름한 300달러 짜리 월세 가게를 구한 후 헤인 회장은 알래스카 봉사 사례금 3,000달러와 벨에어가 출자한 1,500달러 돈을 합쳐 말 그대로 영세한 창업을 했다. 그의 반전반핵 정신은 환경운동을 포함했다.


1971년 펜실베니아 대학교 앞에 '자유인(Free People)'이라는 이름의 허름한 옷가게가 아웃피터스 그룹의 시작이었다. 브랜드 '자유인'은 무엇보다도 헤인 회장이 살아왔던 길과 철학 그리고 가치를 나타내는 이름이었다. 상품도 대기업의 대량생산된 옷이 아니라 히피 타입의 의류와 양초 등 생활 소품을 팔았다. 물론 판매하는 옷들은 모두 헌 옷들이었다. 그 당시 트렌드도 히피식 복장이었기에 신상품보다는 오히려 구제상품이 반응이 좋았다. 인테리어는 인근 차이나타운 쓰레기장을 뒤져 찾은 것을 새롭게 색칠하여 사용했다.


장사는 잘되었고 1975년 '자유인'은 '어반 아웃피터스'로 이름을 바꾸고 600평 매장의 필라델피아 중심가 상권으로 진출했다. 마침내 1987년에는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에 진출했고, 그렇게 시작한 그의 브랜드 숲은 울창하게 세계를 뒤덮게 되었다. 헤인 회장의 전쟁과 자연파괴에 대한 분노를 통해 가장 자기다운 매장과 브랜드를 만들어서 자신의 성장과 함께 브랜드를 성공시킨 대표적인 브랜드다.


[photo by 김훈호 / (사)세상을 품은 아이들]


1970년 20살의 젊은 나이로 동네 레코드 가게를 창업해서 지금의 버진 그룹을 만든 리처드 브랜슨도 자기 취향과 스타일을 창업과 아이템에 접목해서 성공한 사례다. 수백 개의 버진 브랜드가 있지만 가장 독특한 창업 이야기는 1984년 세운 버진 애틀란틱 항공사다. 당시 리처드 브랜슨은 신혼여행을 가려고 항공권 예약을 하다가 브리티시 에어라인 항공사 직원과 싸우게 되었다.


화가 난 리처드 브랜슨은 항공기를 임대했고 그 자리에서 티켓이 없는 사람에게 티켓을 팔았다. 그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항공기 두 대를 빌려서 항공회사를 차렸다. 지금은 세계 최초로 민간 우주선 여객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리처드 브랜슨은 자신이 어떻게 브랜드를 만드는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각각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비즈니스 회사를 만들고 싶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일을 해나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시장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이 관건이다."


참고로 리처드 브랜슨은 난독증과 고등학교 교육 시스템의 불만으로 중퇴를 했다. 이처럼 경영과 브랜드에 관해서 공부하지 않은 그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방향을 제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어떻게'라는 도전 방식이다. 그는 자신의 창업과 비즈니스에 관한 '어떻게'를 자신의 저서인 《비즈니스 발가벗기기》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비즈니스란 사람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다. 단순히 내가 해야 할 일, 나의 관심사, 나의 일상이 나의 비즈니스다. 비즈니스는 창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시작은 항상 텅 빈 캔버스다. 그 위에는 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 비즈니스로 돈을 벌 수 있느냐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자부심을 안겨줄 수 있는가이다. 내게는 비즈니스의 비장 카드가 있다. 나는 가치가 있는 비즈니스라고 생각되면 사람들이 내 의견을 수용할 때까지 끈질기게 설득한다."


리처드 브랜슨은 자신이 뛰어드는 사업 영역은 불의하고 부조리한 시스템을 파괴하기 위해서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버진 그룹의 목적을 이렇게 쓰고 있다.


리차드 헤인과 리처드 브랜슨은 구멍가게에서 시작해서 글로벌 브랜드가 된 전형적인 브랜드 창업주의 모델이다. 그야말로 사회 부조리와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자신의 이념과 철학을 그대로 상품에 투영하여 의미와 가치로 만든 브랜드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분노에 의해서 만들어진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 시절의 초기 PC는 기업용 컴퓨터 운용 시스템을 그대로 모방했다. 그래서 명령어를 배워서 PC를 다루어야만 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명령어를 외워서 사용하는 PC에 대해서 '쓰레기'라고 화를 냈고, 결국 자체적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만을 장착한 컴퓨터 매킨토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 폰의 발전도 스티브 잡스의 짜증과 분노에 의해서 이렇게 발전을 했다.


분노에 의해서 만들어진 브랜드는 강력해진다.
왜냐하면 브랜드를 구매하는 사람은 소비자가 아니라 동지로서 응원하기 때문이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소비자의 가치를 결집한다.




Project 03 / 안 팀장에게
우리는 도시를 떠나 250킬로미터 떨어진 그 어딘가에 있지. 그 어딘가로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야. 마치 북극에서 나침반을 들고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북극 풍경은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하얗고 푸른 얼음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녹색, 파랑 그리고 회색만 있는 이 광야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없어. 공간에 대한 경외감과 무력감으로 나는 바다 위에 떠 있는 플라스틱 생수통 같은 기분이야.


자전거 페달을 밟고 앞으로 가고 있지만, 실상은 거대한 힘에 이끌려 어디론가 빠져드는 느낌이야.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기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 평생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처음으로 정글에 들어가는 기분이 이런 것이 아닐까? 두려움과 해방감, 내 감정도 이 중간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 같네.


[photo by 김훈호 / (사)세상을 품은 아이들]


다음 도시까지는 100㎞를 비포장도로로 가야 해. 우리를 따라온 베이스캠프 차량에 장착된 위성 전화로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안 팀장의 메일을 모두 읽어 보고 답신을 하고 있어.


며칠 전 몽골 자전거 여행에서 나의 인생을 흔들어 깨운 사건이 있었어. 처음으로 들었던 늑대들의 합창은 늑대인간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효과음이 아니었어. 직접 들어보니깐 내가 영화에서 들었던 늑대울음은 컴퓨터 조작음이라는 것을 알았지. 야생늑대의 하울링은 시베리안 허스키나 사모예드의 하울링과는 완전히 달라. 유튜브에서 보는 개들의 장기자랑 같은 울음이 아니야. 개들은 그냥 하울링을 하는 것이지만 늑대는 자신의 위치와 무리의 힘을 보여주고 먹잇감을 알려주는 하울링이야. 메시지를 느꼈어. 그것도 합창으로 듣는 늑대 울음은 압도적이었어.


도로 근처에서 저녁 캠프를 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늑대의 하울링을 장난기 많은 친구가  따라했다가 근처에 있던 수십 마리가 늑대가 같이 밤새도록 하울링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잠을 자지 못했어.  모두 불 근처에 나와서 뜬 눈으로 저녁을 보냈어. 늑대 하울링 소리는 숲속에서는 9Km, 일반 평지에서는 16Km까지 들을 수 있다 하는데, 이 근방에 있는 늑대들이 동시에 울었던 것 같아.


그런데 다음 날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총을 들고 있는 몽골 사람과 딱 보아도 사냥하러 온 관광객들이 우리에게 찾아왔어. 그들은 우리 쪽으로 걸어와서 어제 야영을 하면서 늑대 하울링을 얼마큼 가까이서 들었는지 물어보았어. 장비빨로 완전무장한 관광 사냥꾼의 자동차와 말들이 신기했던 아이들은 차를 구경하다가 뒤편에 늑대의 가죽을 보면서 완전히 놀랬지. 은빛 회색 늑대의 가죽이 쌓여 있었지.


몽골 늑대 사냥꾼은 우리가 앞으로 본격적인 늑대 출몰 지역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고, 절대로 늑대 하울링을 따라 하지 말라고 당부하더군. 우리가 위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도 늑대를 유인하기 위해서 하울링을 하는데 헷갈린다는 거야. 그렇게 경고 아닌 경고를 하고 그들은 자동차와 말을 타고 먼지를 날리면서 산 쪽으로 들어갔어.


다음날 우리는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데 도로 근처에 가죽이 벗겨지고 뼈만 남아 있는 동물의 시체 3마리를 보았어. 이미 까마귀와 다른 동물의 식사가 되어버렸기에 형체를 알 수 없었지만, 주변에 불을 피운 흔적과 바닥에 떨어진 자동차 기름 흔적으로 아마도 어제저녁에 보았던 늑대 사냥꾼들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 늑대 사냥을 스포츠로 생각해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 살아있는 늑대를 한 번도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지만 이렇게 죽은 늑대를 보니 이상한 감정이 들었어.


어제 저녁 야영지에서 또 한 번 늑대의 하울링이 들렸어. 이번에는 좀 멀었지만 여러 마리가 함께 울었지. 나는 모닥불 근처에서 차를 마시다가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늑대 하울링으로 따라 했어. 그런데 세품아 명 대표님이 내 옆에 앉으면서 이렇게 말하더군.


"그렇게 작게 하면 안 들려요. 이렇게 해야죠!'라고 말하면서 아주 큰 목소리로 늑대 하울링을 했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 늑대 사냥꾼들이 하울링을 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갑작스러운 명 대표님의 돌발 행동에 모두가 당황했어.


명성진 대표는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이렇게 말하더군.


"사냥꾼을 방해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어.


"늑대인간이 된 적이 있었나요? 사람들은 저 아이들을 모두 늑대처럼 대하죠. 그들이 보기에 늑대랑 비슷하죠. 하지만 그냥 인간에요.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아이들과 늑대의 팀워크를 배우고 있습니다. 협력하고 인정하고 공감을 배우고 있어요. 이렇게 몽골을 여행하면 본능적으로 협력을 배워요. 교육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안에 있는 영혼으로 함께한다는 것을 배우죠. 저 친구들은 그런 협력과 조화를 가정에서 배우지 못했어요. 이 친구들이 몽골에서 경험하는 것은 소속감이죠."








나는 명성진 대표의 말 때문에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 모두가 잠을 자기 위해 텐트 안에 들어갔지만 나만 남아서 모닥불을 지키고 있었어. 왠지 멀리서 나를 본 늑대 한마리가  내 옆으로 올 것 같은 착각 때문에 계속 오지 않을 늑대를 기다렸어. 이상한 상상을 했지.


나는 그때 분노를 느끼고 있었어. 아침에 만났던 늑대 사냥꾼에 대한 분노는 아니고,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분노였어. 나는 그동안 늑대 사냥꾼처럼 살았던 것 같애. 어떨 때는 소비자를 늑대처럼 생각해서 그들의 발자국과 동선을 찾아서 미끼를 걸어 만들어 놓고, 또 어떤 때는 가짜 늑대 하울링을 만들어서 그들을 유인해서 포획했던 것 같아.


지금까지는 나는 경쟁전략과 비어있는 시장의 포지셔닝이라는 마케팅으로 브랜드를 론칭하고 리뉴얼을 했지. 암튼, 이번에 내가 준비하는 스포츠 브랜드는 어떤 가짜 하울링을 내는 브랜드가 아니라 진짜 그들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나를 향한 내 안에 있는 분노 꺼트리지 않으려고 해.


안 팀장도 쓰레기장에서 느꼈다는 그 분노를 꺼트리지 마. 창업한다면 바로 그 불씨가 우리를 브랜드가 되게 하는 힘이 될 거야. 영국 가디언 기자가 바디샵의 창업자 애니타 로딕에게 어떻게 이런 브랜드를 만들었느냐고 질문을 했지.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 "우리가 비즈니스를 하는 방식, 우리가 제품을 만드는 방식, 우리가 원료를 공급받는 방식,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다른 것입니다."


안 팀장이 환경 파괴를 하는 옷에 대한 분노, 그것이 에너지원이 되어서 브랜드를 움직이는 비즈니스의 힘이 될 거야. 나는 안 팀장이 예전에 나처럼 타협하지를 않기를 바라. 매출, 경쟁상황 그리고 힘 있는 직원들의 의견들. 창업주의 비전과 목적을 흔드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성공과 성장의 타협이야. 안 팀장이 정말로 환경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안 팀장의 분노를 이해해야 해.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러쉬', 고래를 살리자는 '더바디샵', 대기업의 환경 파괴를 반대하는 '파타고니아'. 이런 브랜드를 캠페이닝 브랜드(Campaigning Brand)라고 하지. 캠페인Campaign의 어원은 캄푸스(Campus)로 평원이라는 뜻이지. 로마 시대에서는 전투를 평원에서 했기에, 캠페인은 군사작전을 뜻하는 거야. 그래서 캠페이닝 브랜드는 이벤트 홍보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거대 세력에 저항의 의지로 전쟁을 펼치는 브랜드야. 안 팀장이 하려는 브랜드의 정체성은 바로 캠페이닝 브랜드지. 그것이 하울링howling(울부짖는, 휘몰아치는)하는 브랜드야.


안 팀장의 말대로 업사이클을 하는 친환경 착한 브랜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 편에서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안 팀장의 분노에 대해서 고객들이 응원을 해야 해. 착한 브랜드가 아니라 화난 브랜드가 되어야 해.


몽골 자전거 여행 중에 윤 시온


정인기 기자 ingi@fi.co.kr
권민 객원 에디터
unitasbran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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