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투자하는 섬김의 리더십

2019-12-15 황연희 기자 yuni@fi.co.kr

2019 올해의 패션인 l 권오일 대명화학 회장


느슨한 연방주의를 추구하는 키다리 아저씨
M&A 귀재에서 패션산업 미래 위한 큰손으로


20여개의 패션 및 관련 기업을 인수, 투자하고 있는 대명화학의 권오일 회장을 ‘올해의 패션인’으로 선정했다


올해 패션시장은 한마디로 최악의 불황으로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 경영자들의 중론이다. 진정 시장 상황에만 원인이 있는 것인지,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무대가 글로벌과 e-커머스로 변화하고 뉴플레이어들이 등장해 활개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패션경영인들은 과거 화려했던 리즈시절의 해법만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패션인사이트>는 실력있는 젊은 경영자들을 선발해 이들이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인프라를 지원하고, 글로벌로 활동 무대를 옮겨가는 비전을 심어줌으로써 큰 큐빅을 완성하고 있는 권오일 대명화학 회장을 2019년을 빛낸 ‘올해의 패션인’으로 선정했다. 변화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해 젊은 사업가들과 호흡하며 패션산업의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을 펼치고 있는 그의 열정을 존중하며, 이를 우리 패션산업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고자 한다.


권오일 회장은 패션업계는 물론 유통, 금융, 경제계에서도 관심이 높은 인물이지만 ‘얼굴없는 패션 재벌’ ‘은둔의 M&A 큰손’이라는 별칭만 있을 뿐 외부에 얼굴이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2006년 코웰패션을 인수하면서 패션업계에 발을 들였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코웰패션, 케이브랜즈 등 관계사를 출입한 본 기자도 권오일 회장의 얼굴을 모르는 것은 물론 그의 경영철학에 대해서도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인사이트>가 올해의 패션인으로 권오일 회장을 선정한 것은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시대에서 그의 경영 방식이 충분히 혁신적인 경영 방식이라 판단했고, 소유하기보다 투자와 지원을 통해 진정한 젊은 사업가를 육성하고자 하는 그의 경영철학이 귀감이 된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느슨한 연방주의’를 추구한다는 권오일 회장의 경영철학이 패션시장에서 어떻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현재’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인물임은 확실하다.   

◇ M&A의 귀재 패션업계에 눈독


권오일 회장에 대한 경력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지만 M&A 업계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은 최고경영인이다. 20대 후반 삼일회계법인에서 개념도 정확히 몰랐던 M&A팀에 근무하며 회사 투자 및 인수를 경험했던 그는 2000년대 중반 창업투자회사 대명화학(구 KIG)을 인수해 투자업을 시작했다. 그가 진행했던 M&A 건수만도 수백건에 달하며 그 중에는 대박을 터트린 것도 여럿이지만 반대로 손해를 입은 케이스도 존재한다고 한다.


그는 지난 2006년 코웰패션을 인수하면서 패션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케이브랜즈, 모다아울렛, 패션플러스까지 업계 1~2위 대상보다는 경영이 어려워 난항을 겪고 있는 기업들을 사들였다. 패션플러스를 인수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존재감은 타인의 부러움을 살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인수한 기업들의 내부 재정, 관리 상태를 파악하고 고장난 엔진은 교체해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었다. 그렇다고 직접 경영일선에 나서지 않고 회사를 가장 잘 아는 기존 대표이사의 책임경영을 고집함으로써 단기간 내 정상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권 회장의 투자로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목재 어선이 원양어선으로 거듭난 셈이다. 2005년 576억원이었던 코웰패션의 외형은 올해 4000억원대 매출로 외형이 성장했고 관계사 수만 9개다. 캐주얼 마켓에서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케이브랜즈 역시 케이에프, 대명월드패션 등의 관계사를 설립하며 카테고리를 넓히고 있다.


모다아울렛은 대명화학이 인수한 2010년 당시 대구에서만 유일하게 1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이후 진주점, 행당도점, 구리남양주점, 인천점까지 15개로 매장을 늘렸고 최근 롯데 부평점을 인수한 부평점과 충주점을 오픈했다. 내년에는 새로 조성하고 있는 김제 코웰패션 물류단지 내에 모다아울렛을 오픈할 계획이다. e-커머스를 담당하고 있는 패션플러스는 유통, 패션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굴하지 않고 올해 30% 신장률을 유지하며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권오일 회장은 이들 네 기업을 인수한 이후에 각각 독립 경영 체제를 유지하면서 본인의 경영 참여권을 최소화했다. 간섭보다는 자율 경영권을 보장함으로써 각자가 성장할 수 있는 조력자로서 역할에 충실했다. 기존의 패션기업들이 기업이나 브랜드를 인수할 경우 대부분 자사 내로 흡수, 합병했으나 권오일 회장은 인수를 했지만 합병은 하지 않고 연방주의 경영을 고수했다. 성장률이 높아진 기업은 오히려 기존 경영인의 지분을 높여주기도 했다.


케이브랜즈의 캐주얼 ‘닉스(왼쪽)’와 2020년 하이라이트브랜즈가 신규로 론칭하는 내추럴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웨어 ‘코닥’


◇ 기업을 낚는 어업에서 사람을 키우는 농업으로!


최근 2년 사이 권 회장의 경영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2017년 말 인수한 PWD를 시작으로 신흥시장에 눈을 돌린 그는 지분 투자와 신규 법인 출점 방식을 택했다.


기존 엔진을 교체해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이 아닌 프로 농부들을 모아 땅을 일구고 씨를 뿌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농장주로 업종을 바꿨다. 이 같은 노선 변화를 꾀하기 위해 과거에는 기업을 인수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면 지금은 농사를 지을 사람, 플레이어와 묘종을 선택하는 것에 더 큰 공을 들이고 있다. 또 플레이어를 도울 탄탄한 인프라까지 갖춰 변화된 환경에 대응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마치 될성 싶은 떡잎을 발굴해 브랜딩, 경영관리, 세일즈, 소싱인프라, SCM, 마케팅, 재무 등을 지원함으로써 라이징 스타를 발굴하는 패션업계 SM과 같은 매니지먼트 기업으로 변화를 추구했다. 이는 본지 <패션인사이트>가 강조하는 BAMP-BIZ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PWD(대표 박부택)를 통해 온라인 마켓의 플레이어를 모으고 있다면 신규 하이라이트브랜즈(대표 이준권)는 브랜딩 설계 기획자들의 연합이며, 모던웍스(대표 김진용)는 내부 브랜드 파워를 공고히 해줄 라이선서 역할을 담당한다. 새로 설립한 WWB(대표 권창범)의 행보도 기대된다. 또 생산 소싱력을 갖춘 다니엘인터패션과 마스, 디자인 아웃소싱을 책임질 모노그램, 패션 물류를 관장할 로지스밸리SLK 등 레이어와 인프라의 경쟁력을 높이며 큰 큐빅을 완성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MZ세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스트리트마켓의 오아이스튜디오(대표 정예슬), 레이어(대표 신찬호), 비바스튜디오(대표 이영민), 키르시(대표 허태영), 커넥터스(대표 김태희) 등에도 자금을 투자함으로써 미래 신수종 사업을 육성하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미 글로벌 기업과 무한경쟁을 피할 수 없는 패션마켓의 환경을 감안하면 개인의 실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이 불가능하기에 인프라 구축에 본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투자가 계속되자 내부 상황이 어려워진 패션기업은 물론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 경영자들도 권오일 회장에게 도움의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가 무조건 착한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투자자이며 경영자이다. 성장 가능성이 약한 브랜드에게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 냉철함이 있으며 될 만한 브랜드에는 적극 투자하는 승부사 기질도 있다. 권오일 회장을 두 번이나 만났다는 한 패션 경영인은 끝내 투자를 받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투자 기준이 궁금했다. 그의 생각을 직접 전해 듣지는 못했지만 성장 가능성을 보유한 기업, 자신이 도움을 주었을 때 잘 될 수 있는 기업, 하지만 사람 좋은 경영인과 파트너십을 맺길 원한다고 한다.  


대명화학 판교 본사에는 코웰패션, 케이브랜즈, 패션플러스, 모다아울렛, 하이라이트브랜즈 등이 모여있다


◇ 수평적 조직 문화로 건강한 기업 육성


권오일 회장을 ‘올해의 패션인’으로 선택한 데는 투자자, 혁신적인 사업 모델을 제안하는 경영인으로서 모습만을 높이 산 것은 아니다. 권 회장에 대해 외부 알려진 바는 많지 않지만 그와 함께 일하고 있는 경영자들은 그의 리더십에 대한 인정도 빠트리지 않는다.


현재 대명화학 그룹 내에 25명 가량의 패션기업 대표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모두 각자의 경영 능력을 펼치고 있는 대표들이다. 정통적으로 국내 기업들은 오너 중심의, 수직 계열화된 조직을 고수하려고 한다. 모든 권한이 경영자에 집중되어 있는 중앙집권제를 선호한다. 하지만 권 회장이 지금 펼치고 있는 경영철학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스스로가 자신의 컬러를 펼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연방주의 체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내부 경영진들에게도 ‘느슨한 연방주의’ 경영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주변인들은 권오일 회장을 ‘한국의 워렌버핏’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소박한 회장님’이라고 칭했다. 또 다른 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권오일 회장은 회사 경영에 있어 ‘조직’ 운영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하는데 무엇보다 직원들간 소통이 원활하도록 수평적 조직 운영을 강조하며 자율적인 의사 개진 및 공유, 투명경영을 통해 해법을 찾으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경영자에게는 직원들의 문제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박한 옷차림에 본인의 작은 사무실보다 비어있는 자리를 선호할 만큼 격식보다 실리를 추구한다. 최근에는 스트리트 마켓의 젊은 대표들과 시간 보내기를 좋아한다는 그는 배움의 제한을 두지 않고 스트리트 마켓에 대해서도 노하우를 습득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권오일 회장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패션기업 경영자들의 성공스토리를 답습하지않고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가고 있는 그가 어떻게 패션 생태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을지 궁금증이 증폭된다.


지난 6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제1회 도쿄포럼’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과 마윈 알리바바 그룹 공동창업자의 특별대담이 진행됐다. 이 날 대담에서 손정의 회장은 2000년 이제 갓 설립한 알리바바에 2000만 달러를, 그것도 10분 미팅만으로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마윈의 ‘꿈과 비전’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젊고 약간 미쳐있으되 정열적인 기업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두 기업가처럼 권오일 회장 역시 패션업계에서 대성할 늑대를 알아볼 수 있는 늑대의 자질이 충분할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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