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 시몬스와 ‘캘빈 클라인’의 아름답지 못한 이별
2018-12-31홍석우 패션 에세이스트 yourboyhood@gmail.com

2018년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패션계 '빅 뉴스'는 아마 라프 시몬스가 '캘빈 클라인'을 떠난다는 뉴스가 아닐까 한다. 미국 시각으로 12월 21일 금요일에 나온 뉴스가 전한 '팩트'는 이렇다. "라프 시몬스가 캘빈 클라인을 떠날 예정이며, 내년 2월 예정의 패션쇼는 열리지 않는다."

2017년 봄/여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캘빈 클라인'의 전체 컬렉션 총괄을 맡고 만 2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해고됐다. 동시대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로 불리며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꼽힌 라프 시몬스는 1995년 데뷔 이래, 지금까지 동시대 패션계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겨왔다.

1968년생 라프 시몬스는 21세기 남성복 실루엣과 브랜드의 접근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준 인물로 꼽힌다. 가구 디자이너로 출발한 그는 1995년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출시했지만, 전문적으로 패션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안트워프 왕립 예술 아카데미의 패션 부문 학장 린다 로파의 컨설팅 아래 남성복 디자인을 시작했다.

파리 패션위크 데뷔 이후 2000년대 초반 유럽 소도시 10대 청년들의 서브컬쳐와 고독한 정서를 옷 안에 표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그가 만든 밀리터리 아이템의 대표주자 MA-1 재킷은 몇 시즌에 걸쳐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요즘 유행하는 '오버사이즈 실루엣'은 실제로 이미 라프 시몬스가 2000년대 초반 컬렉션에서 섭렵했다.


다양한 패션 하우스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온 ‘라프 시몬스’가 최근 ‘캘빈 클라인’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에서 경질됐다

◇ 라프 시몬스와 캘빈 클라인의 만남, 비극의 시작


2005년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을 즈음 그는 내·외부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다. 인상적인 그래픽과 복잡한 세부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대신, 최소주의에 기반을 둔 매끄러운 실루엣과 절제한 색을 주로 선보이기 시작했다.
다소 혼란스럽던 '질 샌더' 브랜드를 재정립한 후 사임한 2012~2013년 가을/겨울 시즌 이후에는 그는 유명한 프랑스 패션 하우스, '디올'의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오른다.

강렬하고 화려한 존 갈리아노의 '디올'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라프 시몬스의 발탁은 충격 그 자체었다. '질 샌더'와 '디올'을 거치며 라프 시몬스는 자신보다 어린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경외의 대상이 되었다. 스트리트웨어와 고급 기성복이 만나기 시작한 2010년대 이후, 밀레니얼과 창작자들에게 영향과 영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14년 '디올'에서의 성과로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의 국제상을 수상했다. 이후 라프 시몬스는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인다. 2016년 8월, '캘빈 클라인'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에 임명된 것이다.

다양한 패션 하우스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왔지만, 세계 대중 시장에서 높은 매출을 올리는 '미국 패션 브랜드'를 지휘하는 것은 유럽 출신 디자이너에게도, '캘빈 클라인'에게도 큰 모험이었다.

실제로 이때까지만 해도, 특히 '캘빈 클라인 진'은 패션계에서 큰 감흥이 없던 브랜드였으나 라프 시몬스 덕에 재조명을 받았다. 필자 역시 개인적으로도 그가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로서 '캘빈 클라인'의 최고급 컬렉션 라인을 전개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입고 더 많은 매장이 있는 '청바지' 라인을 어떻게 풀어낼까 궁금했다. 허나, 중저가 시장 소비자들은 은근히 보수적이라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 없고, 높지 않은 가격대에서 품이 많이 드는 시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시 업계의 정설이었다.

라프 시몬스의 '캘빈 클라인'은 '미국의 실용주의와 명랑함을 대표한다'는 가치를 내걸고 최고급 컬렉션 이름을 '캘빈 클라인 205W39NYC'로 명명했다. 그 후 라프 시몬스의 첫 행보는 2017년 선보인 '캘빈 클라인 진'의 캠페인 광고였다. 배경부터 옷 곳곳에 들어간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 작업은 라프 시몬스가 생각하는 가장 미국적인 패션 디자이너의 미래를 선언하는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캘빈 클라인'과 라프 시몬스의 '모험'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끝이 났다.


라프 시몬스가 선보인 ‘캘빈 클라인 205W39NYC’ 컬렉션

◇ 라프 시몬스 경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숙명 대변


'랄프 로렌'과 '제이크루' 같은 대형 패션 브랜드조차 밀레니얼과 모바일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며 성장세가 꺾이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라프 시몬스와 '캘빈 클라인의 결별'이 전해지기 한 달 전 '캘빈 클라인'을 소유한 모회사 PVH의 에마누엘 키리코 최고경영자는 '캘빈 클라인'의 재무 성과가 예상을 밑돈다고 주주 회의를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2018년 3분기 캘빈 클라인 전체 매출은 전 분기 대비 2% 성장한 9억 6,300만 달러를 기록했다. PVH의 주식은 올해만 약 35% 하락했다.

크레이티브 디렉터가 경질 형식으로 사임하는 경우는 과거 타 패션 브랜드의 선례에 비춰볼 때 상당히 이례적이다. 일반적으로 디렉터의 '창조성'을 존중하는 패션 업계의 관례를 볼 때, 경영진의 공개 비판 역시 처음 있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서로 작별하는 길을 택했다. 라프 시몬스가 바꾼 '캘빈 클라인' 최상위 컬렉션은 고급 기성복 구매자들과 매체 관계자들에게 호평을 얻었지만 매출을 올려야 하는 대중 소비자까지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캘빈 클라인'에는 어떠한 변화가 기다리고 있을까? '캘빈 클라인 205W39NYC 컬렉션'은 중단되고 더 큰 상업성을 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부임할 전망이다. 전통적으로 브랜드 매출 견인차 구실을 한 '캘빈 클라인 진' 역시, 라프 시몬스와 앤디 워홀 재단의 협력 관계를 청산하고 다시 과거의 상업적인 분위기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라프 시몬스와 '캘빈 클라인'의 협력 관계가 예상보다 짧게 끝난 이번 이슈는 '패션'이란 숫자와 매출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냉정한 산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캘빈 클라인'을 지휘할 후임자 역시 대단한 성과 압박을 받을 것이다. '창조'와 '상업'의 경계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제시하고 매출까지 책임져야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고뇌는 이토록 무거운 위치에 있는 것이다.


‘캘빈 클라인’ 2018 광고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