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버튼’ ‘키미제이’ ‘얼킨’ 그리고 ‘민주킴’
2018-12-01홍석우 패션 에세이스트 yourboyhood@gmail.com
2019년도 봄/여름 서울패션위크 여성복 컬렉션 리뷰


의복의 고전화와 당대 최소주의 경향을 재해석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지금 서울 패션을 이끌고 있다. 컬렉션에 이름을 올린 디자이너들의 지난 몇 시즌을 솔직하게 말하면 격변하는 '유행의 연장선'이었다. 반면, 이번에는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내는 디자이너들의 면면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서울이 단순히 패션을 받아들이는 도시를 넘어서 고유한 스타일을 내세우고 전세계에 전파하는 도시로 변모하는 과정에 있다는 말도 과언이 아니다.

◇ 과거로부터 영감을 얻은 '푸시버튼'


박승건 디자이너는 영국패션협회와 서울시, 서울디자인재단이 맺은 패션산업 국제화 양해각서 교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런던패션위크 무대에 섰다. 색다르고 재미있는 컬렉션을 선보이는 '푸시버튼'에게 런던의 관대한 분위기는 제 몸에 맞는 재킷과도 다름없어 보인다.


'푸시버튼'의 힘은 '런웨이 컬렉션'에 있다. 모바일 문화와 소셜 미디어로 자기 브랜드를 시작하고, 심지어 컬렉션을 내세우는 디자이너가 부지기수인 세상이지만 '푸시버튼'은 직접 보고 즐길 때 비로소 그 감흥을 느낄 수 있다. 모델 걸음걸이부터 옆모습, 뒤로 갈수록 섬세하게 매만진 디테일, 찰랑대는 가죽 부츠의 금속 장식, 투명하게 비치는 후드파카 안에 반짝이는 새하얀 브리프 등을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전부 담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승건 디자이너는 고전적이다.


반대로 그는 가장 컨템포러리한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아이돌 그룹 소녀부터 경력 정점을 찍은 시대의 배우까지 '푸시버튼' 컬렉션 맨 앞줄에 앉은 유명인사들은 시작의 암전과 함께 집중한다. 가느다란 청바지와 앞 주름 바지의 절반을 잘라낸 모델이 핫팬츠와 미니스커트를 결합한 소녀 사이를 지나, 기다란 무대를 한 바퀴 돌 때, 뒤에서는 감탄이 들려온다. 이렇듯 패션계는 복고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으며 '푸시버튼' 역시 과거에서 영감을 받고 있다.


'푸시버튼' 런웨이 무대를 앞두고 모델들이 준비하고 있다

◇ 한반도 정세를 표현한 '키미제이'


화려하고 현란해 보이는 '키미제이'의 옷은 당대 청년문화의 과격한 요소의 집합으로 보인다. 다만 그 내면에는 디자이너 김희진이 태어나고 자란 서울과 그를 둘러싼 환경에서 마주한 사회의 단면이 겹겹이 쌓여있다. 옷을 이루는 스타일과 안에 담긴 본질이 결합한 타임라인이 모여 1990년대 학창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키미제이'의 컬렉션은 점점 발전하고 있으며 특히 그 '옷'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키미제이'는 이번 2019년도 봄/여름 컬렉션에 한반도의 급변하는 정세를 담았다. 수년 전만해도 절대 이뤄질 수 없을 것 같은 변화가 분단된 땅 양쪽에서 펼쳐지고, 파급이 세계로 번지는 모습을 기환(奇幻: 기묘한 변화, 또는 이상야릇한 환술)이라는 생경한 한자로 표현했다.


지난 봄/여름과 2018년도 가을/겨울 시즌부터 달라진 옷의 변화 또한 주목할 만하다. 갖은 형광부터 눈에 띄는 패치워크 장식, 오버사이즈 니트웨어에서 몸에 딱 붙는 테크노 시대의 감성으로 변모했다. 마치 군용 운동복에 스트리트 웨어의 감각을 담아 바꾼 듯한 남성용 상의와 숏 팬츠도 흥미롭다.


헤라서울패션위크 '키미제이' 런웨이 장면

◇ 지속가능의 가치를 담은 '얼킨'


이성동 디자이너는 최근 눈에 띄는 국내 디자이너 중 한명이다. 그가 전개하는 '얼킨'의 차별성은 디자이너의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술과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회화부터 이미지 작업을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컬렉션에 녹였다. 티셔츠부터 셔츠 드레스까지 '묶고', '겹치고', '덧대는' 섬세한 작업이 시즌을 거듭하며 꾸준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옷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착용성과 개성을 동시에 제안한다. 세일러복 혹은 해군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은 상의, '안전'벨트를 달아 길게 늘어트린 멜빵바지, 수영복 요소를 스웨트셔츠와 결합해 만든 헐렁한 실루엣은 어설픈 조화가 아니라 그대로 입고 싶은 한 벌이다.


전형적인 옷의 구조를 해체하고 이어 붙인다는 점에서 '얼킨'은 동시대 젊은 디자이너들의 '업사이클링' 가치와 나란히 한다. 붉은 니트와 데님 셔츠를 하나로 연결한 시도가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밀리터리와 스포츠 웨어의 결합은 유행을 따르기 요구하는 입맛 까다로운 고객과 구매자들에게도 먹힐 요소다.


피날레를 보며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와 그 팀은 얼마나 치열한 연구와 고민을 거쳤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동 디자이너는 '얼킨'이 생각하는 가치와 뜻을 함께하는 젊은 재능들이 모인 하나의 플랫폼을 만들고자 한다. 유행이 아니라 옷 자체를 연구하고 이미 존재하던 요소를 본인의 방식으로 해석해 보여주고 있다.


'얼킨' 19SS 컬렉션 런웨이

◇ 제너레이션 넥스트 '민주킴'


'민주킴'을 전개하는 디자이너 김민주는 패션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일찍이 '에이치앤앰'에서 대상을 수여 받았고, 'LVMH 어워드'에서 세미 파이널리스트까지 오른 재능이다.


'민주킴'의 컬렉션은 개인의 일상과 창작자의 환상이 결합한다. 치열한 패션 세계에서 타협하고 사그라지는 패션 디자이너들의 면면을 떠올리면, 쉽지 않은 도전을 해내고 있다.


그의 장점은 연구하고 그린 프린트와 패턴에 있다. '민주킴'의 판타지 또한 그림 작업에서 나온다. 부드럽게 나풀거리는 노란 새틴 드레스에 연이어 등장하는 어둡게 입술 칠한 모델이 입은 새까만 드레스는 복잡다단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한 소녀의 마음 속을 표현하는 듯 하다.


'민주킴'의 컬렉션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룩과 디자이너가 세우고 싶은 옷의 결정체다. 김민주처럼 작업하는 패션 디자이너를 서울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그의 창작에는 동시대 패션이 점점 잃고 있는 어떠한 향수가 있다. 컬렉션을 보고 난 후 유일한 염려는 '판매'다. 작업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민주킴' 19SS 컬렉션 런웨이

◇ '서울패션위크' 비즈니스적 성과 가시화


과거 서울패션위크는 '패션비즈니스'와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있었다. 하지만 외국 주요 패션 언론과 바이어 심사단이 선정하여 다양한 세계 진출 기회를 부여하는 '10소울'처럼 해가 지날수록 영향력을 지닌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130여명의 외국 유명 편집매장과 백화점 구매자들, 그리고 약 200여명의 외국 패션 언론 초대는 곳곳에서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서울패션위크에는 서구권과 중동 바이어들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 중견 바이어들도 다수 참석했다. 꾸준히 초청 받은 유명 매체와 매장들이 직간접적으로 서울패션위크를 소개하면서 일종의 '글로벌 낙수 효과'가 발생한 셈이다.


디자이너들이 '서울컬렉션'과 '제너레이션 넥스트'에서 새로 컬렉션을 선보이면 패션페어 '제너레이션 넥스트 서울'에서 바이어와 디자이너가 직접 만난다. DDP 내부와 외부를 넘어 서울 전역에서 패션 행사들이 열리는 사이, 일부 외국 바이어들은 기존의 도매 시스템을 따르지 않고 미리 생산한 제품을 다음날 바로 사가는 '씨 나우 바이 나우(See Now Buy Now)'를 실천하기도 한다.


까다로운 바이어들은 컬렉션을 한번 보고 서울의 패션을 선뜻 사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속해서 방문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그들의 구매 일정에 서울을 넣기 시작했다는 점은 비즈니스와 마케팅 두 측면에서 꾸준히 공들인 서울패션위크의 성과다. 이러한 시도가 점점 여물어간다는 점에서 이번 헤라서울패션위크가 거둘 수확의 열매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