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안법’ 발 등의 불 끄나
2018-01-02이채연 기자 leecy@fi.co.kr
새해부터 '섬유 의류 KC인증 의무' 없앤 개정법률 시행

‘공급자적합성확인’ 대신 ‘안전기준준수’ 신설해 관리
위해성 문제 발생 시 책임소재 논란은 여전
“원부자재 생산자 두고 최종 판매자만 책임 과중” 우려


패션업계를 들끓게 했던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이하 전안법)이 새해부터 KC인증·고지·비치 의무가 완화된 개정안으로 시행된다. 개정 전안법의 부속서와 세부 시행령, 규칙은 국가기술표준원이 주도해 올 2월경 나올 예정이다. 시행 유예기간 중 제조 또는 수입한 건에 대한 소급 적용은 하지 않는다.


전안법은 12월 20일 규제 강도를 낮춘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통과, 22일 본회의 의결만 남겨뒀었다. 하지만 여야가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연장을 두고 대립, 본회의가 열리지 못해 계류 상태서 표류하다 회기 마지막날인 29일 오후 속개된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개정법률의 핵심은 종전에 사전심사에 뒀던 규제의 초점을 사후관리 강화에 맞춰 중소상공인이 이행 가능한 수준으로 수위를 낮췄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성인용 섬유제품을 전기용품과 같은 ‘공급자적합성확인’ 품목으로 분류해 부과했던 KC 시험인증 및 표시, 해당 서류(시험성적서 등) 5년 간 비치 의무가 사라진다. 대신 ‘안전기준준수’ 항목을 신설, 의류와 같이 위해도가 낮은 제품을 전환관리하게 되며 안전기준준수 대상에 대한 안전관리제도 또한 신설하기로 했다.


세부 시행령과 규칙이 나와야 명확하게 대상 품목이 분류되겠지만 성인용 섬유제품 대부분이 안전기준준수 품목으로 분류될 전망이다. 유아동용 의류와 가죽제품, 피부에 직접 닿는 내의, 귀금속류의 경우 전안법 시행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사전 안전성 검증 절차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처음으로 구매대행과 병행수입에 대한 법률적 정의가 내려졌고 기존에 국내에서 판매가 되고 있는 동일 상품에 대해안전기준준수 의무 면제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구매대행업자와 병행수입업자의 경우는 안전기준준수에 대한 소비자 고지의무가 신설된다.


패션업계는 일단 발등의 불은 껐으나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위해성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최종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는 입장이다.


한 디자이너 브랜드 대표는 “개정 전은 물론이고 개정 이후에도 최종 판매자에게 안전관리 책임이 집중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패션기업 관계자도 “KC인증 의무가 사라진다고 해도 안전기준준수 확인 의무라는 것이 있다. 원부자재 공급처나 봉제 프로모션이 시험성적서를 주지 않는 한, 안전기준을 지켰는지 어떻게 확인하나. 결국 완제품을 판매하는 영세상인이 혹시 모를 문제에 대비해 KC인증을 받던지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이 동대문 시장에서 원부자재를 구매해 사용하는데, 완제품에 대한 화학적 후가공이 없는 한 봉제단계보다 원부자재 자체의 위해성 우려가 더 크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때문에 소상공인에게 ‘인증장사’를 할 것이 아니라 원료를 공급하는 대형사가 안전성을 검증 받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완제품을 사입해 판매하고 있는 리테일러들의 의견도 같다.


이에 대해 이재길 한국의류산업협회 총괄본부장은 “패션 제품은 원단부터 가공단계가 복잡해 어느 단계까지를 ‘소재’로 구분할 지 모호하기 때문에 모든 공정을 마친 최종 봉제품을 시험 대상으로 한다. 다만 원단, 원피 공급자가 KC 인증을 마치면 제조과정에서 나염, 워싱, 코팅, 프린트 삽입 등을 하지 않을 경우 재 인증은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지민호 국가기술표준원 연구사는 “제품의 위해도와 소상공인의 이행 역량에 비해 과도한 규제라는 업계의 의견을 반영해 세부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 발생하는 제품안전문제는 기업이 대비할 수 없는 유형의 리스크가 되고 있어 언론 이슈에 대응할 힘이 없는 중소기업에게는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 “전안법 시행 논란을 계기로 국제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안전관리와 심의 기준에 맞춰 긴 안목으로 실무적용 방법을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최종 판매자가 제조 과정에서 직접 사용하지 않은 다이옥신이나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 유해물질이 완제품 유통 단계에서 검출되면 판매자는 원인 자체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유해물질이 검출된 제품의 위해성 평가가 이뤄지지 않거나 실제 위해 사례를 밝히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자체 제품안전관리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전안법은 많은 피해자를 낳은 소위 ‘옥시 사태’를 계기로 사용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취지에서 기존 전기용품 안전관리법과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을 통합해 만들어졌다.


패션업계는 전안법이 제조와 유통 구조, 패션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만들어져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 채 다품종 소량생산, 빠른 속도가 생명인 산업의 경쟁력만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속도와 가격으로 승부를 보던 동·남대문 시장, 도매시장에서 제품을 수급하는 편집숍, 소호몰과 오픈마켓 셀러, 병행수입이나 구매대행업자 등 주로 소상공인이 인증을 위한 시간과 비용 부담으로 입는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국가기술표준원은 종전 전안법이 개정 없이 시행되면 동대문 소공인의 경우 KC 시험인증으로 생산원가의 5% 가량 인상요인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KC시험 인증기관인 KOTITI가 책정한 의류평균시험비용은 원단 1종류 당 7만원. 원단 2종류로 구성된 의류는 시험검사에 14만원이 들고 같은 원단일지라도 화학적 염색을 했다면 모두 따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의무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난달 열린 전안법 개정안 설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