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만남

2006-03-09 유재부 기자 jby@fi.co.kr

LG홈쇼핑이 디자이너들과 결별했다. 최근 LG홈쇼핑은 2년 간 동고동락한 조강지처 ‘서울컬렉션’과 간발의 차로 세컨드가 된 ‘스파’와 이혼했다. 물론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 패션사업부문 효율화 정책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맞벌이해도 살기 어려운 요즘, 디자이너들이 밥값을 제대로 못한 모양이다. 절친한 친구인 CJ홈쇼핑도 예외는 아니다. 경쟁자이기도 한 LG홈쇼핑이 디자이너와 결혼해 재미를 보자, 바로 몇 달 뒤 띠동갑에 가까운 젊은 디자이너인 ‘이다’와 만나 맞불작전에 들어간 것, 여기에 CJ홈쇼핑은 거액을 들여 파리 유학을 보내줄 정도로 ‘이다’와 금실이 좋았지만 요즘 매출 부진 때문으로 불화설에 휩싸였다.

디자이너와 TV홈쇼핑의 만남이 시작된 2002년은 흑자를 내며 승승장구하던 TV홈쇼핑이 저가 시장 포화라는 악재를 만나 고전하던 때였다. 그 상황에서 TV홈쇼핑이 빼어든 칼은 바로 패션계의 ‘얼짱’ 디자이너였다. 이들을 얼굴마담으로 기용해 중저가 홈쇼핑 시장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하지만 둘의 결합이 알려지자 주위에서는 ‘싸구려 이미지의 TV홈쇼핑에 비해 디자이너들이 밑진다’며 극구 말렸고, 그 동안 다져온 ‘얼짱’ 이미지가 훼손될 수도 있다는 충고도 있었다. 하지만 물 건너온 월드 얼짱들에게 밀린 토종 얼짱들에게 ‘수익 창출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TV홈쇼핑의 제안은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작년 LG홈쇼핑이 사상 처음으로 전년대비 역신장했고, 설상가상으로 패션사업부가 적자를 내자 올해 들어 화살이 엉뚱하게 디자이너들에게 날아간 것이다.

애초 TV홈쇼핑과 디자이너의 교제는 ‘잘못된 만남’이었다. 가격경쟁력이 무기인 TV홈쇼핑과 크리에이티브가 무기인 디자이너의 만남은 이미 실패한 내셔널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만남인 ‘계약제 디자이너’에서 보듯, 결과가 뻔한 만남이었다. 결국 이혼에 대한 책임은 디자이너들의 몫이 되었다. 솔직히 TV홈쇼핑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를 키운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소린가. 서로의 시장과 고객이 틀리고, 무엇보다 시장에 접근하는 마인드가 다른데 말이다.

‘명품’은 최소 1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져야 한다. 이제 40년된 토종 브랜드 「앙드레김」의 활발한 라이선스 비즈니스를 보면서 ‘우리도 50년 후면 진정한 명품 브랜드를 가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더불어 수많은 질시와 무시(?) 속에서도 디자이너의 캐릭터와 절개를 지킨 앙드레 김의 장인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감히 디자이너 브랜드들에게 당부드리고 싶다. 당장의 이익에 눈먼 조급함보다는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길 바란다. 더불어 자식이나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세월이 지나면 마모되는 ‘빌딩’을 물려주기보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 빛을 더하는 ‘브랜드 가치’를 물려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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